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펀드〉라고? 〈시사IN〉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이겠다. 맞다. 지난해 15회 연재되었던 ‘지리산 오미동 통신’에서 소개되었던 ‘펀드’다. 지면 제약 때문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가 책에는 훨씬 더 풍부하게 실려 있다. 지은이 권산씨(51)의 맛깔스러운 글 솜씨와 위트는 여전하다.

‘맨땅에 펀드’는 마흔 가구 정도 되는 전남 구례의 오미마을과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통을 위해 만든 ‘펀드’다.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에서 진행했다. 2012년 1인당 30만원씩 100명에게 투자금을 받았다. 이 투자금은 작물을 키우고 가공하는 데 쓰고, 투자자들에게는 제철 농산물을 보내주었다. 1년 동안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짓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은’ 마을 ‘엄니’들을 설득해 가능한 한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지으려 애썼고, 주변 농부들이 가꾼 작물을 ‘제값’에 구매해 투자자들에게 다섯 차례 ‘배당’했다. 배당품은 밀·감자·땅콩·고구마·배추 등 제철 농산물이다. 중요한 건 농산물 생산 과정과 그와 관련해 벌어지는 농사 이야기가 ‘지리산닷컴’ 사이트를 통해 주 단위로 ‘생중계’된다는 점. 투자자들은 어떤 작물을 파종하고 수확하는지, 가뭄과 장마와 태풍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심지어 어떻게 작물을 도둑맞았는지를 세세하게 알 수 있다. 지리산닷컴 운영자인 권산씨는 ‘맨땅에 펀드’를 통해 시골 마을·농사·농부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권산씨는 도시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지리산 오미동 마을로 귀촌했다.
권산씨는 도시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지리산 오미동 마을로 귀촌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권씨는 젊은 시절 ‘민중미술’ 운동을 했다. 수배 중이던 1991년 차를 타고 구례 들판을 지나게 되었는데, 황금빛 들판을 지날 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마을에 살고 싶다.’ 그 마을이 오미동이었다. 그런데 2006년 서울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그 마을로 귀촌할 줄이야. ‘도대체 나는 왜 일을 하나’라는 질문에 ‘그냥 나를 위해 살자’고 답을 한 후 결정한 귀촌. 그 마을에서 산 게 7년째다. ‘조용히 유유자적 살자’고 왔는데, ‘맨땅에 펀드’를 만들어 여전히 요란하게 산다. “시골에서 7년 정도 살아보니 한국 농업 문제를 풀어나갈 중심 과제는 직거래를 중심으로 한 유통이지 농산물 생산방식이 아니었다.” 시골 작은 텃밭에서 김장용으로 배추를 키우는 게 전부였던 자칭 ‘입농사의 대가’인 권씨가 농지 3300㎡(1000평), 감나무밭 3300㎡을 임차해 ‘맨땅에 펀드’를 시작한 이유다.

 
수배 시절 “이 마을에 살고 싶다”

올해 ‘맨땅에 펀드’는 투자자 수를 334계좌로 늘렸다. 딱 1억원을 채웠다. 자체 농산물과 구례의 농부 일곱 명이 키운 작물로 ‘배당’을 한다. 예산 지원은 모두 거절했다. 지자체장들이 좋아하는 ‘업적의 시각화’를 경계하고, 관의 개입 없이 하나의 마을이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싶어서다. 내년에는 매장을 만들어 주말 장터도 열고, 자체 수매도 시도해볼 요량이다.

지리산닷컴에는 ‘맨땅에 펀드’에 대한 언론 보도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투자’를 위한 것이 아닌 펀드. 2013년 투자자 모집은 이미 끝났다. 한 번은 보도가 나가고 ‘투자 메일’을 보내온 수백 명에게 ‘거절’ 답장을 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투자보다도 ‘맨땅에 펀드’를 왜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실제로 투자자에게 권산씨가 몇 가지 사전 질문을 한다). 그러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지리산닷컴’ 사이트를 ‘눈팅’했다가, 2013년 말 ‘맨땅에 펀드’하시라.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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