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우리는 공부하며 운동한다

광문고 축구부는 학교 스포츠 정상화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학교다. 학생 선수들은 모든 정규 수업을 마치고 훈련에 임한다. 운동만으로 모두 성공할 수 없는 현실에서, 광문고의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2019년 07월 03일 수요일 제615호
댓글 0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교실보다 운동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지름 22㎝ 둥근 공은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일찌감치 장래 희망을 정했다. 공을 차고 굴리고 빼앗는 동안 또래보다 먼저 ‘미래’에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전민제 군(18)은 2년 전 고교 진학을 앞두고 경기도 광명시 광문고등학교 축구부로 스카우트됐다.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됐다. 많은 것이 익숙지 않았다. 무엇보다 운동을 하기 위해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는 점이 그랬다. 광문고에서는 운동부라고 쉽사리 수업에 빠질 수 없다.

축구부 주장인 민제 군을 포함해 부원 43명은 오전 6시10분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6시30분부터 1시간 훈련을 한 뒤 아침을 먹고 교실로 간다. 일반적으로 운동부 학생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부터 훈련을 하지만, 광문고 축구부는 오후 4시30분에 끝나는 정규 수업을 모두 듣는다.

오후 5시10분이 되자 운동장 인조 잔디 구장 위로 빨간색과 파란색 유니폼을 갖춰 입은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유니폼은 1학년, 파란 유니폼은 2~3학년이다. 몸풀기를 마친 선수들은 운동장을 반으로 갈라 빨간 팀과 파란 팀으로 나누어 훈련을 시작했다. 1학년들이 골대를 향해 골 넣는 연습을 하는 사이 2~3학년들은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패스를 주고받았다. 태기창 감독을 비롯해 코치 두 명이 선수들을 지도했다.

ⓒ윤성희
광문고 축구부가 6월12일 오후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치고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훈련은 저녁 7시10분에 끝났다. 저녁 식사 이후에는 밤 10시까지 개인 운동 시간이다. 그 뒤에는 수행평가 등 학교 과제를 하거나 재량껏 공부를 더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수업이랑 운동 둘 다 하려니 힘들긴 한데 ‘운동 정신’으로 버티는 거죠. 교실에서 어쩔 수 없이 잘 때도 있는데 체력이 있으니까 웬만한 애들은 제칠 수 있어요(웃음).”

광문고 축구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6월4일 ‘학원 체육 정상화’를 위한 개혁안을 권고하며 모범 사례로 꼽은 학교다. 스포츠계 미투를 계기로 범정부 차원의 혁신위가 꾸려졌다. 혁신위는 체육계 폭력·성폭력이 몇몇 나쁜 지도자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체육의 구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진단했다. 지난 5월 발표한 혁신위 권고안에서 가장 기본이자 핵심은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이다(36~37쪽 기사 참조). 학습권 보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정규 수업 이수다.

체육계는 탁상공론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학생 선수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광문고는 권고안이 나오기 12년 전부터 학생 선수의 수업권을 보장하고 있다.

전국 대회에서 꾸준히 8강권 성적

<시사IN> 취재진이 광문고를 방문한 6월12일 오후 4시30분, 5층에 마련된 합숙소로 수업을 마친 선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6월1일부터 전남 영광에서 열린 ‘2019 대통령금배 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에 참가한 여파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선수 7명을 제외한 이들이 5시10분 훈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광문고는 이번 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했지만 16강전에서 탈락했다.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전국 대회에서 8강권 성적을 꾸준히 올리며 경기권역에서는 상위권 팀으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경기권 고교 축구부가 대부분 출전한 2018 연천군수배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민제 군은 연천군수배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대회 출전 때문에 빠지는 수업은 ‘이스쿨(e-School)’로 보완한다. 이스쿨은 학생 선수들을 위해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시스템으로, 인터넷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광문고 축구부는 대회에서 돌아온 직후인 6월10일과 11일엔 이스쿨 학습을 한 뒤 저녁 8시30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6월13일에는 학생 몇 명이 보충수업을 듣고 뒤늦게 훈련에 참가했다. 수학 담당 교사가 대회 기간 수업에 못 들어와 수행평가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축구부 학생들을 위해 추가로 수업을 진행했다. 태기창 감독은 “의무 사항이 아닌데도 학교 선생님들이 축구부 아이들 공부를 챙겨주신다”라고 말했다.

ⓒ윤성희
광문고 축구부원들. 왼쪽부터 1학년 서예찬, 2학년 조인식, 3학년 전민제 군.
1999년 창단한 광문고 축구부가 처음부터 학생 선수들의 수업권을 보장해왔던 건 아니다. 2007년 태기창 감독이 부임하면서 달라졌다. 정규 수업을 마친 뒤 훈련을 하겠다는 태 감독의 지시에 처음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심했다. 지금도 “나는 운동을 택했는데 왜 수업을 들어야 하느냐”라는 학생이 종종 있다. 태 감독은 그런 학생들을 타일러가며 고집스럽게 수업을 듣게 한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2018년 고교 축구 등록 선수는 5829명, 대학 축구 등록 선수는 2583명이다. 고교 선수 중 절반 정도만 ‘선수로’ 대학에 진학한다. 2019년 프로 구단에 진출한 선수는 157명이고, 이 가운데 고등학교에서 바로 프로로 진출한 경우는 54명으로 전체 고교 선수 중 극소수이다. 사실상 대다수 학생 선수가 축구 선수가 아닌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한다.

혁신위 권고안 이전에도 2013년 학교체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정규 수업 이수와 최저학력제 등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종목에 비해 축구는 이 취지에 빠르게 발맞추고 있는 편이다. 유소년 축구는 수업 결손이 없도록 주말 리그를 시행하고, 학기 중 열리는 전국 단위 시합은 1년에 한 번만 개최한다. 정규 수업을 모두 듣게 하는 학교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예외 조항으로 수업 일수의 3분의 1까지 결석을 인정하기 때문에 광문고 축구부처럼 일반 학생과 동일하게 모든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초등학교 4~5학년부터 축구를 시작해 경력이 최소 5년 이상인 고교 선수들 역시 체육계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 1학년 서예찬 군(16)은 아예 광문고가 수업도 ‘빡세게’ 시킨다는 걸 미리 알고 광문고 진학을 준비해 입학한 경우다. 2학년 조인식 군(17)도 프로 선수가 목표이지만 대학 진학 역시 준비하고 있다. “프로 팀에 간다 해도 은퇴한 뒤에 제2의 진로를 찾아야 해요. 축구선수를 꿈꿨다가 실패하고 집에 누워만 계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고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체육교육과에 진학하고 싶어요.”

실제 광문고 축구부는 진학 성적이 우수한 편이다. 지난해 3학년 선수 전원이 대학에 진학했다. 축구 같은 인기 종목은 모집 인원이 많아 비교적 대학 진학률이 높은 편이긴 해도 100% 진로를 찾아나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광문고에서 3년째 체육을 가르치는 임성철 교사는 “우리 모토는 ‘학생 선수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체육특기자 전형뿐 아니라 일반 전형을 통해서도 대학에 입학했다. 일반 전형이라고 해서 운동하던 학생들이 법대나 경영대에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체육학과나 체육교육과처럼 운동 관련 전공으로 진학하는데, 경기 성적만 보는 특기생과 달리 학업 성적 관리가 필요하다. 광문고 축구부 선수들은 1학년 때부터 빠짐없이 수업에 들어가는 덕분에 일반 체대 입시로 전환했을 때 학업 기준을 어렵지 않게 충족시킬 수 있다.

체육특기자에서 일반 전형으로, 운동에서 공부로 전환 통로를 마련하는 것은 체육 현장에서 시급한 과제이다. 초등부, 중등부를 거쳐 고3까지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일부일 뿐이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축구를 포기하는 인원이 늘어난다. 민제 군과 함께 축구를 시작했던 친구들도 절반 이상이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는다. 실력이 안 되어서, 부상을 입어서, 적성에 맞지 않아서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민제 군도 덩달아 마음이 조급하다. “대학 진학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보다는 외국 프로 팀에 진출하고 싶은데…. 훈련 시간이 길다고 실력이 느는 건 아니지만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려니 운동에 몰두하는 집중력이 떨어지긴 해요.”

학교 스포츠 개혁은 학생 선수들에게도 뜨거운 관심거리다. 학생 선수의 삶에서 수업은 공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수업은 사회성을 배우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보통 학교 운동부는 학교 안에서 동떨어진 섬처럼 있기 때문에 더욱더 수업이 중요하다. 수업을 통해 축구부 선수들은 일반 학생들, 담임선생님, 다른 교과 선생님과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축구 선수가 된다고 해도 미래에 축구하는 사람만 만나고 살 수는 없으니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태기창 감독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 지도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운동만 하는 학생들은 지도자만 쳐다보게 되거든요. 선수가 감독에게 모든 걸 의지하게 되면 상하관계가 고착되고 그 사이에서 폭력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죠.”

특성화고에 비해 내신 불리한 점 바뀌어야

이미 ‘잘하고’ 있는 광문고에서도 이번 혁신위 권고안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다. 혁신위는 경기 실적 중심으로 진학하는 체육특기자 전형을 경기력, 내신 성적, 출결, 면접 등이 반영된 종합 선발 시스템으로 전환하라고 권고했다. 권고 취지에 맞춘 세부 정책은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세운 후 2024년 최종적으로 적용된다. 태기창 감독은 광문고 같은 인문계고의 경우 종합 선발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공업고나 상업고 같은 특성화고에 비해 내신 점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을 감안해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의 초점이 학생 선수가 최소한의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맞춰져야 하는데 규제로 흐를 가능성도 염려했다.

광문고는 혁신위 권고안이 정착됐을 경우의 미래와 보완해야 할 점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운동만으로 모두 성공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하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학생 선수 90%가 사실상 ‘낙오자’가 된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임성철 교사는 힘주어 말했다. “10%를 위해 나머지의 미래를 소홀히 해서야 되겠습니까. 학교 체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답도 나와 있고요.”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