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씨는 외동아들을 바다에서 잃고 울음을 삼켰다. 닷새 동안 물만 마셨다. 그나마 이씨는 나은 편이었다. 아내 박 아무개씨(47)는 식음을 전폐했다. 이유 없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가슴을 쳤다. 혼자 견디던 박씨는 심리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수면제와 안정제를 일곱 알씩 먹으며 버텼다.
회복 중이던 아내 박씨가 다시 무너진 것은 지난 2월18일, 부산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중이던 마우나리조트 강당이 무너지면서다. 학생 1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전보다 약이 두세 알 더 들어간 안정제를 먹어야 했다. 작은 교통사고에서 재난사고에 이르기까지 청소년들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씨 부부는 아들이 떠오른다. 해병대 캠프 참사를 당한 일부 가정에서는 ‘당신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고 서로 탓하거나 심한 경우 이혼 위기를 겪었다.
“참사 이후에 더 꾸준히 관심 기울여야”
육성필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등 대형 참사 이후에 생존자나 유가족이 자살하거나 알코올 의존증이 높게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보통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은 최소한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려고 사회관계를 외면하고 은둔한다. 재난 이후 자살이나 이혼과 같은 또 다른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실제로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된 단원고 교감 강 아무개씨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이 벅차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안산에서 만난 한 학생은 “구조된 친구한테 병문안을 갔더니, 담임과 친구들은 죽었는데 자기만 구조되었다며 매일 울기만 하더라”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증상들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성승연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는 “충격으로 인한 후유증은 가까운 사람의 지지와 이해, 공감으로 극복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14년 전,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에서 살아남은 김은진씨는 한 대학 커뮤니티 게시판에 ‘생존자들과 남은 가족들이 절대 자신을 탓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남겼다. “대한민국이 잘못했다고 꼭 사과해달라. 책임자들이 책임을 피하면, 결국 남은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잘못이 된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다음 날, 이후식씨 부부와 해병대 캠프 참사로 아들을 잃은 유가족 4명은 진도를 방문했다. 이씨는 “(실종 학생의 부모들은) 따뜻한 말을 듣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생각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식 잃은 아픔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딱 한마디다. “포기하지 말자.” 이씨가 다시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생기면서였다. 아들이 왜 죽었는지,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했는지, 해병대 캠프 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묻고 따졌다. 그는 지난해 12월3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이대로 잊혀서는 안 된다’며 사고 원인을 규명하라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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