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기는 예술이고 일하기도 예술이며 좋은 사업은 최고의 예술이다.” 인간 영혼의 숭고한 발현인 예술을 돈 벌기 따위에 비유하다니! 고통 속에 예술혼을 불태우다 세상을 떠난 수많은 예술가들은 뭐가 되나?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하지만 이 사람의 인생을 보면 수긍하지는 못해도 부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이다.

〈디스 이즈 워홀〉은 누구나 들어봤지만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앤디 워홀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워홀의 일생과 대표작을 소개하는 건 다른 미술책과 비슷한데, 페이지마다 만화를 추가해 중요한 장면을 재치 있게 그렸다.

워홀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좋든 나쁘든 그는 현대 미술의 혁신가였다. 그는 미술로 유명해졌고, 작품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 워홀은 1960년대 초 캠벨수프 캔, 코카콜라 유리병 등을 라벨까지 똑같이 그려 명성을 얻었다. 예술은 위대한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가장 미국적이고 일상적인 브랜드를 그림 소재로 선택했다.

 

〈디스 이즈 워홀〉 캐서린 잉그램 지음, 앤드루 레이 그림, 유지연 옮김, 도서출판 어젠다 펴냄

워홀은 예술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도 혁신했다. 1964년 5층짜리 창고를 빌린 워홀은 전설적인 작업실 ‘실버 팩토리’를 열었다. 온통 은빛으로 치장된 이곳은 자아도취에 빠진 워홀과 추종자들의 놀이터이자, 작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작업실이 공장인 이유는 똑같은 실크스크린 작품을 여러 장 ‘찍어내’ 팔았기 때문이다. 팩토리에서 워홀은 감독만 할 뿐 그림을 찍는 노동자를 따로 두었다.

워홀의 비즈니스 감각은 날카롭고 탁월했다. 그는 시대를 반영하는 이미지를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잡아내는 데 귀재였다. 비즈니스 세계에는 경쟁이 빠질 수 없다. 1960년대 초 워홀은 팝아트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리히텐슈타인, 올덴버그 등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즐겨 보았던 만화 주인공 ‘딕 트레이시’를 소재로 그린 워홀은, 리히텐슈타인이 만화 인쇄에 쓰이는 점을 확대한 그림 양식을 먼저 완성하자 크게 낙담했다.

리히텐슈타인의 새로운 양식에 낙담하기도

그러나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스스로를 브랜드화했고 유명인과 어울리며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었다. 그저 감각 좋은 ‘금수저’ 아니었냐고?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이민자 2세대였다. 어린 시절에 대해 종종 거짓말을 하면서 내면세계를 철저히 가렸다. 텅 비었기 때문인지, 대중이 원하지 않는 것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디스 이즈 워홀〉의 일러스트는 그래픽노블 작가 앤드루 레이가 맡았다. 깔끔한 선에 밝고 선명한 색채,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소적인 분위기까지 워홀을 표현하기에 딱 맞다. 그림의 비중은 적은 편이지만, 양이나 질이 일반적인 삽화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디스 이즈’는 시리즈 도서로 앤디 워홀 외에도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마티스, 반 고흐 등 유명 화가의 인생과 작품을 같은 방식으로 소개한다. 화가마다 그림 작가가 달라서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온라인콘텐츠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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