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가평역은 MT를 온 대학생 무리로 가득 찼다. 인파를 뒤로하고 남이섬 방향으로 15분 정도 걸어갔다. 인도가 없는 길을 5m 정도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단독주택이 나온다. 가평의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 ‘꾸다’. 초행길에 찾아가기 쉬운 편은 아니다. 홈페이지 안내를 미리 꼼꼼하게 읽고 가길 추천한다. 집 앞에는 작은 자전거가 서서 ‘GOODA’라는 팻말을 걸고 간판 구실을 한다. 앞마당의 텃밭이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꾸다는 ‘꾸다지기’인 ‘펭’과 ‘몽’의 집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벗어나 가평에 터를 잡은 것까진 좋았는데, 넓은 단독주택의 ‘난방비 폭탄’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난방비만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 4년 전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사는 공간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전용 게스트하우스가 되었다.
꾸다지기와 게스트는 거실과 부엌을 공유한다. 햇빛이 한 아름 쏟아지는 넓고 깨끗한 거실은 꾸다 게스트하우스의 자랑거리다. 거실 벽면은 만화책 300여 권과 책 1000여 권으로 꽉 차 있다. 펭과 몽의 것이지만 손님들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책장 위에는 퍼즐과 ‘루미큐브’ ‘클루’ ‘부루마블’ ‘젠가’ 등 보드게임이 있다. 역시 자유롭게 즐기고 제자리에 놔두면 된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소파에 누워 만화책을 읽으면 오후가 훌쩍 지나간다. 저녁에는 꾸다지기들이 커다란 벽난로에 불을 붙여 훈기가 돈다. 거실에는 늘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자기 취향의 CD를 가져와서 틀어도 된다.
부엌에는 게스트용 냉장고와 식기가 따로 있다. 재료를 사와서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다. 가평역 옆 농협 하나로마트가 가장 가깝다. 전자레인지, 토스터, 커피포트도 있다. 냄새 나는 육류와 생선 요리는 삼가야 한다. 귀차니스트를 위해 햇반, 데워 먹는 카레, 컵라면, 무항생제 날계란을 한 알 단위로 팔고 있다. 식탁은 다양한 종류의 차와 커피로 가득하다.
텀블러 가져오면 커피는 무료로 드립니다
꾸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는데, 바로 게스트가 직접 침구 시트를 갈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스트가 떠날 때마다 매번 침대 시트와 이불 전체를 빠는 건 물 낭비, 세제 낭비, 에너지 낭비로 환경을 해친다고 판단했다. 고심 끝
에 면 100% 시트 두 장과 베갯잇을 제공하기로 했다. 게스트가 직접 체크인 후 시트와 베갯잇을 끼워넣고, 체크아웃 때 벗겨서 빨래통에 넣어주면 된다.
이 밖에도 꾸다의 생태주의 운영 철학은 곳곳에 배어 있다. 그 덕분에 게스트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테면 세면장 온수는 아침 7시30분~9시와 밤 8~10시에만 제공된다. 기름을 아끼기 위해서다(미지근한 물은 계속 나온다). 커피 또한 텀블러를 가져온 게스트에게만 무료로 제공된다. ‘커피만은 까다로운’ 펭이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려준다. 평소 시민단체를 후원해왔다면 숙박비 10%를 할인해준다.
꾸다에서 남이섬선착장은 도보로 약 20분, 자라섬은 약 25분이 걸린다. 차를 타고 가면 자라섬도 5분이면 도착한다. 꾸다지기들은 남이섬보다 자라섬을 선호한다. 자라섬에서는 매년 10월 국제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그 외의 기간에는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기자는 자전거를 빌려서 자라섬을 한 바퀴 돌았다. 잔잔한 강물과 갈대, 새순이 돋기 시작한 버드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만화책 몇 권 가지고 가 돗자리를 펴고 뒹굴면서 읽으면 최고의 소풍이 될 것 같다. 꾸다지기들이 추천하는 산책로를 따라 북한강변을 천천히 걸어봐도 좋다.
꾸다지기들이 추천하는 ‘맛집’에도 가봤다. ‘웰빙보리밥’집이다. 제대로 된 간판이 없고 가정집처럼 보여서 찾는 데 헤맸다. 하지만 헤매서라도 갈 가치가 있었다. 10가지 정도 제공되는 기본 반찬과 나물이 모두 맛있었다. 대부분의 식당 반찬과 달리 너무 달짝지근하거나 짜지 않고, 나물 고유의 맛이 입맛을 돋웠다. 부드러운 손두부가 들어간 얼큰한 전골에도 계속 손이 갔다. 각종 나물과 강된장의 향이 조화로운 보리비빔밥도 무척 맛있었다. 채식주의자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
꾸다는 MT를 온 대학생들처럼 ‘거침없이’ 놀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꾸다에는 재방문자들이 많다. 올해 3월에도 기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꾸다를 다시 찾은 게스트들이었다고 한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행 와서 돈을 내고 묵을 곳을 샀다기보다, 정말로 친구 집에 초대를 받은 기분이었다. 딱히 대단한 관광지에 가지 않고 게스트하우스 안에만 있어도 좋다. 마음을 열고, 꾸다지기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느리지만 꽉 찬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단, 주인장들이 여행을 좋아해 종종 문을 닫으니 방문 전 반드시 확인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