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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오욕의 역사에 대국민 보고서 내라”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사진)은 ‘현병철 위원장 체제’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에 사표를 냈다. 그는 지난 9년간 인권위가 지닌 오욕에 대해 성찰과 혁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7년 06월 27일 화요일 제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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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정책연구소는 2011년 문을 열었다. 인권 분야 최초의 민간 연구소였다. ‘망명 인권위원회’로 불리기도 했다.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서 가장 먼저 사표를 던진 김형완 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인권정책과장이 소장을 맡았다. 김창국 초대 국가인권위원장과 사퇴한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이 합류했고 인권위 사무처 출신이 대거 연구소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서울시 인권위원이기도 한 김 소장은 인권위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정책 기본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왔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01년 인권위 출범부터 굵직한 인권 의제를 다뤄온 그는 지난 9년간 인권위의 부침을 보며 누구보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인권위에 대해 물었다.

ⓒ시사IN 조남진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위)은 “현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이 물러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인권위 지위를 격상시키겠다고 이야기했다.


대통령의 인권위 위상 강화 방침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했다기보다 검찰 개혁, 특히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이뤄진 측면이 크다. 수사권을 조정해 경찰로 넘기는데 경찰에 대한 시민 불신이 크다 보니 ‘인권 경찰’로 거듭나게 함과 동시에 견제 장치로서 인권위 권한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인권위가 경찰 견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군대 내에 인권 문제 전담 부서를 만들었듯이 인권위 안에 경찰 전담 부서가 생기지 않을까. 어느 권력이든 인권위를 달가워할 권력은 없다. 쓴소리하는 기구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거다. 참여정부 때도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쓴소리를 해서 논란이 됐고, 노 전 대통령이 “인권위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기구”라고 해서 매듭지어졌다.

인권위 강화를 환영부터 할 줄 알았다.


대통령 스스로가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 인권위 위상 강화 문제는 도구적으로 호명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인권위는 희희낙락할 상황이 아니다. 엄중한 시기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인권위가 업무보고에 응한 태도가 의아하다. 인권위는 입법·사법·행정에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여서 보고할 의무가 없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인수위에서 업무보고를 요구했을 때 인권위는 거부했다. 협의하자고 하면 응할 수 있다고 역제안했다. 그런 전례에 비춰봤을 때, 이번에 한달음에 달려간 인권위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통령의 위상 강화 발언에 고무되어서 조직이나 확대하자는 심산으로 달려간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난 9년간 인권위의 행동을 보면 그런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기관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안이 나왔다. 헌법기구화 논의도 있는데.


바람직하다. 법적 강제가 아니라 유인하는 방식이다. 인권위가 정상화된다면 인권 상황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전제조건이다. 위원들은 차치하고라도 집행 기능을 가진 사무처가 권력 눈치를 보고, 관료주의가 만연해 있는데 어떻게 미래를 논할 수 있나. 인권위가 제도의 한계 때문에 제구실을 못했다고 단정할 것도 없다. 그 때문에 권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건 있지만, 있는 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할 수 있는 게 적지 않다. 예컨대 대통령에게 특별보고를 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거절해 성사가 되지 않는다 해도 국가적 인권 어젠다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이슈 파이팅을 했어야 한다. 백남기 농민 사건, 테러방지법, 정당 해산, 블랙리스트 등과 관련해 국회에 출석해 발언할 수도 있었다. 정권에 누가 되지 않고, 국민들에겐 ‘시늉’할 수 있는 말단 의제들로 9년을 끌어왔다. 그 뒤편엔 인권과 관련해 도탄에 빠진 국민들 신음소리가 있었다. 이런 위선과 기만이 어디 있나. 과거 청산이 필요하다.

과거 청산의 우선 과제는 뭐라고 보나?


첫 단추는 현 인권위원장과 사무총장이 물러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권위가 지난 오욕의 역사에 대해 성찰과 혁신의 대국민 보고서를 내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어긋났는지 낱낱이 분석해 국민에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혁신 과정에 외부 인권 시민사회와의 협치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인권위는 원래 거버넌스(정부와 기업, 시민단체 등이 협력해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 기구라 관료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그걸 전제로 독립성 제고나 위상 강화 방안이 나와야 한다. 위원 선임 과정에서 다원성과 투명성이 보장되고 법률가 중심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업무가 정상화되면 상임위원도 확충해야 할 것 같다. 정보 인권같이 새로운 이슈까지 수용하려면 기존 인력으로는 어림없다.

ⓒ연합뉴스
조국 민정수석이 5월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기를 인권위의 전성기로 꼽는다.


당시엔 당시대로 한계가 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처음 독립기관 형태의 인권 기구가 생길 때 내부나 외부 모두 경험치가 없어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1월에 공식 출범했지만 이듬해 8월까지 70여 명밖에 충원하지 못했다. 공무원 진입 장벽이 높아서 외부 전문가를 뽑기가 쉽지 않았다. 정상궤도에 들어선 건 2003년 참여정부에서다. 처음 주력했던 건 실태조사다. 정책을 발굴하려 해도 국민의 인권 실태를 파악해야 가능하다. ‘국민 억울함을 풀어주라고 권한 줬더니 연구소도 아니고 밤낮 실태조사만 하고 있느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하지만 실태조사에 공들인 결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이 나올 수 있었다.

인권위 위상은 권고 기구라는 한계와도 관련 있을 것 같다.


유엔에서 각국에 인권위 설립을 권하면서 권고 기구로 자리 잡길 요청했다. 인권위는 원칙적으로 권력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권위 설립 이전에 권고 기구를 경험한 적이 없다. 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이한열) 등 국가로부터 직접 살해당하는 역사를 살아와 어떻게 하면 힘을 통해 국가를 제어할 것인지 고민해왔다. 인권 신장은 힘 있는 기관이 보호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완장 두르고 인권침해 가해자의 목을 친다고 인권 신장이 되겠는가. 인권 기구를 개에 비유한다. 개는 호랑이 앞에서 짖다가 먹힐 수도 있다. 싸우라는 게 아니다. 그런데 지난 9년간 인권위는 짖지도 않았다. 경비견으로서 제구실을 못한 거다. 짖음으로써 센서 구실을 하는 게 권고 기구다.

인권위가 다루지 않아 아쉬운 최근 이슈가 있다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블랙리스트 사건은 직권 조사해야 할 내용이었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사드 배치 문제 역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련된 사안이다. 일일이 기억도 못하겠다. 오죽했으면 시민들이 한겨울에 광화문광장으로 나갔겠나. 인권위가 소임을 제대로 했으면 그런 엄청난 사회적인 소모가 없었을 것이다. 시민혁명 자체는 높이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광장 정치가 지닌 소모성도 있다. 그걸 막자고 제도나 기구를 만드는 건데 그 역할을 못하니까 국민들이 직접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판이 장외로 나가면 제도·기구 무용론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인권위는 어떻게 가야 할까?

자치·분권의 시대 흐름에 따라 지방정부에서도 인권 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인권 보장을 위한 국가 공권력의 민주화, 사회 혁신 등 모든 분야에서 인권의 가치를 제외하고 말할 수 없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앞서 말한 걸 전제로 이후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문제들과 연계해 인권 레짐(가치·규범 및 규칙들의 총합)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한다. 물론 대전제는 이러한 로드맵이 인권 시민사회와의 협치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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