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낭만으로 상징되는 도시 파리에 살고 있는 ‘초딩’의 삶은 어떨까? 만화가 리아드 사투프는 열 살짜리 프랑스 소녀 에스더의 실제 이야기를 〈에스더가 사는 세상〉으로 보여준다. 실망스럽게도 환상적이고 두근두근 가슴 뛰는 아이들의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황폐하고 슬픔과 눈물로 얼룩진 불행이 득실득실하지도 않는다. 유쾌하고 엉뚱하며, 오빠에게 진짜로 멍청하고 못생겼다고 할 만큼 솔직하고, 기특하다가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폭력인지도 모른 채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에스더는 금발이 되고 싶고(어른이 되면 염색할 예정이란다), 커서는 가수로 슈퍼스타가 되겠다는 평범한 소녀다. 그녀가 매일매일 꿈꾸는 행복은 바로 ‘아이폰’이다. 아버지는 에스더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절대로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겠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쓰는 모습을 보며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가난하다’고 슬퍼한다.

초등학생 눈에 비친 비틀린 세상

〈에스더가 사는 세상〉
리아드 사투프 지음
이보미 옮김
국일미디어 펴냄

프랑스 학생들도 학교에 가기 싫은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견딜 수 있다. 에스더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어른들이 쇼핑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놀거나, 아니면 남자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피해 도망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제일 부잣집 아들인 막심은 무척이나 거들먹거리지만 인기도 가장 많다. 에스더는 막심의 친구 루이와 짧은 키스를 나누고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린다. 바로 다음 주에 루이는 에스더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혼을 해버렸다. 아, 덧없는 사랑이여.

학교는 다양한 사회 갈등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빈부 격차가 있고, 흑인이나 아랍인은 인종 차이를 어릴 때부터 자각하고 있다. 외모에 따라 인기가 정해지고, 왕따도 존재한다.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갈등의 씨앗은 이미 어린이의 눈에도 충분히 보인다.

에스더는 절친한 친구 유제니와 갈등을 겪는다. 유제니 집안은 프랑스 곳곳에 별장이 있을 정도로 부자다. 유제니가 에스더에게 ‘너는 어떻게 내 화장실만 한 집에서 살 수 있니?’라며 쏘아붙인 적도 있다. 이 장면에서 유제니 집의 넓고 황량한 공간과 작은 두 소녀를 대비시키는 연출이 압권이다. 에스더가 여름 캠프에서 유제니와 같은 방을 쓰지 않고 새 친구를 사귀자, 유제니는 에스더의 적으로 돌변한다. 그렇게 책은 끝난다. 하지만 에스더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과연 에스더는 유제니와 화해할까? 비욘세를 잇는 팝의 여왕이 될 수 있을까? 

리아드 사투프는 〈미래의 아랍인〉으로 어린이가 보는 어른들의 비틀린 세상을 재미있고도 날카롭게 풍자해 2015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에스더가 사는 세상〉은 〈미래의 아랍인〉의 조금 가벼운 프랑스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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