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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 5000’ 모델, 광주에서 가능할까

광주시는 2001년 독일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설립된 ‘아우토 5000’을 벤치마킹했다. 아우토 5000은 산별협약과 신설 공장에 대한 비전이 있어 가능한 모델이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제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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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독립법인을 만들어 5000명의 실업자를 월 임금 5000마르크의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노동조합은 이를 수용할 용의가 있는가?”

1999년 말 독일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금속노조(IG Metall)에 던진 질문이다. 당시 월 5000마르크의 임금은 폭스바겐 노동자보다 20% 정도 낮은 수준이었다. 회사 측이 ‘노동자 측의 임금 양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노조에 제안한 것인데, 결국 노사 합의를 통해 2001년 8월 폭스바겐의 자회사 형태로 ‘아우토 5000(Auto 5000)’이라는 공장이 설립되었다.

광주광역시 민선 6기는 이를 벤치마킹했다. 임금이 높고 노동시간도 짧은 독일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냈는데 한국이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리도 한국의 기존 완성차 업체보다 조금 낮은 임금으로 지역에 공장을 유치하여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을까? 광주형 일자리 논의는 이런 소박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는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현대차·기아차지부의 반발이 거세다. 광주형 일자리는 ‘사회통합적’ 일자리를 지향하는 것인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왜 그럴까? 아우토 5000은 어떠했는가?

ⓒEPA
2008년 2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아우토 5000’에서 노동자가 폭스바겐 티구안을 조립하고 있다.

폭스바겐이 아우토 5000을 제안했을 때 (지역)사회와 정부는 두말할 나위 없이 환영했다. 당시는 독일에서도 해외로 생산시설 이전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산업 공동화(산업의 해외 이전으로 국내 생산능력이 퇴조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한껏 고조된 때였다. 실제로 1990년대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에서는 생산량이 거의 40% 줄면서 실업률은 17%까지 치솟았다. 독일 내에서 더 이상 좋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리라 보였던 때 폭스바겐의 제안은 획기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으니,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당연했다.

논의 초기에 독일 노조의 의견은 현재 한국의 노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일 금속노조는 신설 공장이 임금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물론 월 5000마르크로 실업자를 새로운 공장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까지 거부하기엔 사회적 반향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임금의 하향 평준화에 대한 우려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노사의 협상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의견 충돌이 많았고 급기야 결렬 선언까지 나왔다.

그러나 마침내 당시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중재로 아우토 5000은 성사된다. 협상의 전후 과정에서 많은 외부 전문가들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도 아우토 5000의 결실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아우토 5000은 일자리의 중요성을 인식한 독일 노·사·민·정의 사회적 공동 작품이었다.

광주형 일자리 논의도, 독일에서 아우토 5000이 사회적 의제로 제기된 직후와 매우 유사한 단계를 밟고 있는 듯하다. (지역)사회와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고대하고, 노조는 우려 내지 반대한다. 이러한 노조 주장을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주의적 행동이라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몫을 위협받으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독일 금속노조도 다르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을 노조의 반대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노조가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하향 평준화’이며, 다른 하나는 공장의 ‘비전’이다.

5000마르크 임금으로 합의된 배경


먼저 하향 평준화와 관련해 아우토 5000 협상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게 있다. 산별협약의 역할이다. 당시 임금 수준이 5000마르크로 합의된 것은 그것이 산별협약 임금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산별협약 임금은 노사가 정한 해당 산업의 사회적 최저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보다 20% 정도 낮은 임금이었지만 이는 사회적 차원에서 수용 가능한 것으로 합의된 수준이었다. 이처럼 산별협약은 아우토 5000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촉매제로 작용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산별협약이 없다. 있다 해도 별 내용이 없다. 이는 하향 평준화를 막을 기준 자체가 없다는 의미다. 노사가 어느 수준에서 합의해야 할지 막막해서 결국 싸움만 하게 된다. 광주형 일자리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은 여기에 있다. 한국의 기업별 교섭체계가 낳은 부작용이다.

물론 지금 바로 산별협약을 만들 수는 없다. 이는 다음 과제로 남겨놓고 당장 광주형 일자리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협상 과정에서 빠져 있다. 이런 상황은 광주형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에서 결정하면 다른 편에선 반대하고 나서는, 한국에서 전형적인 ‘참여 없는 대립적 노사관계’가 반복되기 쉽다. 현재로서는 일단 당사자들이 같이 모여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적정 기준을 세우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다음은 신설 공장의 비전에 대한 문제다. 신설 공장은 경형 SUV를 연 10만 대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노조 측은 이 계획을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경차 시장은 이미 공급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신설 공장이 연간 10만 대를 더 만든다면 ‘치킨게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지금은 모두가 친환경 차를 바라보고 있는데 국내에 새로 내연 기관차 공장을 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는다.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다. 신설 공장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투자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우토 5000은 독일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생산 모델을 위한 혁신적 실험 공장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시장전략과 부품공급 체계를 넘어 채용에서 교육·훈련, 작업 조직까지 공장의 전 영역에 걸쳐 혁신적 요소를 도입했다. 그 결과로 첫 번째 모델인 투우란은 3년 만에 미니밴 시장의 27%를 점유하는 성과를 올린다. 이후 아우토 5000의 혁신과 경쟁력은 타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아우토 5000의 임금수준은 폭스바겐 노동자들과 비슷해졌다. 또한 판매 증가로 물량과 인력 이동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8년간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2009년 폭스바겐에 통합된다.

현대차든 광주시든, 광주형 일자리의 경영 주체는 제품과 시장전략, 경쟁력 측면에서 새로운 청사진을 빨리 그려내야 한다. 그래야 현재 노조가 제기하는 우려를 불식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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