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20, 30대 여성이 주로 가입한 패션 동호회 소울드레서 회원(위)이 거리 투쟁에 나섰다.
‘광고 투쟁’은 저항의 또 다른 축이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일련의 ‘누리꾼 모금 광고’는, 1974년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와 그에 뒤이은 시민의 격려 광고 물결을 연상케 한다.
정부가 지난 5월5일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홍보 광고를 쏟아내자, 누리꾼은 “한국 정부냐 미국 쇠고기수출협회냐?”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예전과 다른 점은, 그저 온라인에서의 불평에만 머무르지 않고 ‘누리꾼 모금 광고’라는 적극 행동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그 물꼬를 튼 곳이 회원 수 8만명의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다.

20, 30대 여성이 주로 이용하는 패션 동호회인 소울드레서는 1730만원을 모아 5월17일과 19일, 각각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쇠고기 수입 반대 광고를 실었다. 발단은 사소했다. 카페에서 광고 관련 일처리를 자원했던 ID 루지크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한 생활 광고를 보고 우리도 저런 거 해보면 좋겠다고 댓글을 달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라고 밝혔다. 쇠고기 파동으로 ‘부글부글 끓던’ 회원의 마음을 정확히 찔렀다는 얘기다. 마음을 담은 100원에서부터 10만원대까지 다양한 금액이 쏟아졌다.

8만 회원이 십시일반으로 6000만원 모금

1차 광고가 나간 뒤, 2차 광고를 위한 모금은 더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2차 모금에서만 모은 돈이 4300만원. 이걸로 또 한번 한겨레와 경향에 1면 광고를 실었다. 금액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집행된 광고 횟수가 같은 까닭은 뭘까? “이번에는 정가대로 받으라고 두 신문사 광고국에 이야기했다. 첫 광고를 할인해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우리 가격이 다른 광고의 기준이 되는 걸 보고 미안하기도 했다”라는 게 루지크의 설명이다.

광고 이후 소울드레서는 카페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패션 동호회인 카페를 ‘정치 카페’로 알고 찾아오는 이가 늘어나자 내린 조처다. 그렇다고 ‘정치적인 건 싫다’며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은 아니다. 두 차례 모금운동 이후로 게시판의 흐름은 ‘조·중·동 광고내리기 운동’으로 변했다. 소울드레서 게시판에는 매일같이 ‘오늘의 조·중·동 광고기업’ 명단과 연락처가 올라온다. 요지부동인 보수 언론보다 그들의 ‘밥줄’인 기업에 직접 압박을 넣자는 얘기다.

오프라인 활동도 활발하다. 회원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냥 고함쳐서 사람 모으기가 귀찮아서” 5월31일에 뚝딱 만든 깃발 아래로, 다음 날인 6월1일에는 순식간에 회원 1000여 명이 모였다. 6일에도 회원 200여 명은 세종로 한복판을 종횡무진 누볐다. 성비는 거의 9대1. 압도적인 ‘여초’ 시위대다.

이날 거리로 나온 소울드레서 회원 주 아무개씨(25)는 흰색 마스크를 쓴 채로 대열 앞뒤를 바쁘게 뛰어다녔다. 시위대의 경로를 알리고, 주위 시민에게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협조를 구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흰 마스크가 꽤 익숙해 보인다고 말을 건넸더니, 생전 처음 하는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소울드레서의 광고 이후, 온라인은 ‘광고 모금운동’의 홍수다. 20, 30대 남성이 주로 이용하는 야구 사이트 엠엘비파크는 5월26일자 경향신문에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의견 광고를 냈다. 여성 포털인 마이클럽, 유시민 전 의원 지지모임인 시민광장, 사진 동호회 SLR클럽, 영화 동호회 디브이디프라임, 스노보드 동호회 헝그리보더 등 각양각색의 커뮤니티가 흐름을 이어받았다. 서울대·성균관대·이화여대 등 대학도 가세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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