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매점에서 제 얼굴 많이 봤죠? 저기 앉은 학생은 단골손님이네.” 홍은숙씨가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깔깔 웃는다. 10월23일, 서울 구로구 영림중학교에서 진행된 ‘사회적 경제’ 수업 시간이다. 이날 일일 강사로 강단에 선 홍씨는 학부모이자 이 학교 협동조합 이사다.

조합원 대다수가 학생인 복정고등학교와 달리 영림중 협동조합은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앞장서 만들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11년 학교 모니터링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매점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이 시작이었다. 식품첨가물 덩어리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출자금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든 학부모 30여 명은 지난해 10월부터 학교 안에서 ‘여물점(여유 있고 물 좋은 매점)’을 운영한다. 두레생협 등 지역 생협 또한 작은 거래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친환경 물품을 납품하며 힘을 보탠다.

ⓒ시사IN 신선영영림중 학부모 조합원이 학생들을 상대로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소개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소 1주년을 맞은 여물점은 오늘날 학교 사랑방인 양 자리를 잡았다. 매점에서 교대로 먹을거리를 파는 학부모 조합원 대부분이 ‘친구 엄마’인지라 아이들은 스스럼이 없다. 하루 매상 또한 30만~40만원으로 안정적이다. 9월 말 현재 순이익은 500여만 원. 이익금 전액은 학교 도서를 구입하는 식으로 학생복지에 쓰인다.

영림중 협동조합 모델은 특유의 역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이 학교 조합원 대부분은 10년 전부터 서울 구로에서 책읽기 모임을 함께해온 이들이다. 자녀가 청소년이 된 뒤 이들은 중학교에 책읽기 모임을 제안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학부모들이 각 반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그 효과는? 영림중이 3년째 책읽기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지금은 박수찬 교장까지 책읽기 교사로 합세했다. 이런 신뢰가 쌓여 있었기에 협동조합의 순조로운 정착도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학부모에게 지나치게 부담이 쏠릴 수 있다는 것이 영림중 모델의 약점이다. 그럼에도 엄마 조합원들이 상주하면서 학교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특히 ‘빵셔틀’ 따위 학교 폭력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결국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고 협동조합도 하는 것 아닌가. 주변에서 얼마나 관심을 쏟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결이 달라지는 것 같다”라고 학부모인 김윤희 이사장은 말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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