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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은총으로’ 프랑스가 분노했다

가톨릭 사제가 저지른 아동 성범죄 사건으로 프랑스가 들끓었다. 가해자의 성범죄를 알고도 묵인한 추기경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추기경의 발언을 딴 영화 <신의 은총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파리·이유경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3월 27일 수요일 제6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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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루르드는 ‘성모 발현지’로 알려진 가톨릭 성지다. 해마다 순례객 600만명이 이 도시를 찾는다. 2016년 8월1일 루르드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 세속적인 발언이 나왔다. “신의 은총으로 프레나 신부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다.” 발언자는 필리프 바르바랭 리옹 대주교 겸 추기경이다. 프랑스 내 고위 사제들이 15세 이하 아동 성범죄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프랑스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신의 은총으로’라는 추기경의 말은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제목이 되었다.

5세기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왕이 개종한 이래 프랑스는 ‘가톨릭의 맏딸’이라고 불려왔다. 여전히 국민 절반 이상은 스스로 가톨릭 신자라고 밝히지만, 최근 들어 하향세는 완연하다. 프랑스 가톨릭교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발레리 만스 감독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잡지 <텔레라마>와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톨릭 내부의 아동 성범죄 사건이 위기를 부르고 있다. 교회의 도덕적 권위가 위협받고 있다.” 최근 불거진 한 사제의 범죄 의혹은 프랑스 가톨릭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AFP PHOTO
1월7일 필리프 바르바랭 추기경이 법정에서 첫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3월7일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건의 시작은 무려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한 가족은 생뤼크 성당의 보이스카우트 캠프에 다녀온 아이가 사제에게 성범죄를 당했다고 리옹 대교구에 알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였다. 주의를 받은 프레나 신부는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리옹 대교구는 1980년과 1990년 또다시 부모들에게 항의를 받았다. 1991년 리옹 대교구는 해당 사제를 루아르 지방의 뇔리즈 교구로 전출시켰다. 정기적으로 담당 사제를 보내 감시했다. 2007년과 2008년에도 연이어 성범죄 문제가 제기되자, 리옹 대교구는 다시 문제의 사제를 루아르 지방 내의 르코토 교구로 보냈다. 그러나 다른 처벌은 하지 않았다.

프레나 신부가 계속해서 아이들의 교리 교육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들은 결국 2015년 5월 신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하기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사건을 공론화하고 교회에 책임을 묻기 위해 단체 ‘라 파롤 리베레(해방된 말)’를 만들었다. 이들은 보이스카우트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아 사이트에 게시했다. 프레나 신부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2015년 리옹 대교구는 프레나 신부를 면직 처분했다.

2017년에는 그의 파문 여부를 두고 ‘교회법 재판’을 열었다. 교회법 재판은 사건과 무관한 교구 신부 3명이 재판부를 구성해 처분을 결정하는 프랑스 가톨릭교회 내의 사법 제도다. 마흔을 훌쩍 넘기게 된 피해자 70여 명은 40년 전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 교회에 모였다. 교회법 재판부는 올해 말 프레나 신부에 대한 사법부 판결이 나온 뒤 파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PA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신의 은총으로>를 만든 프랑수아 오종 감독.
라 파롤 리베레는 프레나 신부의 성범죄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며 신부 활동을 이어가게 해준 필리프 바르바랭 추기경의 책임도 물었다. 2002년부터 리옹 대주교였던 바르바랭 추기경은 2015년까지도 프레나 신부를 아이들로부터 격리하지 않았다. 여론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자 바르바랭 추기경은 2016년 1월 대변인을 통해 “프레나 신부의 성범죄를 알게 된 것은 2014년이다”라고 주장했다. 한 달 뒤 그는 “2007년부터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2016년 4월 피해자들은 ‘범죄 은폐’ 혐의와 ‘타인의 삶을 위험에 빠뜨린’ 혐의로 바르바랭 추기경을 사법기관에 고소했다.

바르바랭 추기경의 재판은 ‘침묵 재판’이라고 불린다. 추기경을 비롯한 가톨릭 고위 성직자 7명이 프레나 신부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다는 혐의로 소환됐다. 재판은 바티칸 소속 성직자들의 참석 여부와 관련해 여러 차례 연기됐다. 지난 1월7일에야 열린 첫 공판에서 바르바랭 추기경은 “프레나 신부를 믿었다는 이유로 모두가 나를 비판한다. 나는 어떤 범죄 사실도 은폐하려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 피해자 로랑 뒤베르제는 “어머니에게 ‘내 첫 성관계는 열 살 때 프레나 신부와 함께였다’고 고백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정신과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재판 마지막 날인 1월9일 검찰은 사건 공소시효 만료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교회 관계자 7명 모두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교회 관계자들 실명 그대로 사용

그런데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3월7일 리옹 지방법원은 바르바랭 추기경에게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2001년 피에르 피캉 주교와 2018년 앙드레 포르 주교가 같은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례가 있으나, 프랑스 가톨릭 내 최고 직위인 추기경이 사법기관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가톨릭계 일간지 <라 크루아>는 3월8일 “프레나 신부 사건의 피해자들은 선구적인 일을 해냈다”라고 썼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프레나 신부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 법적 사실을 각색해 영화를 만들었다. 바르바랭 추기경의 발언을 따서 <신의 은총으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약 48만명이 보았다. 지난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인 은곰상을 받았다. 피해자들 외에 교회 관계자들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프레나 신부와 피해자보호위원회 레진 메르 위원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영화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상영일 전날인 2월19일 파리 법원이 기각했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영화가 일으킨 논란에 대해 지난 2월9일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가톨릭의 메시지는 약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중략) 가톨릭 관계자들이 영화의 상영을 막고 있다는 사실은 <신의 은총으로>가 사회에 필요한 영화라는 반증이다”라고 말했다. 3월7일 바르바랭 추기경의 유죄판결이 나자 오종 감독은 <라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아동 보호를 위한 아주 중대하고 상징적인 승리다”라고 말했다. ‘라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클레망틴 오탱 의원은 3월8일 BFM TV에서 “<신의 은총으로>는 성폭력이 파괴해버린 사람들과 교회가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영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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