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3일 검찰이 유병언 일가와 계열사 등 15곳을 압수수색했다. 청해진해운을 비롯해 서울 용산구 한강로 기독교복음침례회(이하 구원파) 서울교회와 경기도 안성에 있는 금수원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되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를 ‘일란성 쌍둥이’로 보고 있다. 검찰이 소환 대상으로 삼는 주요 경영진 역시 구원파 신자들이다.

구원파를 탈퇴한 핵심 관계자를 만났다.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유병언과 구원파는 뗄 수가 없다. 구원파와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사업을 전부 관할하는 중심에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유병언이 있다”라고 증언했다(“유병언 회사는 구원파 신자만 입사할 수 있다” 기사 참조).

구원파라는 명칭은 정통 개신교와 구원관이 달라서 붙여졌다. 그 뿌리는 유병언·권신찬 목사가 주도한 기독교복음침례회다(구원파는 두 사람이 아닌 권신찬 목사가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1962년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펼쳤다. 활동 초기 제일모직 소속 여성 노동자들이 주된 전도 대상이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무노조 경영 원칙을 지키던 제일모직은, 이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으로 오인해 여성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하기도 했다.
 

유병언씨(사진)는 구원파를 이끌며 헌금으로 조성한 자금을 이용해 1980년대 중견 기업인으로 도약했다. 특유의 사업 수완으로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1997년 세모 부도 이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권신찬 목사의 눈에 띈 유병언은 그의 딸 윤자씨와 1966년 결혼하며 장인과 사위 사이로 발전했다. 이후 둘은 행보를 함께한다. 구원파 내부에서는 초기부터 유병언씨가 권신찬 목사보다 주도권을 더 잡았다는 평이 나온다. 특유의 친화력과 뛰어난 언변 때문이다. 전 구원파 신도는 유씨에 대해 “성경을 보지 않고도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성경 구절을 정확히 인용해 설교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라고 말했다.

1991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따르면, 유병언씨는 구원파를 이끌며 1976년 신자들의 헌금으로 조성한 자금을 이용해 부도 직전의 기계자수 업체 삼우상사를 인수했다. 1978년 삼우트레이딩으로 이름을 바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사업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라는 논리를 펴면서, 회사 인수자금뿐 아니라 저임금 노동력까지 신자들에게 기댔다(구원파는 일부 문제 있는 신도들이 '사업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라는 논리를 폈지, 구원파의 교리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돈, 노동력, 그리고 생산된 제품을 교인들에게 다시 판매하는 초기 사업 방식은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유병언식 사업 수완이다.

유씨는 1980년대 ‘25개의 세계적 발명특허와 498건의 공업소유권을 창안한 위대한 발명가’ ‘기독교복음침례회 종교 모임 때마다 신도들을 감동시키는 신비의 연설가’ ‘불우 이웃에게 선뜻 거금을 내는 자선사업가’로 불리며 중견 기업인으로 도약했다. 특히 1982년 세모를 만들어 연안여객선 사업에 뛰어들면서 문어발식 확장을 했다. 청해진해운 운영 방식과 똑같이, 일본에서 낡은 배를 들여와 개조한 다음 여객노선에 투입하는 식이다.

구원파 쪽에서는 부인하지만, 이때도 그는 구원파 내에서 영향력이 컸다. 특히 연예인을 통한 포교로 20만명에 이르는 신자를 확보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중견 탤런트 ㅈ씨, ㅇ씨 등은 지금도 신자로 활동하고 있다. 세모그룹은 1986년 한강유람선 사업을 따내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정·관계 로비를 통한 권력 핵심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뒤따랐다. 전두환·전경환 형제와 유병언 유착설이 그것이다.

공식석상에서는 사라졌으나 여전한 카리스마

일본에서 태어난 유씨는 대구 ㅅ고를 졸업했다. 태권도와 유도 등 무술이 뛰어났다. 당시 전경환씨도 대구에서 합기도와 유도에 뛰어났고 같은 체육관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교를 맺은 것이 5공화국까지 이어졌다는 말이 돌았다. 1984년 3월 전두환 대통령이 그가 대표로 있던 삼우트레이딩 부천공장을 전격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특유의 화술로 정·관계 인사와도 두루 인맥을 형성했다. 한강유람선 사업을 따낸 뒤 서울시청과 항만청 등 공무원을 자신이 운영하는 뚝섬 레스토랑에 초청해 용돈을 챙겨준 일화는 유명하다(구원파는 "로비는 없었으며 공무원들의 뇌물요구를 거절해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라고 주장했다).

 

 

 

 


1987년 8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터진 오대양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 듯했다. 오대양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박순자씨가 구원파 신도였기 때문이다(‘오대양’이 뭐였기에 기사 참조). 유병언씨와의 연루설이 불거졌지만 경찰은 사교 집단의 집단자살로 결론지었다. 위기를 넘긴 유씨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 재정위원을 지내며 6공화국과 관계를 이어갔다. 1991년 2월에는 당시 민자당 총재를 맡았던 노태우 대통령 명의로 모범당원 표창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해 7월 구원파 신자 6명이 집단 자수하면서 유병언씨는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오대양과 세모의 전신인 삼우 사이에 4억6000만원이 오간 흐름을 포착해, 사기 등 혐의로 유씨를 구속했다.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사공일씨(이명박 대통령 경제특보) 등 5명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지만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쪽에서 ‘6공의 5공 견제용 수사’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구속된 유씨는 징역 4년 확정판결을 받았고, 세모그룹은 1997년 부도가 났다.

이 사건 이후 유병언은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대외 활동뿐 아니라 사업체에서도 공식 직책을 맡지 않았다. 핵심 측근 8명을 내세워 ‘리모트 컨트롤’ 경영을 했다(위의 표 참조). 현재 유병언 일가의 사업체를 이끌고 있는 8명 모두 구원파 신자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이는 김필배 문진미디어 전 대표이사다. 그는 사실상 경영총괄을 맡으며 유병언씨의 차남 혁기씨와 함께 전체 사업체를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계열사인 문진미디어 최대 주주 이순자씨와 부부 사이다. 지난달까지 문진미디어 아이원아이홀딩스 등 계열사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현재 미국 하와이에 머물고 있다. 김필배 전 대표는 나경원 전 의원의 부친이 운영하는 홍신학원 교장(화곡중) 출신이다. 현재도 홍신학원 등기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공식석상에서 사라졌지만 사업체와 구원파 내에서 유병언씨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구원파의 전 관계자는 “2008~2009년까지 안성 금수원에서 그가 직접 설교를 했다. 세월호 사건이 나기 전에는 과거 설교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라고 증언했다. 안성 금수원은 매주 토요일 집회가 열리는 곳으로 구원파의 ‘심장’이다. 매주 토요일 전국에서 신자가 모여든다. 여름에는 6박7일로 ‘수양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이 모임 역시 열성 신도라면 참여해야 한다. 구원파에게 가장 큰 행사라, 이때 설교를 한다는 의미는 교단의 리더라는 뜻이다. 2008~2009년 이후 여름수양회 설교를 맡고 있는 이가 바로 유병언의 차남 혁기씨다. 혁기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주로 미국과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구원파 안에서는 그를 후계자로 본다.

 

 

 


교인과 사업 연결시키는 ‘유병언식 수완’

2000년 이후 유병언씨의 거처가 바로 안성 금수원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모임이 열리는데 그의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전개된다. 교인들은, 모임을 갖기 전에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유도복으로 갈아입고 집단으로 유도를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ㄱ씨가 자주 강사로 나선다. ‘유도를 해야 몸이 건강해지고, 몸이 건강해야 신앙심이 깊다’는 유도 고단자 유병언의 설교를 따르는 것이다. 최근 유씨는 건강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건강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물론 사업과 연결시켰다. 건강 제품을 개발해 교인들에게 팔았다. 대표 제품이 유병언씨가 직접 개발한 내클리어라는 대장 세척기로 ‘헤마토센트릭라이프’라는 계열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팔았다. 가격은 한 대에 1000만원이다. 구원파 전 관계자는 “처음에는 100만원에 팔았는데 지금은 1000만원이다. 신도 대부분이 샀다. 대장 청소를 해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신앙심이 깊다고 하니 안 살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는 ‘탐욕스러운 기업’과 ‘무능한 정부’의 합작품이다. 무능한 정부가 검찰을 앞세워 탐욕스러운 기업을 치는 형국이다. 그 구도에 맞는 요소를 유병언씨가 두루 갖추면서, 검찰 수사가 더 매섭고 빨라지고 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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