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KBS 사장으로 나설 사람이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번 사장 후보자부터는 방송법 개정에 따라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라는 새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곳에 내놓아도 공영방송 KBS를 대표하는 데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학식과 덕망, 철학과 전문성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사장 후보자를 공모한다. 땅땅땅!”

KBS 사장 공모가 끝났다. 모두 14명이 응모했다고 한다. 대부분 보수 정권하에서 친정부 성향을 드러내온 KBS 출신의 재수생, 삼수생들이다. 그런데도 KBS 이사회가 공영방송의 미래와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을 위해 이런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국민의 기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분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박근혜 정부의 인사 스타일은 최근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도 여지없이 적용되었다. 업무에 대한 이해나 전문성보다는 이견을 가진 그룹을 어떻게 제압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고려되었다는 인상이다.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종북’과 ‘좌파’로 규정해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조차 외면해버리는 극단주의가 앞으로의 KBS를 어떤 위기로 몰아넣을 것인지 두려울 뿐이다.

이분들이 주도하는 이사회에서 어떤 사장이 선출될 것인가를 상상해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미션은 총선과 대선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줄 ‘믿음직한’ 사장을 뽑는 것이겠다. 물심양면으로 ‘박심’을 대변하기 위해 진력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사장 공모 이후의 일정과 관련해 무엇 하나 투명하게 드러나는 게 없다. 여당 추천 이사들 주도로 밀실 안에서 결정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회의 비공개 요건에 대한 법적 근거 따위는 관심 범위 밖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사장 선임 때처럼 야당 추천 이사들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 최종 후보자로 추천되는 난감한 상황이 재연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향후 5년을 가를 총선과 대선 관리용 사장이다. 문단속·입단속·표단속이 물샐틈없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사장 추천 과정에 대한 공개, 특별다수제나 사장추천위원회 등 형식적인 절차 따위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우연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추정컨대 서류를 제출한 인물 중 차기 사장이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 이유도, 절차를 복잡하게 가져갈 이유도 없다. 이는 결국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걸쳐 180° 달라진 KBS 뉴스의 틀을 만들었던 보도본부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정권의 의중을 대변하기에 온 힘을 기울였던 심의위원,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도해 공영방송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방통위원, 자신의 연임을 위해 후배들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현 사장 중 연봉 2억여 원의 문지기가 있다는 얘기다.

국정교과서 논란을 주도한 교수가 EBS 사장 후보로 거론되다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치적 고려가 1순위가 된 공영방송 사장 선임은 오히려 공영방송의 사회적 역할을 무력화하고 국민의 불신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더 나은 서비스, 더 나은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 변화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중장기 비전에 대한 고민이 담길 수 있는 여건이 이번에도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안정적인 공공서비스, 국민의 알 권리,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지역의 관심사를 의제화할 수 있는 시선, 고품질 다큐멘터리와 새로운 포맷 개발 등 공영방송의 선도적 구실 따위는 개밥에 도토리일 뿐이다. 이는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는 공영방송을 국민 앞에 붙들어두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인데도 말이다.

또 다른 흉흉한 소문도 들려온다. 국정교과서 논란을 주도해온 교수가 EBS 신임 사장 물망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어쩐지 신임 이사회에 교육부 장관 출신의 이사장을 포함해 교육계 인사가 유난히도 많다 싶었다. 추천 단위나 이력으로 성향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만 9명 중 4명이니 과반에 가까운 수치다. 물론 EBS는 이사회가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사장의 행보를 이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그 파장은 상당할 것이다. 바라건대 이런 고약한 예측이 현실로 구현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공영방송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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