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가물가물하다. 다만 오열하는 ‘강쌤’이 있었다. 눈물도 많고 각종 ‘앓이’ 전문인 강미순 교사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던 날 섭섭한 마음에 목 놓아 울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박혜주 교사와 동료 교사가 부산 롯데백화점 앞 카페에 모였다. 한 학교에 있으면서도 서로 잘 몰랐다. 각자가 교단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헤어짐을 앞두고서야 통하는 마음을 확인한 것. 스터디 모임을 겸해 정기적으로 보기로 했다. 2013년 2월 첫 모임을 가졌다. 안준철 교사(순천 효산고등학교·시인)가 지면에 이들을 소개했다(〈시사IN〉 제415호 학교의 속살 ‘해운결의 맺은 부산의 세 여자 교육을 만나다’ 기사 참조). 글에 등장한 이들의 ‘해운결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까닭으로 모이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세 교사 중 두 사람을 부산에서 만났다.

의문은 금세 풀렸다. 해운대에서 결의해 ‘해운결의’다. 처음 떠난 MT 장소다. ‘교육적 이상을 지키고 실현시켜 나가기를 바라나이다’라고 쓰인 야심찬 ‘결의서’ 밑에 친필 사인을 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이념 아래 모인 건 아니다. 각자의 학교생활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했다. 강 교사가 교사 생활 8년차, 박 교사가 5년차다. 한 달에 한 번 교육과 관련된 책 한 권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미리 글로 정리해온 다음 토론하기도 한다. 그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세월호 사건, 제자 인터뷰 등을 다뤘다. 서로 관점이 달라서 간단한 주제라도 해석이 다르다. 한번 만나면 하루가 다 간다. 강씨가 모임의 회장, 박씨가 회계 담당이다.
 

ⓒ시사IN 신선영박혜주(왼쪽)·강미순 교사가 자신들이 만든 문집을 들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교육에 관한 고민을 나눈다. 서툴지만 한 해 동안 교단에서 고민한 흔적과 결심이 빼곡히 담겼다.
박 교사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은 많이 다르다. 과목도, 교사의 길을 선택한 이유도, 성격도, 남자 취향마저 다르다. 음악을 가르치는 강미순 교사는 행동파다. 궁금한 게 생기면 참지 못하고 바로 알아본다. 책의 저자를 만나고 싶으면 인터넷을 뒤져 이메일을 보내고 실제로 만나자고 하는 식이다. 별명은 ‘날라리 교사’. 여행을 좋아하는 영어과 교사 박혜주씨는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영어는 학문이라기보다 도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아이들이 좋다’는 공감대가 있다.

모임의 결실을 모아 매년 문집을 냈다. 2호까지 나왔다. 제본 형식으로 스무 권을 만들어 동료 교사나 제자에게 주었다. 체육 교사를 꿈꾸던 한 제자는 〈수학의 정석〉을 풀듯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서체나 글씨 크기도 제각각, 필기 자국이 그대로다. 서투르지만 한 해 동안 교단에서 고민한 흔적과 그 결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첫 번째 수업 시간의 수업 방법, 아이들이 너무 조용해서 감정 표현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스승의 날의 의미 등 주제가 다양하다. 교육 내용과 방식, 학생과의 관계 등이 주 관심사다.

박 교사는 영어를 좋아했지만 애초에 교사를 작정하지는 않았다. 교사가 되고 보니 적성에 맞았다. “교사가 되면 매년 같을 것 같았는데 매 시간 아이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강 교사는 졸업과 동시에 교단에 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교가 직장이 된다는 사실이 낯설어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깨달았다. 지금은 이른바 ‘논다’는 아이들과 가장 친한 교사라는 자부심이 있다. 자신보다 덩치 큰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제자들이 많이 다니는 유도장에 등록했다. 학교 밖 아이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다. 각각 아이돌 가수와 밴드 뮤지션이 된 두 제자가 현장에서 만나 찍은 사진을 보내왔을 땐 뭉클했다.

중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면 다들 묻는다. 아이들이 무섭지 않으냐고. ‘중2병’에 대한 편견이다. 두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모두 어른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소통 가능성이 충분하다. 박 교사는 “여학교에 있다가 남녀공학에 간다고 하면 남자애들 때문에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요새는 걔들 때문에 웃는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순간순간 빠르게 반응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어른들 눈에 문제처럼 보이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도 아이들이지만 답도 아이들에게 있다.

이 두 선생님. 도무지 그늘이 없어 보인다. “아이들이 좋다”는 말을 반복해 들으니 이질감이 든다. 교권 붕괴, 학교 폭력 따위 단어가 워낙 흔해서다. 물론 마냥 즐거운 건 아니다. 교사들의 차이도 크다. 믿었던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애써 준비한 수업에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면 상처받기도 한다. 과한 사교육도 문제다. 같은 중3을 가르쳐도 어떤 아이는 B와 D를 구분하지 못하고 누구는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한다. 부모의 환경이 영어로 대물림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강 교사는 합창과 타악기를 커리큘럼에 꼭 넣는다. 두 가지 모두 선행지식의 영향을 적게 받는 편이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주저없이 하게 되다

강미순 교사는 모임 이후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 전보다 주저함이 없다. “교사가 가장 못하는 말 중 하나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모임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을 듣고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이제 어렵지 않다. 제자들에게 질문을 받을 때도 ‘잘 모르겠는데 알아보고 얘기해줄게’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다. 교사 또한 배움의 연장선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박 교사 역시 교육 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교사를 넘어서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해간다는 걸 느낀다.

듣다 보면 겨를이 없다. 모임 중 강 교사가 진두지휘하는 합창부 ‘씽어쏭파이터’가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박 교사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혼인 이들에겐 남자 만날 시간이 없다. 모임에 나갈 때 쳐다보는 부모님의 눈빛이 썩 달갑지 않다. 강씨는 “어디선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선생님이 계실 텐데 이 인터뷰를 보고 젊은 교사들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좋겠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힘이 될 거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꿈은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궁금한 건 참지 못한다는 강미순 교사가 기자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기자를 꿈꾸는 제자에게 해줄 말을 묻는데 두 사람처럼 금세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교사라는 정체성이 직장을 넘어 일상에까지 온통 가득한 이들과 기자의 차이였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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