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말의 힘으로 작동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힘도 말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특히 정치인의 말에는 현상을 분석하는 내용과 함께 품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인들의 말은 직설적이고 감성적 표현이 앞선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을 쓰고 그런 정치인들은 선거로 심판해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나라가 온통 여기에 휩쓸리고 있다.

대통령의 말은 절대왕정의 군주의 말과는 다르다. 말(명령)이 곧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통치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의 말은 통치의 시작과 끝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국민들에게 불가해한 경우가 너무 많다.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것도 표현 능력의 모호성과 함께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을 남에게 하듯 하는 상황이 너무 잦다 보니 나온 것이다. 그런 마당에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권의 분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낳은 새로운 양상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의 대립은 세월호 참사에 관한 진상조사방법에서 비롯되었다. 즉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에 규정된 내용이 (국회가 입법한 세월호 특별법이 추구하는)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에 장애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의 수정 요구를 둘러싸고 대립한 것이 발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논란이 많은 대통령의 행적 조사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 중이다. 현대 국가에서 입법부가 모든 법률을 다 상세히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행정부에 입법권을 일정 부분 위임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위임명령으로서 시행령은 여기에 근거하는데, 국회의 입법권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일정 부분 위임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행령 제정이 대통령 또는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건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혹자는 대통령도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으니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입법과 관련하여 고유의 권한을 갖는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선출되었다고 해서 삼권분립의 범위를 넘나들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가 갖는 시행령 제정권은 어디까지나 국회 입법권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므로 만일 제정된 시행령의 내용이 모법의 내용이나 정신과 충돌하거나 저촉될 경우 국회가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 정부 시행령 내용에 대한 사후 통제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행정입법의 과잉 또는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모법의 내용을 벗어나거나 위반하는 시행령이 많이 제정되었다. 국회가 이를 바로잡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국회의 권한 이탈을 문제 삼고 나서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삼권분립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고 이를 표출하는 수사법도 적절하지 않았다.

지금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말이 가능한 상황인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동시에 세월호 관련 조사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여야 합의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교착상태의 국회를 원만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고 3분의 2가 넘는 국회의원들이 개정안에 찬성했다.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잘못이 있다면 몇 차례 소신 발언을 함으로써 대통령에게 밉보인 죄밖에는 없다. 더구나 민주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든 저자세로 “너그러이 마음을 푸시”라고 대통령에게 빌다시피 했다. 본인의 소신 여하를 떠나 상황을 풀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얼음처럼 싸늘하다. 새누리당에서는 “명예로운 퇴진” 기회를 주자는 의견도 나오는데,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해야 하는 상황이 불명예스러운 것이지 어떻게 명예로울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앞에서 석고대죄라도 해야 마음이 풀릴 것인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망자 유족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 한다.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심판, 배신 같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청년실업이나 주거 문제, 노인복지, 출산율 저하, 외교나 남북문제와 같은 중요한 현안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고 있는 국민을 진심으로 위로하면서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까.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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