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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현장에서 본 2차 북·미 정상회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하노이는 거대한 축제장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은 결과를 낙관했다. ‘환호로 시작해 탄식으로 끝난 현장’을 중계한다.

하노이·랑선/글 이상원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prodeo@sisain.co.kr 2019년 03월 11일 월요일 제5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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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던 공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고 뛰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이들이 굳은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형 스크린 뉴스 화면에 ‘속보,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 4시로 앞당겨져’라는 자막이 뜨자 한국 기자들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20여 분이 흐른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탄 차량이 회담장을 떠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 일본 방송사는 정상회담 일정이 담긴 방송 자료 옆에 ‘→中止(중지)’라고 썼다. 한국 기자들의 멘트를 따기 위해 외신 방송기자들이 한국프레스센터 쪽으로 모여들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종료가 알려진 직후인 2월28일 오후 하노이 국제미디어센터(IMC) 모습이다.


ⓒ시사IN 이명익
2월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동당역에서 전용차에 탑승한 후 환영 나온 인파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이런 결말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회담 장소부터 호재라고 평가받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꾀한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베트남 현지 전문가들은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한 해외 자본 유치야말로 베트남 모델의 요체’라고 말한다(<시사IN> 제565호 ‘호찌민 풍경이 바로 평양의 미래?’ 기사 참조). 화려한 하노이 시내 전경은 북한 최고지도자에게 개혁·개방을 설득할 논거가 될 수 있다.


ⓒAP Photo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7일 밝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AP Photo
2월28일 오전 단독회담을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월27일 저녁 만찬 장소인 메트로폴 호텔 앞에 베트남 시민들과 관광객이 몰려나와 있다.
ⓒAP Photo
2월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하노이로 출발하고 있다.



“북한에 쌀 수출하는 게 베트남의 목표”

회담 개최 도시가 당초 유력시되던 다낭이 아니라 하노이로 낙점된 것도 맥락이 있다. 지난 2월6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했던 다낭을 선호하고, 북한은 북한 대사관이 있고 베트남 정상과 만나기 용이한 하노이를 원한다”라고 보도했다. 상징적 의미도 읽힌다. 하노이는 호찌민 주석이 주도한 혁명의 발원지이자, 199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평화의 도시’이다. 북한이 베트남을 모델로 삼는다면, 평양은 하노이를 본뜨게 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나 회담장 근처에는 ‘I♡Trump’라고 적은 종이, 성조기, 꽃다발 등을 든 하노이 시민들이 많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북·미 정상회담을 반겼다. 하노이에 도착한 2월23일,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시내의 숙소까지 곳곳에서 회담을 기념하는 깃발이 보였다. 택시 기사는 “북한은 베트남과 매우 가까운 사이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좋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인기가 좋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나 회담장 근처에는 ‘I♡Trump’라고 적은 종이, 성조기, 꽃다발 따위를 든 하노이 시민들이 있었다. 베트남은 북한의 오랜 우방이지만 대표적 친미 국가이기도 하다. 한 현지 소식통은 베트남 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베트남은 회담이 성공해 북한이 개혁·개방하기를 바란다. 남아도는 자국의 쌀을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에 파는 게 베트남의 목표다.”

베트남 당국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경호에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이 열차로 랑선성의 동당역에 도착한 2월26일이 절정이었다. 전날 낮부터 수송 차량이 군과 경찰을 실어 날랐다. 저녁이 되자 이 작은 마을은 주요 길목마다 5m에 한 명꼴로 병력이 배치됐다. 육교 위에는 장갑차까지 들어섰다. 김정은 위원장 도착 전후 약 2시간 동안 마을 안에서 동당역 앞 광장으로 가는 길을 전부 차단했다. 차량 통행은 물론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베트남 외교부가 발급한 IMC 기자증을 제시했지만 경찰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막힌 길을 불만스레 바라보던 주민들은 이내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길로 향했다.


ⓒ시사IN 이명익
국제미디어센터 앞에서 기자와 베트남 관계자가 기념 촬영 후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차량 통제는 동당역 밖에서도 계속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도착 20분 만인 오전 8시30분께 하노이로 출발했지만, 일반인은 오후 1시까지 그 길을 쫓아갈 수 없었다. 정상회담이 진행된 2월27일과 28일에는 시내 정체가 극심했다. 바리케이드에 막힌 차와 오토바이가 중앙선을 무시하고 ‘역주행’을 해 출퇴근 시간에는 시내 주요 거점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도로 통제가 풀린 뒤 동당역에서 하노이 시내로 들어가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봤을 풍경을 관찰했다. 프랑스식 가옥과 일본 자동차 매장, 애플과 삼성 스마트폰 판매점이 눈에 들어왔다. 망치와 낫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곳곳에 꽂혀 있었고 군복 입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선전화’도 종종 보였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월27일 “베트남 당과 정부는 당의 영도적 역할을 높이고 사회주의 정권을 튼튼히 다지는 것과 함께 경제 발전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시사IN 이명익
김정은 위원장이 묵는 멜리아 호텔 앞에서 베트남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IMC는 시내 한복판인 하노이역 앞에 마련됐다. 김정은 위원장 숙소인 멜리아 호텔과 가까웠다. 베트남-소련 우정노동문화궁전과 국제전시센터 건물을 썼다. 전 세계 기자 3500명가량이 몰렸다.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따로 프레스센터를 마련해 자국 기자 300~500여 명을 앉혔다. 식사와 음료수가 제공됐다.

IMC에서 지켜본 양국 정상들의 메시지는 전향적이고 안정적이었다. 2월27일 만찬 전 공개 환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훌륭한 상봉이 마련되게 된 건 각하(트럼프 대통령)의 남다른 통 큰 결정이 안아온 일이다”라고 말했다. 2월28일 오전 확대회담 직전에는 외신 기자가 비핵화 준비를 묻자 “준비되지 않았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다”라고 답했다.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해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은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큰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본다. 위대한 지도자 밑에서 잘할 것이다”라고 추어올렸다.

혼돈의 프레스룸, 길 잃은 기자들


이 모습을 바라보는 IMC 기자들의 분위기는 ‘감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분함을 넘어 무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양국 정상이 처음 만난 2월27일 저녁부터 그랬다. 이미 지난해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봤기에, 두 사람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반응하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베트남 출신 행사 관계자들 외에는 대형 스크린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사람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패널이 참석한 포럼에서도 질문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회담처럼 별다른 일은 없이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 무관심이 팽배했다. 대부분 노트북에 얼굴을 파묻고 기사 작성에 골몰했다.


ⓒ시사IN 이명익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종료된 2월28일 오후 국제미디어센터 내부.


2월26일 미국 매체 복스(VOX)가 양국 ‘잠정 합의안’을 보도한 것도 현장 분위기에 영향을 줬다. 이 매체는 “양국이 영변 핵시설 폐쇄, 대북제재 일부 완화,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평화선언 체결, 미군 유해 추가 송환 등에 잠정 합의했다”라고 썼다. IMC 안팎에서 들은 기자들의 대화 주제 역시 이러한 ‘각론’ 위주였다.

기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현지에 온 전문가들 역시 복스 보도를 언급했고, 판이 깨질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큰 합의’를 점치는 전문가도 있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소장은 2월27일 프레스센터 포럼에서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처럼, 하노이까지 양 정상이 와서 회담을 여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조율이 이뤄진 것이다. 진전이 어려워 보였다면 회담은 애초 취소되거나 연기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니얼 데이비스 미국 디펜스 프라이어리티(Defence Priority) 수석연구원은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나올 것이라는 전제하에, 다음 단계를 언급했다. “종전선언 자체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남북 경제협력이야말로 분쟁을 막는 방법이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이 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누다 보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토대는 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듣는 기자들.

다만 포럼 직후 만난 한 북한 전문가는 여전히 위험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변수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거래를 트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가 필요하다.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이해하기 어려운 국가다. 부동산 거래에 비견하자면 돈을 준다고 해도 낡은 아파트를 팔지 않겠다며 화를 내는 ‘히키코모리’ 이웃이다. 실질적 진전을 이루려면 사람들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전문가도 다음 날의 결말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그는 “당연히 종전선언 정도는 나올 수 있다”라고 점쳤다.

2월28일 정상회담 종료가 발표된 오후 1시30분께 메인 프레스룸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대형 스크린 앞에 기자가 몰려들더니, 삽시간에 100여 명이 한가운데 있는 사람을 에워쌌다. 하지만 어디선가 “저 사람 누구예요?”라는 물음이 나오자 곧 다른 곳에서 “그냥 기자들끼리 대화하는 것”이라는 답이 들려왔다.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혼란에 빠진 기자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극(笑劇)이었다. 모두 멋쩍은 듯 황망히 자리를 떴다. 약 2시간30분 뒤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올랐다는 소식이 대형 스크린에 보였다. 3월1일 오전 베트남 외교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월1일과 2일 베트남을 공식 친선 방문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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