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까칠거칠(〈시사IN〉 제214호) 칼럼에서 김어준을 둘러싼 신앙 간증 친위부대를 비판한 이후,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언급하면 ‘너 한나라당 편이냐’며 싸움이 난단다. 집단 지성과 시민의 힘이 불을 뿜으며 역적을 성령으로 압도하는 이 아름다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한 점 사죄드리며 이번 주에는 바짝 엎드려 빤한 이야기나 해볼까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공익광고가 논란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특히 문제였다. 당초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이라는 문구였으나 그렇게 바뀌었다. 행간을 따져보면 참 치졸한 이야기다. 그러나 사실관계만 따지고 보자.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어디 있나. 이 문장이야말로 지금 한·미 FTA를 둘러싼 복마전의 핵심이다. 이 한마디를 수용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선악 프레임으로 돌진하며 노무현의 선량한 FTA와 이명박의 악랄한 FTA를 구분 짓는 분열증이 이른바 ‘우리 편’을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다.

이렇듯 쉽고 편하게 말을 바꾸는 까닭은…

전에는 모두의 처지가 정확히 거꾸로였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과거 “한·미 FTA 체결만이 살길이다”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도 “(한·미 FTA는)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꼴사납지만 정치라는 게 원래 그럴 수 있다. 이제 와서 홍준표 대표는 “내가 그때는 잘 몰랐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요즘 거의 민주당 별동부대 같아 보이는 정동영 최고위원 같은 경우는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도 전국농민회총연맹을 찾아가 한·미 FTA 체결을 사과했다. 모두가 쉽고 편하게 말을 바꾸거나 해명할 수 있는 것은 한·미 FTA라는 사안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개방과 시장 유연화가 피해 갈 수 없는 시대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미 FTA는 정권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언제든지 논리를 바꾸어 입장을 선회할 수 있는 화두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항목은 전에도 있었다. 다만 정권을 잡은 자들은 ISD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고, 정권 밖에 있는 자들은 아닐 가능성에 방점을 찍는 것뿐이다. 문제는 최근 야권 진영의 전략이다. 시민의 힘, 국민의 명령, 집단지성의 무결성 따위 수사에 천착하는 집단의 유행과, 거기에 무임승차하는 방식으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재미를 본 야권이 한·미 FTA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택한 것이다.

상식과 정의에 심취한 민주 자경단의 총질을 ‘시민의 감수성’이라며 칭송하는 김어준 같은 사람에게 노무현의 한·미 FTA는 착하거나 최소한 덜 나쁜 것이었고 이명박의 한·미 FTA는 악한 것이다. 심지어 노무현재단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이명박 정부의 FTA 재협상과는 달리 노무현 정부의 FTA는 투명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한·미 FTA 졸속 협상을 중단하라”는 비판은 똑같았다. 울면서 팔아먹은 것과 웃으면서 팔아먹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한·미 FTA 국민투표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한·미 FTA는 야권이 떳떳하게 진심을 인정받으며 주장할 만큼 확정적인 한 방이 될 수 없다. 이건 아이들 밥 먹이는 거나, 오세훈이 싸놓은 똥 치우자는 것처럼 간단하고 명확한 문제도 아니다. 실제 가능하더라도 국민투표로 한·미 FTA를 뒤집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리고 그 일등공신 중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꾸준하고 성실했던 대국민 설득 과정이 될 것이다. 근본적 반성 없이 착하고 나쁜 FTA를 구별하는 진영 논리는 자칫 ‘주화입마’를 초래할 수 있다.

기자명 허지웅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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