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를 두고 난데없이 ‘시체 장사’ ‘유족충’ ‘선동’ ‘폭동’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일부 보수 인사와 누리꾼들이 각종 막말과 비하를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 보수 세력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수 논객으로 알려진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은 4월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박근혜, 정신 바짝 차려야’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지만원 소장은 “(세월호 참사를 빌미로) ‘무능한 박근혜 퇴진’과 아울러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가 바로 북한의 코앞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시체 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글을 두고 논란이 일자 지 소장은 “언론이 내 글을 왜곡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가 세월호 참사에 빗댄 ‘시체 장사’라는 표현은 어떤 변명을 해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여권에서조차 이 같은 발언에 불만을 나타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4월2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보수 진영은 이런 무모하고 황당한 발언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정몽준 서울시장 예비후보.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 사이에서도 돌출 발언은 쏟아져 나왔다. 한기호 최고위원은 4월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국가 안보 조직은 근원부터 발본 색출해서 제거하고, 민간 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한 의원은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성토하는 누리꾼들에게 색깔론을 덧입혀 논란을 자초했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도 피해자 가족을 ‘선동꾼’으로 묘사해 비난에 휩싸였다. 4월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가족인 척하면서 선동하는 여자의 동영상입니다”라는 글과 동영상 링크를 올렸다. 하지만 권 의원의 글에서 지목된 사람은 실제 피해자 가족이었고, 권 의원은 사과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정몽준 의원도 곤욕을 치렀다. 4월21일 자신의 막내아들이 페이스북에 쓴 글이 〈시사IN〉을 통해 보도되면서 논란이 거세지자 곧바로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 의원의 아들은 자기 페이스북에서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라는 주장을 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은 4월22일 JTBC 〈전용우의 시사집중〉에 출연해 “이번 기회가 너무나 큰 불행이지만… 국민의식부터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다.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연합뉴스지만원 소장은 ‘시체 장사’라는 표현으로 비난을 받았다.

여당 인사들의 이 같은 발언에 당 지도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4월22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당 소속 의원들에게 “세월호와 관련한 온라인 게시물은 더욱 신중을 기해주고, 게재 시에는 반드시 중앙당 및 시·도당 대변인에게 알려주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관리되지 않은 발언이 초래할 위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셈이다.

기울어진 언론 환경 타고 극우 누리꾼 극성

정치권 인사들은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될 경우 곧바로 사과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국민 정서가 너무나 민감해 자칫 재기 불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가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나 보수 성향을 보이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확장되는 과정은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보수 진영의 인식을 더욱 날것으로 드러냈다.

가장 심각한 곳은 피해자 가족을 ‘유족충’이라 비하한 일베 커뮤니티다. 피해자를 모욕한 게시물이 논란을 일으키자 사이트 운영진이 “참사와 관련해 과한 표현과 루머 등은 자제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라는 공지까지 올렸지만, 회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국가의 구성원·기관·단체가 유가족에게 휘둘린다” “누구 하나 유가족의 독단적 행동을 비판하지 못한다” 따위 주장을 계속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권은희 의원은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수 대학생 단체인 ‘자유대학생연합’도 4월19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세월호 한 장 요약’이라는 만평(그림 1)을 올렸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피해자 가족을 왕으로 묘사한 이 만평은 피해자 가족을 비꼬고, 그들이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를 비난하고 있다. 소나기 비난을 받고서야 자유대학생연합 측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우파 누리꾼은 ‘광우병 괴담’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이야기를 좌파 누리꾼이 퍼뜨린다고 주장한다. “국민이 미개하다”라는 정몽준 의원 막내아들의 발언을 적극 변호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일베 이용자들은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내건 노란 리본도 조롱했다. 〈그림 2〉와 같이 노란 리본 그림을 일베를 상징하는 ‘ㅇㅂ’ 모양으로 변형해 유포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에 지역감정을 들먹이며 “전라도에서 발생한 사건이니까 이렇게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부산 앞바다였으면 안 그랬을 것이다” 같은 망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우파 누리꾼의 태도는 우리 사회 보수 세력의 기본 정서와도 부딪친다. 우파 누리꾼의 논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고를 낸 것은 선장과 선원이다. 정부 탓을 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다”라는 것이다.
 

〈그림1〉

보수 커뮤니티 내 일부 누리꾼은 “정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통령과 정부는 분리된다. 대통령의 사과를 요청하는 정서나 청와대에 대한 분노는 ‘선동꾼에 의한 것’으로 치부된다. ‘강한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수의 국가관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그림2〉

세월호 침몰 참사로 정부에 대한 공분이 커질수록 우파 누리꾼의 이러한 태도는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우파 누리꾼은 스스로를 ‘이념적 소수’로 여겨왔다. 진보 성향의 목소리가 주도하는 온라인 여론에서는 자신들이 상대적 약자라는 시각이다(〈시사IN〉 제298호, “‘재특회’를 보면 ‘일베’가 보인다” 참조).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를 감싸고 피해자 가족을 비하하는 논리를 ‘소수자의 저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언론 지형이 보수적으로 기울면서 더 두드러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종편이 출범하면서 SNS상에서 우파 누리꾼이 전파할 수 있는 콘텐츠가 풍부해졌다”라고 말했다. 정부 비판 여론에 대한 방어 논리를 담은 보수 언론의 콘텐츠를 자양분 삼아, 우파 인사들의 막말과 반인륜적 태도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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