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11시30분. 지팡이에 의지해 느릿하게 걷거나,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은 한 무리의 어르신이 줄을 서거나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다. 순천시 조곡동 철도운동장에 위치한 복지식당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피어나고 잠시 뒤 12시, 닫혔던 복지식당 문이 열리면서 앞치마를 두른 한 여성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오늘은 고등어조림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부축을 받은 어르신들이 식탁에 옮겨 앉으면 식사가 시작된다. 책임자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르신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긴다. 

“김씨 할아부지는 안 보이시네요?” “응, 자식들 보러 갔어.” “할무니 무릎은 괜찮습니까?” “어이 고맙네. 여기서 밥 한 끄니라도 묵을라고 요 무릎하고도 여까지 또 오네, 고맙네 고마워.” 대화가 오가는 사이 식당은 정으로 가득하다.

ⓒ김석 제공복지식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이 경로복지 식당의 하루 이용자는 140명. 일요일을 제외하고 302일 동안 문을 연다. 저소득 영세 노인 또는 무자녀·무연고로 점심을 거르거나 결식이 잦은 60세 이상 어르신이 주 이용 대상이다. 노인복지법에 따른 무료 경로식당으로 순천시가 인정하는 무료 급식소이기도 하다. 

2000년 한 개인이 가건물을 세우고 운영하던 곳을 2004년 순천YWCA가 위탁받으면서부터 건강진단, 문화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결합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사는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한 학생·시민·공공기관·기업의 자원봉사가 체계적으로 활성화돼 있다. 따라서 위탁단체도, 순천시도 그리고 이용하는 어르신들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운영비는 순천시가 지원하는데 오로지 재료비(1인당 2300원)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어 늘 빠듯하다. 부족한 부분은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물품으로 채워 왔는데 경기가 나빠진 이후로 이마저도 대폭 줄어버렸다.


핑퐁 게임하는 여성가족과와 스포츠체육과

최근 복지식당이 운영을 중단할 위기에 빠졌다. 올해 복지식당이 위치한 철도운동장이 순천시 소유가 됐는데, 체육공원 조성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시설물이 5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복지식당이 문제가 된 것이다. 복지식당은 체육공원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식당을 지원하는 순천시청 여성가족과는 지속적인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체육공원을 조성하려는 스포츠체육과는 설계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부득불 식당을 이전하거나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펴고 있다. 전형적인 캐비닛 행정, 칸막이 행정의 모습이다.

돌이켜보면 체육공원 조성 계획이 발표됐을 때 여성가족과는 복지식당 이전을 위해 대체 용지를 마련하거나 증축을 위한 예산 확보 등의 노력을 했어야 한다. 스포츠체육과 또한 체육시설 설치 중심으로 사고하다 보니 중요한 노인복지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

올 초 체육공원 조성을 위한 시민 설문조사 결과 많은 시민이, 복지식당이 그 자리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따라서 이 기회에 가건물이던 식당이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 사람도 있었건만 이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가 빚어진 것이다.

순천시는 현재 농촌지역의 마을회관 급식을 계획하는가 하면, 노인복지 정책 또한 확대할 방침이다. 이런 마당에 두 부서는 핑퐁 게임을 중단하고 불안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루 빨리 여성가족과, 스포츠체육과, 위탁운영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복지식당은 경제적 여건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어 결식이 우려되는 어르신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다. 점심을 계기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기는 정이 넘치는 공간이자, 학생과 시민의 자원봉사 활성화로 인해 노인복지의 수범 사례가 펼쳐지는 곳이다. 운영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 늦었지만 순천시가 빠르게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자명 김석 (전남 순천시의회 의원, www.kimdol.net)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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