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루비니 교수(위)가 올해 2월 발표한 금융 재앙 12단계 가운데 대부분이 9월 현재 현실화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경제학자다. 1996년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닥칠 것을 예측해 2년 뒤 ‘족집게 예언가’로 세계적 스타가 됐다. 10년 뒤인 2006년, 그는 미국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연쇄 금융위기가 닥칠 것을 경고해 탁월한 예견 능력을 보였다.

루비니 교수가 뜰 때면 그의 홈페이지도 덩달아 뜬다.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그가 만든 ‘아시아 금융위기 홈페이지’가 하루 조회 수 수만 건을 기록하며 주목되었다. 올해 미국 금융위기가 깊어지자 그의 홈페이지(rgemonitor.com)는 북새통이다.

루비니 교수는 2008년 2월5일 이 홈페이지 ‘금융 재앙의 12단계’라는 글(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을 발표했는데 7개월 뒤 일어난 베어스턴스·리먼브러더스·AIG 사태 등을 정확히 예견해 충격을 주었다.
〈시사IN〉은 루비니 교수가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9월13일(토) 홈페이지에 쓴 글을 요약 소개한다. 이 칼럼에는 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학계와 전문가로부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9월13일 : 만약 이번 주말(9월14일)까지 리먼브러더스가 자신을 인수할 곳을 찾지 못한다면, 리먼과 거래해온 사람들은 월요일에 환매를 요청할 것이다. 이건 리먼의 몰락뿐만이 아니라 다른 투자회사(투자은행)에도 환매 사태가 번지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처음에는 메릴린치, 그 다음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그리고 어쩌면 대형 상업은행의 자회사인 JP모건체이스나 시티그룹까지 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
이 환매 사태는 금융 시스템의 엄청난 체계적 붕괴를 몰고 올 것이다. 이게 바로 뉴욕 연방준비은행(Fed)이 월가 금융회사 대표들을 금요일(9월12일)에 소집해 리먼브러더스에 넣은 돈을 빼지 말고 참아달라고 요청한 이유다.

‘손실부담(bail-in)’은 구제금융(bail-out)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bail-in’은 1998년 여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투자자나 1997년 겨울 한국의 채권자들이 했던 일과 비슷하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풀어 부실기업을 살리는 구제금융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는 위험이 있다. 금요일, 게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월가 주요 회사의 수장에게 만약 당신들이 리먼브러더스의 생명줄을 뽑으면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할 것이고, 그 다음은 당신들 차례가 될 거라고 경고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베어스턴스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리먼은 베어보다 규모가 훨씬 클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였다. 모든 월가 금융회사가 리먼브러더스와 이런저런 거래를 해왔다. 따라서 리먼의 파산은 시장 패닉을 불러오는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다.

리먼브러더스가 요즘 자기 회사를 인수해줄 곳을 찾아 동분서주한 것은 회사가 파산 직전에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동성이 없는 부실 자산만 400억 달러에 이르러서 자산과 부채를 계상하면 순가치가 마이너스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업도 선뜻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할 의향이 있는 잠재적 매수자(예를 들어 BoA)는 정부가 나서서 시장가격보다 높은 값에 부실 자산을 인수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 문제를 야기하는 일종의 스캔들이 된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을 치워주지 않으면 아무도 리먼을 인수하지 않는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염려해 공적자금을 쓰기 어렵다. 일종의 치킨 게임이다.

그래서, 지금 이 주말 동안 미국 재무부와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1998년 LTCM 사태나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리먼브러더스와 거래해온 민간 기관이 스스로 악성 자산을 일부 부담하는 손실부담(bail-in)이 이뤄지도록 시도하고 있다.

정부의 땜질 처방은 실패했다

하지만 이 ‘bail-in’은 과연 이뤄질까? LTCM과 한국의 경우, 거래 관계자가 많아야 20여 군데에 불과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미국 정부는 열 몇 군데의 월가 금융기업을 설득하는 것뿐 아니라 많은 다른 거래자(헤지펀드·은행·투자회사 등등)까지 설득해야 한다. 이건 너무나 복잡한 문제다. 리먼브러더스에게 남은 길은 파산법 11장에 따라 끝나는 것뿐이다.
 

ⓒReuters=Newsis루비니 교수(위)가 올해 2월 발표한 금융 재앙 12단계 가운데 대부분이 9월 현재 현실화하고 있다.


2008년 2월 나는 ‘금융위기의 12단계’라는 글에서 투자 회사 한두 곳이 도산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또 앞으로 2년이 가기 전에 투자은행(리먼·메릴린치·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이 투자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투자은행이 자랑했던 증권화(securitization)는 이미 반쯤 죽은 상태다. 앞으로 투자은행은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프라이머리 딜러 대출(PDCF)의 도움을 받는 다른 일반 은행과 마찬가지로, 당국의 규제를 받게 될 필요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차입금은 적어지고 유동성은 높아져야 하며, 자본금은 많아져야 한다. 이러면 그동안 투자은행들이 자랑했던 수익성은 낮아진다.

그동안 초단기 자금을 빌려서 장기 대여·장기 투자를 한다거나 유동자금을 빌려서 비유동 자산에 투자하는 식의 미스매치(불일치)가 투자은행을 부실하게 만들었다. 이제 이런 투자 중개회사는 재무구조를 안정시킬 대형 상업은행과 합병할 필요가 있다.

단위 투자회사(independent broker dealers), 즉 투자은행이 무너지는 과정은 베어스턴스부터 시작했다. 이제 리먼브러더스 차례가 됐고, 내일은 메릴린치가 될 것이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그 다음이다. 독립적인 간판을 달고서는 어떤 투자은행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재무부는 또 다른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의 재앙이 닥치기 전에, 이 투자은행의 손실을 감내할 만한 대형 금융 파트너를 찾아서 합병하라고 충고해야 한다. 연방은행과 재무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임시방편식 땜질 처방은 실패했다. 좀더 근본적이고 전체 시스템을 조망하는 위기대응 방식이 필요하다.

그림자 금융 시스템을 이끌었던 기관(투자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 구조화 투자회사, 유동화 전문회사 등)이 직면한 현실은 파산 직전의 은행과 비슷하다. 그런데 은행과 달리 그들은 합당한 규제나 감시를 받지 않았다. 예금보험도 없고, 중앙은행과 같은 최종 대부자도 없다.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른바 구조화 투자회사(SIV)니, 유동화 전문회사(conduits)니 하는 것들은 이미 망가진 지 오래다. 다음 차례는 불안정한 하룻밤 대출과 초단기 금융에 의존했던 투자 중개회사(리먼브러더스 등) 차례가 될 것이다. 다음은 수백 개에 달하는 부실 헤지펀드가 부도 쓰나미를 맞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대형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MMF(머니마켓펀드)에서 대규모 인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대공황 이래 최대 금융위기

이건 정말 대공황 이래 최대 금융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더 고약한 것은 구조적인 금융위기가 경제불황 시기와 맞물리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경제·금융 위기 과정을 (야구의) 9회로 본다면 이제 겨우 3회에 불과하다. 터널 끝에 보이는 불빛은 반대편에서 들어온 탈선한 기차일 뿐이다.
9월14일 저녁 업데이트 : 내 블로그에서 쓴 대로, 정부가 리먼의 악성 자산에 대해 구제금융 조처를 하지 않자, 이 회사는 파산했다. 아무도 이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몇 달 전 블로그를 통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투자회사(메릴린치·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가 간판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뉴스에 따르면 메릴린치가 BoA에 합병된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나면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의 차례가 될 것이다.

버냉키·게이스너·폴슨이 존 맥(모건스탠리 CEO)과 로이드 블랭크페인(골드만삭스 CEO)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충고는 이거다. “단 1분도 더 기다리지 말고 안정적인 국내외 대형 상업은행과 합병할 길을 찾아라. 그렇지 않으면 도산할 것이다.”

이것은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은행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 몇 달 전 예상했듯이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는 그림자 금융 시스템의 붕괴는 지금 매우 빠른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

기자명 번역·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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