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은 만화 〈20세기 소년〉의 말 풍선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넣은 패러디물(위)을 만들었다.
촛불 정국 와중에 누리꾼이 재해석해 큰 선풍을 일으킨 콘텐츠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본 얼티메이텀〉 시리즈를 패러디한 〈뼈의 최후통첩〉.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만화 〈20세기 소년〉이다. 이 두 콘텐츠는 모두 원작에 소리나 대사를 새로 입혀 현 시국을 풍자하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났다. 만화를 잘 보지 않는 독자라면 〈20세기 소년〉이 낯선 작품일 수 있는데, 일본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우라사와 나오키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8년에 걸쳐 24권(본편 22권·에필로그 2권)으로 마무리한 대작이다. 〈몬스터〉에서 보여준 미스터리와 추리소설의 기법, 인간의 사악한 내면에 대한 고찰이나 〈야와라〉에서 보여준 소년만화 같은 씩씩함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하지만 추리소설 기법으로 소년 시대인 1970년대와 1997년과 2000년을 교차하며 스릴 넘치게 끌고가는 앞부분에 비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뒷부분은 지루하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1970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겐지와 친구들이 비밀기지를 만들고, 지구 최후를 예언하는 〈예언의 서〉라는 조악한 책을 만든다. 그런데 1997년 평범한 30대가 된 이 친구들 앞에 ‘친구’라는 낯선 인물과 조직이 등장한다. ‘친구’는 우민당을 만들어 정계에 등장하더니, ‘절교’라는 이름의 테러를 가하며 자신의 세력 확장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없애버린다. 어느덧 세상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접어들고, ‘친구’는 살인 바이러스를 퍼뜨려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자기는 백신을 만든 인류의 구세주로 등장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조직이 된 친구. 2015년, 친구는 암살당한 뒤 교황 앞에서 부활하고 전세계에 더 강력한 살인 바이러스를 뿌려 다시 인류를 몰살시키고 세계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진짜 친구들이 인류를 완전히 멸망시키려는 ‘친구’의 야욕에 맞서 싸운다.

‘친구 시대’와 ‘MB 시대’의 공통점

이렇게 전개되는 이야기 중 친구가 세계 대통령이 된 뒤 외부 바이러스 지역과 고립된 도심 지역에서 시위하는 모습에 새로운 대사를 첨가한 만화가 패러디 〈20세기 소년〉이다. 2015년 서력(서기)을 끝내고, 친구력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쓴 세계 대통령 ‘친구’. 이  ‘친구력 3년’이 아니라 ‘명박력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친구의 시대’를 가지고 ‘MB의 시대’를 비유한다. 촛불집회 3년째지만, 여전히 물대포를 쏘아대며 ‘좌익 빨갱이’의 배후 조종을 이야기하는 진압경찰. 대운하 사업 실패와 수돗물 민영화 같은 이슈도 슬쩍 끼워넣은 흥미로운 패러디는 사실 〈20세기 소년〉이라는 원작이 있기에 더 실감난다. 언론을 통제하고, 의회도 장악한 뒤 구원자로 떠오른 ‘친구’. 만화를 보는 독자야 ‘친구’가 악이고, ‘겐지와 친구들’이 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만화 속에서 ‘친구’를 지지하고, 그를 ‘세계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들도 그럴까? 얼핏 보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20세기 소년〉은 그 황당함 속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많은 학자가 MB를 소통을 거부하는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평가한다. ‘친구’는 일본을 장악하더니, 여러 시나리오를 동원해 신의 위치에 올라섰다. 혹 그의 꿈이 아닐까? 며칠 전 ‘조·중·동’이 ‘다음’과 ‘절교’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친구’를 따르는, 우민당의 중심 세력도 자신을 반대하거나, 자기 비밀을 알아챈 사람들과 서슴없이 ‘절교’한다. 촛불은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20세기 소년〉을 읽다 보면 적나라한 사회 모습의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

어디 그뿐일까. 현실에서 만화가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노트와 펜 하나를 들고 거리에 나와 만화를 그리는 박재동·이희재 화백이 있다. 우리만화연대에서는 르포 만화를 그릴 계획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한국적 르포 만화가 탄생할 순간이다. 촛불은 많은 것을 바꿔나가고 있다.

기자명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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