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눈치만 보는 지역 연구 용역, 정말 필요한가
  • 김석 (
  • 호수 303
  • 승인 2013.07.1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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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이 원하는 결론과 답을 만들어 내는 연구 용역은 세금 낭비다. 진정한 ‘갑’은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에서 규모가 있는 일을 구상하거나, 국비 지원을 받기 위해 추진하는 일 중에 ‘연구 용역’이 있다. 사업의 타당성을 분석하고, 사업 추진 논리를 만들며,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목적으로 추진된다. 작게는 500만원부터 많게는 수억 원의 비용을 지불한다. 결과물은 화려한 그래픽이 포함된 가운데 대부분 지역 현황과 도시의 특성 등 일반적인 개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작 필요한 연구 용역 기관의 의견은 몇 장 되지 않는다.

주민 의견은 설문조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고, 구조화된 설문에 응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연구 용역은 국가 연구기관, 대학 연구소 등 흔히 말하는 전문가들이 수행하지만 만족도가 높지 않다. 연구 용역이 종료된 뒤 결과물은 책장에 꽂히는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반발이나 민원에 부딪혀 꽃도 피우지 못하는 사업도 많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김석 제공〈/font〉〈/div〉연구 용역 발주에도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 순천시의 심의 안건들.
첫째, 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기관 맞춤형으로 조사와 분석이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서다.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갑과 을의 관계가 연구 용역 발주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돈을 지불하는 관청이 갑이 된다. 그리고 수행하는 연구기관은 을이 된다. 관청(갑)이 원하는 결론과 답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관례에 따라 연구기관(을)은 최선을 다해 지역을 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부서와의 의견 조율을 목적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지역에 적용하기 힘든 경우 대부분

둘째, 실행보다 연구 자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연구 용역을 수행하면서 가장 큰 비중은 사업의 효과, 즉 주민과 그 지역의 미래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기관은 실행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실제로는 지역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며, 좀 더 깊은 연구를 위해서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 객관적일 수는 있으나 현실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전국 또는 전 세계의 세련되고 우수한 사례를 많이 소개하지만 실제로 해당 지역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다. 지역에는 싱크탱크(Think Tank)이면서 직접 실행할 수도 있는 두탱크(Do Tank)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셋째, ‘진정한 갑은 시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민 삶에 좋은 영향을 주자는 목적으로 진행되지만, 정작 시민의 참여와 의견 제시는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청도 시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고, 연구 용역도 시민을 위해서라지만 진정한 갑을 망각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이유는 시민이 진정한 갑이기 때문이다.

넷째,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비 지원을 받기 위한 보고서로 사용되는 측면이 있어서다. 대부분 정부에 의존해 재정을 충당하는 기초자치단체 처지에서는 정부의 중심 기조에 맞게 정책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이 중심 기조였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가 중심 기조다. 그렇다 보니 거의 대부분 국비 지원을 받는 사업의 제목 앞에 ‘창조’를 남발하는 실정이다. 지역 특수성을 바탕으로 지역민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연구 용역이 국비 지원을 받기 위한 단순 보고서로 전락하는 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내실 있는 연구 용역은 반드시 필요하다. 진정한 갑인 시민을 중심에 두고,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지역에 기반한 연구기관의 역량을 강화하고, 연구 용역을 꼭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나, 좀 더 세밀하게 발주할 때 내실 있는 연구 용역이 가능할 것이다.

한 해 수억 원을 들여서 발주한 많은 보고서들이 책장에 전시용이 아니라 시민에게 지속적으로 읽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필자나 연구기관이나 발주한 공무원이나 다 가질 것이다. 진정한 갑인 시민을 위해 ‘을’의 반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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