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서울 시내 대형 건물의 외벽은 초대형 태극기로 뒤덮였다. 자발성보다는 관제의 냄새가 난다. 본디 애국심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나 부모 등 자신과의 동질성이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에 그 근원이 있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인간으로서 존엄성 등 기본적 가치를 보호해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강요된 애국심은 권력의 독재화를 강화하는 도구로 악용된다.

한국은 광복과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나라를 되찾았지만 곧 이어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일인 만큼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발전도 이를 뒷받침할 민주적 토대 없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서서히 무너진다. 한때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높았던 아르헨티나는 무능·독재 정권으로 인해 쇠락을 거듭했다. 정치와 경제 개혁을 하지 않은 대가다.

이명박 정부 이래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표상으로나 체감상으로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남북관계를 포함해 어느 것 하나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나빠지고 있다. 정책과 인사에서 균형과 형평성 대신 편중과 편협함을, 분배의 정의보다는 독점의 강화를,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양보를 계속 요구한다. 대통령은 국가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문제, 메르스 사태 등 중대한 국가적 현안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무라야마 일본 전 총리가 아베 총리에 대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듯이 박 대통령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싶은 때에,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한다. 통치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태도다.

대통령 스스로 대화나 토론보다 보고를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국무회의 장면도 대통령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국무위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인물로 나눠주면 될 것을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부도 퇴보를 거듭한다. 대법관 구성에서부터 판결 경향까지 다양성은 사라지고 정치 지향적이라고 의심되는 판결이 속출한다. 물론 대법원 판결 대부분은 별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극소수의 민감한 판결이다.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성은 민주주의적 가치와 관련된 소수의 판결에서 판가름이 난다.

검찰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독일 연방 검찰총장이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 내부 문건을 공개한 인터넷 매체 기자를 반역 혐의로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곧바로 언론 자유 침해라는 강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연방 법무부는 메르켈 총리의 승인을 받아 그를 즉각 해임해버렸다.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민주주의·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임무이지 정권의 파수병 노릇은 그 임무도 아닐뿐더러 국익을 해치는 행위다.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이름도 생경한 단체의 고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수사가 시작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행위에 대해서는 일단 가차 없이 기소하고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 당사자가 겪어야 할 고통은 기소한 검사에 대한 인사상의 보상으로 돌아간다. 권력에 대한 충성이 그렇게 절실한지 보기에 딱하다.

나라에 대한 감수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헬조선’이라는 단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사법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2014년 기준 27%로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9위를 기록했다. 평균 신뢰도 54%의 절반 수준이다. 38위는 마피아와 정치 부패로 얼룩진 이탈리아(29%), 40위는 마약 범죄로 치안이 심각하게 불안한 콜롬비아(26%)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역시 34%로 조사 대상 40개국 가운데 26위에 머물렀다. 정부를 믿지 않는 국민이 10명 가운데 7명 정도 되는 셈이다.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국내 정치 현실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싫어서 ‘조선’을 사용하고 지옥을 의미하는 ‘헬’을 붙였다. 청년 세대의 조국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를 계속 발전시킬 경험과 능력, 비전을 지닌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지만, 대국민 담화에서조차 준비한 원고만 읽을 뿐 질문도 받지 않고 뒤돌아서는 대통령의 자세야말로 정상화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