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는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가
  • 송지혜 기자
  • 호수 276
  • 승인 2012.12.31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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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23명이 숨졌다. 노조 간부들은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곡기를 끊고, 송전탑에 올랐다. 하지만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 그룹 측은 정리해고자 복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3월30일 서른여섯 살 이윤형씨는 경기도 김포시 한 임대아파트 23층에서 몸을 날렸다. 투신자살. 유서는 없었다. 유족에게 부고를 알리기 위해 경찰이 들어간 집은 42.9㎡(13평) 크기 1인 가구였다. 빈 생수통 여러 개가 거실 가운데 놓여 있었고, 약봉지가 흩어져 있었다. 집안 한구석에 놓인 이력서가 눈에 띄었다. 경력 난에는 ‘쌍용차 재직’이라고 쓰여 있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직계가족이 없던 그를 쌍용자동차 동료들은 충남 서산에 뿌렸다. 모친의 묘가 있는 곳이다. 쌍용차의 ‘22번째 죽음’의 흔적은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산 자들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는 4월 ‘얼굴 없는’ 영정 사진을 내걸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대한문 농성촌의 시작이었다. 요구는 단순했다. ‘함께 살자.’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해고자나 무급 휴직자, 그 가족 등 23명이 숨졌다. 단일 사업장 파업 사상 전무후무한 죽음의 행렬이었다.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자살, 아버지는 과로사한 ‘쌍용자동차 남매’ 사연은 울림이 컸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는 2009년 컨설팅 회사 삼정KPMG가 작성한 〈쌍용자동차 경영 정상화 방안〉 보고서를 토대로 정리해고 안을 발표했다. “인적구조의 혁신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2646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당시 노동자의 절반(46.8%)에 가까운 수치였다. 회사를 망친 ‘먹튀 자본’ 상하이자동차의 책임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정리해고’에 대해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는 불가피성 때문에 용인되어 왔다. 이들은 옥쇄파업 뒤에도 정리해고가 얼마나 한 가정을, 그리고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의자놀이〉 출간되며 공론화 바람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소설가 공지영씨가 지난 8월 〈의자놀이〉를 출간하면서 쌍용자동차 사태는 공론화 바람을 탔다. 김정우 지부장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41일간 곡기를 끊었다. 3년 만기를 채우고 감옥에서 나온 한상균 전 지부장은 쌍용차 본사 인근의 송전탑에 올라 또다시 ‘하늘 감옥’에 스스로 갇혔다. 결국 박근혜 후보도 대한문 농성장 방문을 타진할 만큼 이들은 2012년 대한민국 해고 노동자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을 반대해왔던 새누리당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결국 대선 뒤 국정조사를 약속해야 했다. 쌍용차 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이후 다양한 방식의 시민 연대가 이뤄졌다. 손수 지은 밥을 가져다주시는 분, 문화제에 나와 주시는 분, 현장을 기록해 주시는 분 등 모두 고맙다. 올해는 쌍용차가 시민들의 관심을 많이 누린 해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지난 10월, 회사는 2014년 12월까지 무급 휴직자 455명을 점진적으로 복직시키겠다는 조정안을 법원에 냈다. 2010년 8월까지 복직시키겠다는 노사합의를 4년 만에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 그룹 파완 고엔카 사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서 “정리해고자를 복직시킬 계획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함께 살자’는 쌍용자동차 식구들의 바람이 이뤄지는 게 그리도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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