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75만원. 이숙희 홍익대 청소노조 분회장이 하루 10시간씩 청소를 하고 받은 월급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소송 폭탄’이 떨어졌다. 손해배상 청구액 2억8821만원. 이 분회장의 월급으로만 따지면 32년을 꼬박 갚아야 할 돈이다. 2011년 초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점거 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로, 홍익대가 이 분회장을 비롯한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간부 5명에게 건 소송이었다. 홍익대는 점거 농성으로 전기·수도료가 더 드는 등 재산상의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에서 홍익대는 졌다. 청소노조 변호를 맡은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의 우지연 변호사는 “애초 홍익대가 소송을 제기한 목적은 비용 보전보다는 노조 활동에 부담 끼치기였다”라고 말했다. 홍익대는 포기하지 않고 항소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324억원. 지난해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MBC가 노조에 청구한 손해배상액이다. 처음 33억원에서 지난해 7월 195억원으로, 올해 들어 또다시 올랐다.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손배 청구액은 새해 국회가 통과시킨 군 사병 월급 인상 예산(258억원)보다 많고, 초등학교 온종일 돌봄학교 확대 예산(373억원)보다 적은 돈이다. 심지어 가압류도 걸린 상태다. 정영하 노조위원장(1억2500만원) 등에게 부동산 가압류가 된 상태다. 노조 계좌 22억6000만원도 가압류로 묶였다. MBC 노조는 곧 다른 언론사 노조에서 돈을 빌릴 예정이다. 조합비가 노조 계좌로 들어오지만 돈이 동결된 처지라 노조 활동이 점점 힘들어졌다. 

노사 분쟁 후, 회사 측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는 일종의 관행같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주요 노동 현안이 되었던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유성기업 등의 노조는 파업이 끝난 후에도 후유증을 앓았다(아래 표 참고). 돈으로 노조활동의 발목을 묶은 양태다.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상황까지 이른 일도 다시 일어났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씨, 한진중공업 김주익씨가 손해배상 청구액 등의 부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자, 회사 측은 손해배상 청구를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제한 등을 위한 입법 청원이 이뤄졌지만, 법 개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현재 회사 측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근거로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노조법은 합법 파업에 한해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제한을 두었다. 문제는 현행법상 합법 파업을 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노조법이 명시한 노동쟁의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이다. 최근 들어 주요 사업장의 파업 원인이 되는 비정규직이나 정리해고 등은 합법 파업 사유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법원은 해석한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해고 요건이 완화되었다. “사용자는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라고만 되어 있던 근로기준법 31조는 1998년 2월 전문개정이 되면서 ‘경영상의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했다.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라는 구절이 추가되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신인수 변호사는 “이런 법체계하에서 파업이 정당성을 획득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정리해고는 임금인상보다 더 중요한 근로조건인데, 이를 막기 위한 파업이 안 된다는 법원의 해석은 좁은 해석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노동법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라는 민법이나 상법상의 원리를 노동법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곤란하다. 민법이나 상법은 물건을 산 사람이나 판 사람의 관계가 평등하다고 전제한다. 노동법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불평등하다는 전제로 만들어졌다. 국가가 개입해서 실질적 정의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리다. 특히 가압류는 별도의 소송 진행 없이 회사 측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90%가 넘는다. 노동 사건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현행법상 합법 파업은 거의 불가능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노동조합에만 머물지 않고 개인에게까지 이뤄지는 양상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노사 분규에 참여했던 개인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전형적인 노조 파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손해배상 156억원 청구 소송을 당한 금속노조 KEC지회는 파업 이후 회사의 ‘맨투맨 회유’를 겪었다. 회사 측에서 조합원 개개인에게 접근해 사표를 쓰면 손해배상 대상에서 빼주겠다고 했다. 효과가 있었다. 15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금속노조 법률원의 김태욱 변호사는 “거꾸로 생각해보면 된다. 개인의 불법이나 비리가 아닌 회사의 불법행위에 관해서, 회사가 아닌 회사 대표나 간부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소송액을 청구해 그걸 협상 무기로 쓰는 건 악랄하다”라고 말했다.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문제를 풀려면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과)는 말했다. △노조법 개정 △헌법의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우위에 둔 법원의 해석 △노조 단결력 키우기이다. 이 중에서도 노조법 개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노조의 위법한 행위에 대해서 회사의 손해배상은 법리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손해배상은 노조에 대한 보복행위로 주로 쓰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 노조의 단결권과 법원의 해석은 당장 어떻게 해보지는 못한다. 법 개정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도록 노조법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동 3권이 헌법으로 보장된 나라는 드물다며, 그에 맞게 하위법인 노조법을 손보면 나머지 두 조건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주장이다.

노동법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없앨 방법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실행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노동 관련 판결문에 이런 구절을 명시해놓았다. “복수적 사회단체의 존재와 그들 사이의 세력 균형은 민주적 정치 의사형성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정당한 이익조정에 이르는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있어서의 사회단체의 의미와 사회단체 간의 세력 균형의 중요성을 가장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예가 바로 노동자 단체와 사용자 또는 사용자 단체 간의 관계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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