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회의 제작 거부 사태로 〈뉴스데스크〉를 단축 방송하게 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홀로 뉴스를 진행하던 권재홍 앵커가 방송 시작 15분 만에 클로징 멘트를 했다. 1월25일 MBC 〈뉴스데스크〉는 평소보다 30분 이상 일찍 방송을 마쳤다. 1월26일 〈뉴스데스크〉도 15분 만에 끝났다.

1월25일부터 MBC 본사 기자들은 뉴스를 만들지 않는다. 뉴스의 공정성 회복과 전영배 보도본부장 등 보도 책임자의 사퇴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카메라와 마이크 대신 ‘현안 외면·본질 회피, 신뢰추락 불러왔다’ 따위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보도국에서 침묵 농성을 한다. 지역 MBC 기자들도 성명서를 내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번 제작 거부는 1월18일부터 이틀간 MBC 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가 1993년 입사 사번(차장급) 이하 기자 1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작 거부 찬반투표에서 115명이 찬성해 가결된 데 따른 것이다. 영상기자회도 45명 중 30명이 찬성표를 던지며 제작 거부에 동참했다. 


ⓒ시사IN 조남진1월25일 최일구 앵커가 MBC 기자들의 농성장을 지나가고 있다.

MBC 기자회는 지난 한 해 내내 이어진 ‘파행 뉴스’가 2012년에도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뉴스 파행’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방송 3사 뉴스 신뢰도 조사에서 늘 하위를 차지했던) SBS 뉴스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나오고 집회 현장에서 취재를 거부당하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결국 제작 거부라는 극단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때 신뢰도 1위를 자랑하던 MBC의 위상은 실제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MBC 노동조합이 1월11~12일 국내 언론 관련 학과 교수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3%가 ‘MBC 보도의 공정성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응답했다. 올해 MBC 선거 보도에 대한 응답은 ‘매우 우려됨’이 44%, ‘조금 우려됨’이 35%였다. 반면 ‘다소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17%에 불과했다. 


MBC 뉴스 1년간 얼마나 망가졌나

MBC 기자들의 제작 거부는 현 정부 들어 두 번째이다. 2009년 신경민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가 경질됐을 때도 제작 거부 사태가 있었다. 박성호 MBC 기자회장은 “기자들이 불공정 보도에 대해 항의해도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은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직을 걸고 나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박성호씨는 1월6일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사흘 만에 아침 뉴스 〈뉴스 투데이〉 앵커에서 경질됐다.

MBC 기자들 스스로 불공정 보도를 했다고 판단하고 시인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제작 거부 이틀째인 1월26일, MBC 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는 특보 형식으로 ‘2011년 MBC 7대 불공정 보도’를 선정해 발표했다. 비대위는 △청와대 내곡동 사저 의혹 △한·미 FTA 찬반 논란 △10·26 재·보궐 선거 △김문수 119 전화 논란 △〈PD 수첩〉 판결 △반값 등록금 문제 △권도엽씨 등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따위 사안을 MBC 뉴스가 축소해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가령 지난해 11월 한·미 FTA 반대 집회가 열렸을 당시 SBS가 집회 현장에 중계차를 보내고 KBS가 한·미 FTA 찬반 양쪽의 의견을 종합한 리포트를 내보냈지만, MBC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아예 배제한 채 편파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기자회의 항의에 전영배 보도본부장은 “한·미 FTA 반대 목소리를 매일 내보내주는 게 공정 보도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6일 발행된 〈문화방송 노보〉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의 특종 보도가 묻힌 사례가 실렸다. 12월3일 〈뉴스데스크〉 큐시트 중간에 잡혀 있던 특종성 기사 ‘미국 법원, BBK 덮는다’가 ‘방송 시간이 오버된다’는 이유로 밀리다가 결국 5일에야 아침 방송인 〈뉴스 투데이〉에 나갔다는 것이다. 양동암 MBC 영상기자회장은 “언론사는 ‘무엇을 어떤 내용으로 보도하느냐’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왜 보도하지 않느냐’로도 판단받는다. 이런 점에서 MBC의 정권 관련 보도는 불공정하다”라고 말했다.

누리꾼은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분위기이다. MB 정권에 힘이 빠지면서 부랴부랴 국민 눈치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오지만 지금이라도 공정 보도를 실현해달라는 것이다. 시민 안 아무개씨(42)는 트위터를 통해 “지난 4년 동안 MBC보다 국민이 힘들었다는 걸 MBC 기자들은 알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언론 민주화를 쟁취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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