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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노리는 ‘대리 입금’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종의 품앗이 문화로 시작된 ‘대리입금’이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대부업자들의 고리대금업에 악용되기도 한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2019년 04월 19일 금요일 제6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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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댈입 구합니다. 급해요. 랜봉 드려요. 설참!” 낯선 숫자와 뜻을 알 수 없는 신조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이 달린 5초짜리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검은 화면 아래 영상을 올린 이의 설명이 뒤따른다. “진짜 급해서 그래요. 수고비 0.5. 개톡 주세요. 랜봉도 드립니다. 카톡 아이디 XXXX.” 숫자는 만원 단위 화폐를, 설참은 ‘설명 참조’의 줄임말이다. 1.5는 1만5000원, 0.5는 5000원이다. 돈을 빌려주면 수고비를 더해 2만원에 갚겠다는 뜻이다. ‘랜봉’은 현물이 담긴 랜덤 봉투다. 일종의 이자다.

유튜브에 올라온 또 다른 영상에서는 아예 준비한 랜덤 봉투를 화면에 비추기도 한다. 기념품이나 화장품 따위를 뒤섞어 여러 봉투에 나누어 넣은 뒤 이 중 하나를 무작위로 보내주겠다는 의미다. 이 영상들은 급전이 필요하니 돈을 빌려달라는 속칭 ‘대리입금(줄여서 댈입)’을 요청하는 게시물이다. 최근 10~20대 사이에서 늘어난 대리입금 풍경이다.

초창기 대리입금은 서브컬처에서 비롯된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었다. 가장 활발한 공간은 케이팝 팬 커뮤니티나 게임 커뮤니티였다. 굿즈(각종 기념품) 공동구매, 게임 아이템 구매, 각종 팬 행사 등을 신청한 뒤 당장 무통장 입금을 할 수 없을 때 같은 팬끼리 서로 도와주는 일종의 품앗이 문화로 시작됐다. 가령 한 팬 커뮤니티에서 ㄱ이 추첨을 통해 아티스트 행사에 당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24시간 이내에 행사 참가비를 주최 측에 입금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면 공개적으로 대리입금을 요청한다. 여윳돈이 있었던 ㄴ이 ㄱ 대신 주최 측에 입금을 해준다. ㄴ은 그 대가로 며칠 뒤 ㄱ한테 원금과 함께 수고비를 챙겨 받거나 현물을 제공받는 방식이다.
ⓒ시사IN 윤무영

이런 거래는 중고 물품(굿즈) 거래로 이어지기도 한다. 원금을 갚는 대신 ㄴ이 평소 갖고 싶어 하던 굿즈를 ㄱ이 보내는 식이다. 초창기 팬 커뮤니티에서 오가던 대리입금은 사채라기보다는 커뮤니티 활동에 가까웠다. 랜덤 봉투, 랜덤 박스(랜박:봉투 대신 상자에 물건을 무작위로 섞어 넣음)도 마찬가지다. 이미 각종 과금형 모바일 게임을 통해 랜봉이나 랜박에 익숙한 세대는 이것의 도박성에 개의치 않고 일종의 문화로 받아들인다. 대리입금을 통해 돈을 잠시 빌려주는 행위 역시 일종의 놀이와 교류에 가까웠다.

상부상조 문화 같았던 대리입금이 커뮤니티 바깥으로 확장되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오픈형 SNS를 통해 대리입금 거래가 늘어나면서 품앗이 문화의 의미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대리입금에서 커뮤니티 성격이 사라지자 남는 것은 여신 금융 거래뿐이었다.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공개적인 대리입금에서 금융거래의 오래된 문제가 먼저 불거졌다. 여신 거래의 핵심은 신용도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돈을 갚을 것이라는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복잡한 장치가 동원됐다. “본계(트윗양 100개 이상)로 문의 주셔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내주시고 지각비는 하루당 5000원입니다.” “본인 주민등록번호랑 연락처, 부모님 연락처도 인증해주셔야 합니다.”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디의 평판이 일종의 신용도를 보증하지만, 공개된 SNS에서는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신분증 사본, 주소, 연락처 등이 동원된다. 특히 가장 강력한 채권 추심 수단은 ‘부모 연락처’다. 돈을 갚지 않으면 부모에게 전화를 걸겠다며 협박한다.

이런 장치를 마련하더라도 채무를 갚지 않는 이들은 생겨난다. 대리입금을 통해 돈을 빌려준 이들(채권자)은 사기 피해를 당했다며 채무자의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거나 ‘더 치트’ 같은 온라인 사기 예방 플랫폼에 문의하기도 한다(더 치트는 온라인 중고 거래 시 상대방의 신용도를 확인하는 중고 거래용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이다). 거래 상대방의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입력하면 다른 신고가 접수됐는지 거래 사기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홈페이지(cyberbureau.police.go.kr)에서도 인터넷 사기 피해 신고 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사기 피해 접수가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다. 최근 대리입금을 진행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플랫폼을 활용해 신용도를 간접적으로 미리 평가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 주최로 열린 ‘겨울방학 어린이·청소년 금융교실’에 참가한 초·중학생들.
연이율 1700% 넘는 초고금리 거래


대리입금 거래액은 소액이지만 이율을 따져보면 고금리이다. 대리입금으로 3만원을 빌려주고 수고비 1만원(이자)을 받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일주일 후 총 4만원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때 이자(수고비)는 원금의 약 33%다. 원금이 소액인 탓에 큰 부담이 안 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단순 연이율로 따져보면 1700%가 넘는 초고금리 거래에 해당한다. 일부 대리입금은 수고비와 별도로 ‘지각비’를 따로 걷기도 한다. 원래 돌려주기로 했던 날짜를 넘길 경우, 이자가 추가로 붙는 식이다. ‘하루 5000원’ 같은 지각비까지 감안하면 연이율은 더 높아진다.

법정 최고이자율은 연 24%로 정해져 있다. 대부업체가 이 이상 이자를 받을 경우 법에 저촉된다. 소액 대리입금은 ‘불법 고리대’로 제약하기 어렵다. 거래액이 10만원 이하일 경우 이자제한법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대부업체로 등록한 것도 아니어서 금융감독 기관이 감독 및 제재하기도 어렵다. 이를 규제하거나 여기서 발생한 문제를 수사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처벌 규정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소액 거래라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관계기관에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닦달하거나 개인정보를 공중에 공개해버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변호사 등에게 법률적인 도움을 얻기도 어렵다. 배(거래액)보다 배꼽(변호사 수임료)이 크기 때문이다.

더 큰 부작용은 채권자가 대리입금을 악용하면서 발생한다. 현실 세계에 이미 존재하던 불법 고금리 대부업자들이 손을 뻗으면서 대리입금은 사채의 다른 의미로 전용되기 시작했다. ‘#대리입금 #댈입 #급전’ 같은 해시태그를 달아둔 뒤 실제로는 신용 대출을 유도하는 이들이 최근 늘고 있다. 고금리 사채 시장에 청소년이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우려가 뒤따랐다. 법망을 피해 9만9000원까지 대리입금을 해주겠다는 이들도 늘었다. 금융거래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 처지에서 대리입금을 해주겠다는 이들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개인인지 혹은 고금리를 노린 업자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대리입금을 요청하는 SNS 메시지들. 폐쇄형 SNS에서는 대리입금 규모가 커진다.
우려가 커지자 금융 당국은 최대한 부작용을 막도록 게시물을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3월19일, “앞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불법이라고 볼 만한 게시물을 솎아내는 ‘불법 금융행위 자동 적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대리입금뿐만 아니라 미등록 대부업, 불법 대포통장 매매 같은 광고 메시지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AI를 통한 차단 방식은 공개형 게시물만 걸러낼 가능성이 높다. 폐쇄형 SNS에서 공유되는 대리입금 거래 게시물은 자동 적출 시스템으로 찾아내기 어렵다. AI 시스템은 검열보다는 검색에 가깝기 때문에 자동 검색이 가능한 통로만 차단하면 그만이다. 스마트폰 불법 보조금이 폐쇄형 SNS에서 여전히 유지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실제로 모임 플랫폼인 ‘밴드’나 모바일 플랫폼인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대리입금 거래가 늘어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80여 명이 가입된 한 ‘대리입금/개인돈/문상거래 밴드’에는 대리입금을 구하는 이들과 대리입금을 해주겠다는 이들이 실시간으로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광고는 밴드에서, 상세 협상은 1:1 오픈 채팅방에서 진행하는 방식이다. 일부 대리입금 밴드는 그룹장이 승인을 해야 가입이 되는 형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폐쇄형 SNS에서는 대리입금의 규모도 커진다. 공개형 SNS에서는 법적 문제 때문에 10만원 이상을 빌려달라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이곳에서는 100만원을 빌려달라는 이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문화상품권(문상)이나 기프트카드(모바일 앱에서 사용하는 선불형 카드) 등이 대리입금 과정에서 동원되기도 한다. 게임 아이템 등을 사기 위해 급전이 필요한 경우 문화상품권 등으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폰테크’로 불리는 대포폰 개통 광고도 버젓이 올라온다. 본인 명의 선불폰을 만들어주면 최대 40만원까지 돌려준다는 식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대리입금을 원하던 이들도 폐쇄형 SNS에서는 불법 대부 거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금융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신세대 출현?


거래 위법성 여부를 떠나 대리입금은 청소년에게 사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제대로 된 금융 교육을 받기 이전부터 일면식이 없는 제3자에게서 쉽게 돈을 빌리고 고액의 이자를 갚는 걸 자연스럽게 여길 가능성이 생긴다. 최근에는 일부 초등학생들도 대리입금 거래에 빠져들고 있다. 유튜브 대리입금 게시물에는 초등학생이 직접 등장해 수고비 등을 설명하기도 한다.

현행 초·중·고교 교육과정에서 금융 교육은 사회 과목이나 실과(초등학교), 기술·가정(중·고등학교) 과목에서 잠시 언급되는 정도에 그친다. 금융 교육은 양과 질 모두 미국, 캐나다 등에 비해 충분치 않다. 현행 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청소년의 ‘합리적 소비’나 ‘용돈 관리’를 설명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 단순히 ‘절약해야 잘산다’는 상징적인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자체적으로 ‘초·중·고등학교 금융교육 표준안’을 개발하고 교과서와 지도서 등을 만들었지만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

대리입금은 기존 금융권에도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대리입금은 P2P(peer to peer) 대출과 같은 원리다. P2P 대출은 은행 같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 간 신용 거래를 온라인에서 중개하는 핀테크 분야다. 채무자의 개인정보와 SNS 등을 분석해 얼마나 신용할 만한 사람인지 평가하는 ‘신용평가 핀테크’ 업체 역시 해외에서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대리입금처럼 개인정보를 신용 담보로 설정하는 신용평가 방식이다. 앞으로 금융 서비스를 선택하는 이들이 ‘편의성’이나 ‘속도’를 우선시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대리입금을 단순히 기형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금융을 과거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은행을 거치고 신용평가 기관을 거치는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방법 대신 ‘간편함’에 익숙한 세대가 성장했을 때,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인식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청소년들이 놀이하듯 만들어낸 ‘신종 사채’가 어른들에게 숙제를 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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