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색 ‘POLICE’라고 적힌 비옷을 입은 의경이 길을 막았다. “특수경호시설이라 출입이 어렵습니다.” 기자가 어느 법에 그렇게 돼 있느냐고 따져 묻자, 그는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선임자에게 문의하는 모양이었다. “왜 못 들어가는지 물어보십니다.” 그는 기자에게 “비상기간이라 출입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어떤 비상이요?”(기자) “예… 저, 무전하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또 무전기를 꺼냈다. “지나가시랍니다.” 장맛비가 시작된 7월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95-4.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앞 풍경이다.

그가 말하는 ‘비상’은 ‘전 전 대통령 사저 앞 소동’을 말한다. 5·18이 있는 5월과 ‘전두환 추징법’이 이슈가 된 6월에는 긴장하는 일이 잦았다. 광주에서 5·18 왜곡저지 대책위원회가 상경 투쟁을 하고, 민주당 내 ‘전두환 불법재산 환수 특별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 때마다 의경은 골목 진입을 강하게 막았다. 시설(대통령 사저)을 관리하는 일은 이들의 몫이다. 전두환 추징금 환수 시효가 2020년까지 연기되면서, 7월에는 상대적으로 고요했다. “한때 5공 인사들이 한 달에 한 차례씩 방문하기도 했지만, 요새는 여론이 악화된 터라 손님도 뜸하다. 전 전 대통령이 외부로 나오는 일도 거의 없다”라고 한 주민은 말했다.

ⓒ시사IN 이명익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95-4, 95-5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와 별채(사진 가운데 하얀 차량출입구가 있는 건물)가 서 있다.

의경은 제5기동단 57중대 소속이다. 세 개 소대 의경 70여 명이 대기 중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사저와 동시에 보초를 선다. 2시간마다 교대해 하루 평균 6시간씩 근무한다. ‘사저를 지나는 길을 막는 일’이 가장 기본적인 업무다. 한 의경은 “법이라기보다 전통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일단 막고 보는 거다”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 사저에서 450여m 떨어진 노 전 대통령 사저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다(41쪽 상자 기사 참조).

기자는 전 전 대통령 사저의 담벼락 끝자락에 있는 1초소 앞에 서 있었다. 사저 담벼락이 끝나는 맞은편 지점에 4초소가 있다. 1초소와 4초소에서 보초를 서는 의경이 무전을 치면, 전 전 대통령 사저의 가운데에 위치한 F초소로 전달된다. F초소는 전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왕고참’이 지킨다. 사저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 길은 막다른 길이다. 전 전 대통령 사저의 뒷길을 아예 막아버린 거다. 여기에 2·3초소가 각각 위치해 있다. 총 5개 초소에 사복경찰 한 명을 포함해 경찰 6명이 지킨다.

5공 인물들 모여 “우리의 영웅!” 건배

의경과 동행해 전 전 대통령 사저 앞을 지나갔다. 우편함도, 명패도 없었다. 담벼락 높이는 2m가 넘었다. 내부는커녕 지붕 색깔도 보이지 않았다. 대지 818.9㎡인 사저는 지하실과 지상 1층으로 이뤄졌다. 인근에 위치한 4층 건물에 올라가도 창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안전을 도모한 듯 최대한 땅에 가까이 설계되었다. 자동차가 거뜬히 들어갈 크기의 나무 대문이 사저 가운데에 있고, 그 오른쪽에 천장이 낮은 작은 철문이 있다. 곧장 비서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곧바로 의경에게 제지당했다. “사진을 찍는 일은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다. 공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경은 ‘말할 수 없는’ 불이익을 받는다”라고 한 의경은 말했다. 기자들이 돌발 행동을 하면, 의경들이 고생한다. 외부인이 사저 밖에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를 입을 가능성은 없지만, 의경은 문책을 받는다. 그의 목소리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광주광역시 출신이라는 한 의경은 “1년 전 배치를 받고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유달리 복잡했다. 부모님도 반기지 않았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의경의 고단함과 무관하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활은 전과 다름없이 호화스러웠다.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논란이 점화되기 전까지 최근 10년간 한문 공부에 심취했다고 한다. 한 고령의 한문학자가 매주 한 차례 사저를 방문해 두 시간씩 주역과 논어를 가르쳤다. 이 사실은, 그가 인근 사우나 이발소에서 직접 말하면서 한 달 전쯤 알려졌다. 어느 날, 자신을 저녁식사 자리에 불러서 가보니 지하실 저녁상에 장세동씨를 비롯한 5공 인물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건배사로 “우리의 영웅을 위하여!”라고 소리쳤다.

전 전 대통령 사저의 바로 왼편에는 별채(연희동 95-5)가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대지 312.1㎡)으로 구성됐다. 애초 전 전 대통령 소유였다가 경매에 넘어갔는데, 2003년 처남 이창석씨(62)가 낙찰받았다가 지난 4월 전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재만씨 아내 이윤혜씨(42)에게 넘겼다. 별채 내부로 통하는 차고 문틈 사이에는 시멘트 벽돌을 괴어놓았다. 내부를 볼 수 있는 작은 틈조차 막으려는 흔적이다. 인근 단독주택은 정원을 끼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사저 뒤편으로는 산이 연결되어 있다. 뻐꾹새가 울고 나비·잠자리가 날아다녔다. 모든 사람이 통행을 제지받는 와중에 새들과 경호원은 거리낌 없이 돌아다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수행·경호하는 경호원 10여 명은 30대 후반~50대 남성들이다.

오전 8시께 사복 차림의 남성 5명이 SUV 자동차를 타고 출근했다.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맴돌던 의경이 걸음을 멈추고 곧은 자세를 취했다. “충성!” 경호원을 향해 의경이 큰 소리로 경례했다. 경호원은 곧장 F초소 뒤에 자리한 경호동으로 들어갔다. 공식적으로 경호원은 전 전 대통령을 수행하고, 의경은 시설을 관리한다. 하지만 사저를 지키다 보면, 업무의 뚜렷한 경계는 없다.

경호원 4∼5명은 차를 몰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시간은 대중없었다. 사저가 ‘조용한’ 까닭에 한껏 여유로워 보였다. 그중에는 골프채, 배드민턴 채 따위를 들고 이동하는 경호원도 있었다. 이들이 이용하는 차량은 승용차 두 대를 제외하고 모두 SUV였다. 차고(연희동 84-18, 경찰청 소유)에 여섯 대가 있고 경호동 앞과 왼쪽 골목에 각 두 대씩 세워두었다.

ⓒ시사IN 조남진6월10일 시민단체들이 연희파출소 앞에서 재산 환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호동은 차고를 포함해 총 네 곳이 있다. 사저 맞은편, F초소 뒤로 경호동(연희동 84-12, 경찰청 소유)이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경호원 10여 명은 이곳에 머문다. 또 다른 경호동(연희동 95-7, 서울시 소유)은 사저 뒤편에 있다. 사저 후방을 지킨다. 서울시가 3년 시한의 무상임대 계약서를 썼던 연희문학창작촌 내 경호동(연희동 203-1, 서울시 소유)은 지난해 5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유상임대로 전환하기로 확정하면서 경찰청이 서울시에 임차료 2100여만 원을 낸다.

의경과 경호원의 보호 외에 파출소도 사저를 지킨다. 전 전 대통령 사저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연희파출소에서는 한 시간에 두 차례씩 사저 순찰을 돌았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각 7시30분∼8시, 약 30분간 골목 어귀에 주차를 했다. 교대하는 의경·소대장·경호원·파출소 관계자마다 “어디서 오셨느냐”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전 전 대통령 자택의 정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7월4일, ㄷ택배기사가 ‘수신인 전재만’이라 적힌 상자를 들고 왔다. 하지만 택배기사는 4초소 의경의 무전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여주에서 최씨가 보낸 상자였다. 택배는 F초소 의경에게 전달됐다. 택배기사는 “때로는 사과 상자에 물건이 담겨 올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우체국에서는 일반 가정에 비해 세 배가량 많은 우편물이 배송된다며 “우편물에 여전히 각하, 영부인 같은 호칭을 쓴다. 전 대통령 내외와 전재만씨 우편물이 많다”라고 말했다. 재만씨는 현재 미국에서 포도 농장을 운영 중이다. 전 전 대통령은 〈문화일보〉를 구독했다. 집사 이 아무개씨가 우편물과 신문·택배 등을 전달받아 철문을 통과해 비서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인근 배달원의 말을 종합하면, 비서실에는 소파와 책상 따위가 놓여 있다. 비서실 왼쪽에는 주방이 있다. 비서실을 가로질러 2층으로 올라가면 본채로 향하는 복도가 나온다.

7월2일 오후, 장맛비가 몰아치듯 쏟아졌다. 기상청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시간당 20~40㎜ 쏟아진다고 예보했다. 기자는 우산을 쓴 채 사저 앞 초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1초소를 지키던 의경도 별채 앞 차고에서 검은색 우산을 쓰고도 간신히 비를 피하는 모양이었다. 비가 잦아들었을 무렵 전 전 대통령 사저 대문이 열렸다. 집사 이씨가 나무 의자 두 개와 대형 파라솔을 들고 나왔다. “영부인께서 설치해주래요.” 창고 안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을 파라솔이었다. 방수가 되는 재질이란다. 이따금 사저 내부 정원에서 썼던 물건이라고 짐작했다. 기자가 앉은 쪽으로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우산을 쓴 채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을 집 안에서 본 모양이다. 의경은 선임자에게 무전을 했다. “이씨 아저씨께서 파라솔을 설치하십니다. 영부인께서 기자에게 해주라고 하셨답니다.” 그러고는 기자에게 “남자 기자가 보름여 있을 때도 해주지 않았는데. 영부인이 배려가 깊은 사람인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과도한 무력 진압을 하고도 사과는커녕 29만원밖에 없다고 버티는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게서 받는 배려가 당혹스러웠다.

‘이씨 아저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시키는 잔심부름을 한다. 7월3일, 그는 오전 6시에 출근했다. 이씨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무 대문으로 들어갔다. 기자가 지켜본 3일 동안 철문이 아닌 정문으로 출입하는 사람은 이씨가 유일했다. 그가 사저로 들어가자 창고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잔디 깎는 소리와 비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질 소리는 본채를 지나 별채로 이어졌다. 두 집이 연결된 통로가 있는 듯했다. 오전 6시20분, 50대 여성이 철문에서 나왔다. 본채 주방일을 맡은 여성이었다. 그는 의경에게 “집에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며칠 만에 다니러가는 듯 옷 보따리와 쇼핑백 두 개를 양손에 쥐었다. 요구르트를 19년째 배달하는 한 여성은 “일하는 사람들이 잠자는 방이 따로 마련돼 있다. 사저에 부엌일하는 여성이 두 명 있어서 번갈아가며 며칠씩 묵는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7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마트 직원이 물건을 나르고 있다.

같은 날 오전 8시, 또 다른 한 50대 여성이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의경이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여성은 의경에게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새로 왔니?”라고 되물었다. 그녀는 수년간 사저에서 일했다. 세탁소 직원의 말로 추정해보니, 빨래 담당자인 듯했다. 이들은 오후 5시께에 퇴근했다. 일요일에는 쉰다. 오전 9시께, 본인을 경호동 청소와 식사 담당자라고 소개한 40대 여성은 “우리는 각하 모시는 게 일인 사람이다. 질문을 해도 답을 얻지 못할 거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2시께에도 사저로 걸어 들어가는 40대 여성이 있었다.

현재 사저 내부에서 일하는 이들은 5∼6명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비서로 추정되는 젊은 남성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SUV 차량을 타고 자유로운 복장을 한 경호원들과 달리, 서류 뭉치를 든 양복 차림의 30대 남성이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렸다. 그를 발견한 기자가 다가가자, 그는 의경에게 제지하라고 지시했다. 더는 묻지 못했다.

필요한 음식 자재는 주방 담당자가 장을 보고 난 뒤 일괄적으로 배달받는 식이었다. 이날, 봉고차가 사저 앞에 섰다. 양파 한 망과 각종 부식물 두 상자가 배송됐다. 또 다른 승용차는 세제를 배송하기도 했다. 인근 마트 차량이었다. 인근 과일 가게 직원은 일주일 전에 수박과 복숭아를 배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의 손님이 많은 편이라 과일 주문이 잦은 편이다. 요새 좀 뜸했다”라고 말했다. 한 손님은 13만원짜리 제주산 망고를 사서 전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하기도 했단다.

대통령이 재직 중 탄핵 결정으로 퇴임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경호·경비를 제외한 모든 혜택이 취소된다. 따라서 전 전 대통령이 받는 연금은 없다. 하지만 ‘경제력 없는’ 상황에서도 전 전 대통령은 어려움을 겪지 않는 듯했다. 폐회로 카메라 6대는 집 주위를 촬영하고 있었고, 오후 7시30분이 되면 집 앞 가로등 네 개가 순차적으로 켜졌다. 그의 집은 언제나 밝았다.

기자명 송지혜·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