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유해 매체로 결정해 접속을 차단했다가 번복한 ‘레진코믹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혹자는 이러한 논란이 금단의 열매 효과로 이어져 결국 레진코믹스만 배불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실제로 레진코믹스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기념으로 코인 제공 마케팅을 벌이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우리는 차단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참조).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고민하는 진영이든 여성 혐오를 걱정하는 진영이든 이번 사건을 통해 반드시 성찰해보아야 할 과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이는 변화하는 매체 환경과 공공성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적 표현물에 대한 사회적 관리가 주된 초점이다.

먼저, 방심위가 레진코믹스 사이트를 전격 차단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조치였다. 레진코믹스에는 문제가 된 음란물 이외에도 다수의 로맨스물이 존재하며 19금 콘텐츠에 대한 기술적 관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해당 사이트 전체를 접속 차단한 것은 최소 규제의 원칙을 위배한 과잉 규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가 된 콘텐츠들이 ‘꼰대스러운 방심위의 그물망에 걸려든 거룩한 희생양일 뿐’이라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이트에 제공되는 콘텐츠들을 둘러본 결과, 상상 이상의 것을 재현할 수 있는 만화의 특성상 동영상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많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몇 19금 콘텐츠를 참여재판에 의뢰한다면, 아마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의 4호가 명시한 시정 요구의 대상 범위로 판정될 확률이 커 보인다. 특히 여성들의 공분을 살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많다.

레진코믹스가 제공하는 웹툰은 네이버나 다음이 제공하는 웹툰과는 달리 성인 취향의 온라인 유료 서비스에 기반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고, 여성이나 성적 소수자의 상품화를 주요 도구로 사용한다. 한국 사회가 성 문제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소통 문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필자의 시각에서도, 여성을 단순히 성적 대상물로 간주하는 전개 과정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만화방 한쪽, P2P나 토렌트 프로그램에서 유통되던 불법 공유 음란물이 또 다른 형태로 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환경은 전혀 다르다. 레진코믹스는 공적 기금을 지원받고 매출 100억원의 규모를 자랑하는 합법적인 제공처로서 전혀 다른 법적 지위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사회적 책임과 관리를 요구할 수 없다면 여러모로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사실 이러한 레진코믹스가 미래창조과학부가 참여하는 각종 프로그램에서 스타트업의 성과로 지원 대상이 되고, 연속 수상을 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이는 마치 〈플레이보이〉 잡지나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포르노를 유료 성인채널인 스파이스TV나 미드나잇채널로 거듭나게 한 것을 포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누리꾼들이 KBS 앞에서 ‘옹달샘’의 방송 출연금지를 요청하는 이유

미디어 콘텐츠, 그중에서도 섹스를 소재로 한 콘텐츠 산업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다. 그 안에서 여성과 성적 소수자는 남성의 쾌락을 배설하기 위한 존재로만 위치 지워진다. 이는 온라인 속의 여성 혐오를 조장하고 강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과도 맞닿아 있다. 창작자의 삶은 중요하고 그로 인해 폄하되는 여성들의 삶은 문제될 것이 없을까. 인권침해적이고도 폭력적인 내용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장려하고 권장하는 관행은 정당한가.

지금도 KBS 앞에서는 ‘옹달샘’ 멤버의 영구 출연금지를 요청하는 누리꾼들의 릴레이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팟캐스트를 통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표현과 혐오 정서를 가차 없이 드러낸 인물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부적절한 일본군 위안부 발언으로 오랫동안 방송 출연을 멈추었던 김구라씨의 경우나, 루저 발언으로 인해 곧바로 폐지된 〈미녀들의 수다〉와도 지극히 대조적이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조장 문제는 여전히 모든 매체에서 사소하게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한국이 얼마나 성차별적인 사회인지를 잘 보여주는 지표다.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