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해보자. 나는 내가 사는 지역구의 구의원의 이름을 알고 있나? 그렇다면 시의원 혹은 구청장의 이름은? 어느 하나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내가 사는 지역의 소소한 것까지 결정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정치인이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꿍이다.

2014년 6월4일 제6회 동시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해묵은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신호탄은 지난해 박근혜·문재인 두 대선 후보가 쏘았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정당 개혁’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는 정치 혁신’은 두 후보가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집에 넣으며 명분으로 삼은 말들이다. 정말, 정당공천제만 폐지되면 정당은 개혁되고 정치는 혁신될까?

ⓒ뉴시스1월7일 성남시의회 파행을 막기 위해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본회의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정당공천제는 늘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확대든 폐지든 정당공천제는 늘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개혁’의 이름으로 소환되곤 했다. 5·16 쿠데타 이후 중단된 지 30년 만에 부활된 1991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정당공천제 도입을 둘러싸고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다 선거가 연기되기도 했다.

정당공천제는 도입부터 말썽이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확대되어왔다. 정당공천제가 기초의회까지 확대된 때는 2006년 제4회 동시지방선거에서부터다. 그전에는 내천(內遷:선거에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하는 당의 공천)이 횡행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당공천제뿐 아니라,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역시 도입되었는데, 내천을 ‘양성화’하고 정당의 책임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모두 지방자치제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 보완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와 더불어 위로부터 ‘주어진’ 지방자치제는 제구실을 하기보다는, 지역에서 권력을 틀어쥔 사람들의 ‘밥줄’ 노릇을 해왔다. 지역 살림을 도맡아 하며 중앙권력과 길항 관계에 있어야 할 지방의원들은 잊을 만하면 사고를 쳤다. 공금횡령, 금품수수, 폭행, 특혜 등 추문과 구태의 형태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공천권’을 쥔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 특수 관계는 계속해서 논란의 대상이었다. 김수민 의원(녹색당·경북 구미시의회)은 “국회의원이 지역 행사장에 오면 그와 같은 정당 소속의 지방의원들이 마중 나가 수행하는 일이 빈번하다”라고 말했다.

주민정당제·선거구제 논의 필요

지방의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은 물론 지역구를 관리하는 선거운동원이자 정치 후원금을 ‘조공’하는 물주이기도 하다. 영남과 호남처럼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일수록 더하다. 이 같은 일이 빈번하자 국회의원의 하수인·용병·거수기 등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지방의회를 따라다녔다. 올해 초 성남시의회 준예산 사태처럼 특정 정당이 ‘패거리’가 되어 지방의회를 무력화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래서인지 19대 국회에서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폐지와 관련해 발의된 법안(공직선거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4건이다. 4건 모두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했으며, 정당공천제 폐지는 상수였다. 다만 신의진 의원안은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현행 10%에서 30%로 확대(모두 여성 공천)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재오 의원안은 후보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어, 정당이 공천에 개입할 수 없도록 좀 더 구속력을 두었다. 정갑윤·유승우 의원은 정당공천제 폐지에 더해 현행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꿀 것을 추가로 제안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발의된 이 법안들은 모두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그런데 현역 지방의회 의원들은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이 같은 중앙정치권의 움직임에 부정적이다. 정당공천제를 찬성하는 오진아 의원(진보정의당·서울 마포구의회)은 “정치 개혁의 과제가 여러 가지 있는데도 유권자의 정치 혐오와 무관심에 기반해 생색내기식으로 정당공천제를 활용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정당공천제를 반대하는 호남 지역의 한 기초의원(민주당)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는 동의했다.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가 지방자치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처럼 이야기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지난 4·24 가평군수 보궐선거는 상징적이다.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을 이유로 무공천을, 민주당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현행법에 따라 공천을 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한 채 선거가 치러졌다.

그 결과 가평에서는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빨간색 점퍼를 입고 뛴 무소속 후보만 넷이었다. 후보 서로가 ‘박심(朴心’)임을 드러내기 위해 선거 공보물에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경쟁적으로 실렸다. 무소속 후보 넷은 20%대 고만고만한 득표율을 보였다. 당선된 김성기 후보는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공천에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도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이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한겨레TV 화면캡처4·24 가평군수 보궐선거에는 여당 성향 후보 4명이 무소속으로 나섰다.

이러한 사례는 정당공천제 폐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영태 교수(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는 정당 없는 선거가 시민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청중민주주의’의 강화를 의미할 뿐이라고 일축한다. “공천 금지가 아닌, 공천 방식 개혁을 통한 정당정치 제도화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방선거, 특히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권자들에게 정당은 ‘최소한의 선택 기준’을 제공해주는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김석 의원(통합진보당·전남 순천시의회)은 일종의 지역정당인 ‘주민정당제’를 대안으로 제안한다. 김수민 의원 역시 주민정당제가 정당공천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정치의 지방 지배, 국회의원 공천권 행사를 일소하는 동시에,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이 이상의 안은 없다”라는 것이다.

주민정당제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유권자인 지역 주민들이 일종의 정당(모임)을 결성하고, 기초의원 선거 후보를 적극 공천하는 제도다.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가 대표적이고, 우리에게도 2006년 자기만의 색깔이 선명한 무소속 후보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지역 정당 ‘풀뿌리옥천당’의 실험이 있었다. 현행법상 서울에 정당본부를 두고 5개 이상 광역 단위에 5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정당 명칭을 쓸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당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까지 받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정당공천제에 묻혀 간과되고 있는 또 다른 쟁점은 선거구제다. 김수민 의원은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구제 논의라고 주장한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내주더라도, 중선거구제는 내주면 안 된다”라는 것. 기초의회 선거에서 중선거구제 도입은 정치 신인과 소수 정당에 의회 진출의 기회를 주고, 지역주의가 강한 지역에서도 다른 당의 후보자가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다.

‘정당공천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정치권에서 오래된 레퍼토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매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복되어왔던 이야기들이다. 관련 토론회도 줄줄이 잡혀 있다. 4월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대세는 폐지 쪽으로 기우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본질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아닌데도, 지방의원들의 공천권을 쥐고 흔드는 여의도 사람들만 ‘눈 가리고 아웅’ 중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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