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태안군 전체가 삼성을 질타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삼성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위는 1월23일 태안군민 4000여 명이 서울역 앞에서 연 집회 모습.

무서운 분노였다. 지난 1월19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취재를 시작하려는 찰나, 격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당신이 삼성의 첩자인지, 언론사 기자인지 내가 워처케 믿어? 자꾸 나 속 터지게 할껴? 우린 어디하고도 인터뷰 안 혀.”

어민에게 〈시사IN〉의 태동이 삼성과 관련됐다며 설득을 해봐도 막무가내였다. 방금 전 한 대학신문사 기자들도 삼성의 ‘프락치’ 취급을 받고 쫓겨났던 터였다. 런데 기자에게 막말을 퍼붓던 어민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비릿한 술냄새를 풍기며 그가 울먹이듯 말했다.

"창환이는 삼성이 죽인 거이여"

"창환이... 내가 잘 아는 후배여. 이놈이 며칠 전에 그러더라고. 형님, 이제 다 끝났슈. 더 이상 살 길이 없어. 해수부 사람이 와서 삼성은 책임이 없다고 합디다. 그럼 이제 어디에도 희망이 없잖유. 그러니 술 마시면 원통하고, 술 없으면 살 수가 없고··· 죽던 날도 내가 걱정이 돼서 집회장에서 창환이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 아 그런데,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사단이 난겨. 창환이는··· 삼성이 죽인겨.” 

지난 1월18일, 태안군민 1만여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장에서 음독 뒤 분신 자살한 지창환씨(56) 이야기였다. 지씨는 어민이 잡은 생선을 횟집에 공급하는 일을 해온 터라 어민과의 관계도 각별했다. 기름 유출로 어장이 황폐화하면서 지씨의 일도 끊어졌다. 지씨를 죽인 건 ‘삼성’이라고 어민은 굳게 믿고 있었다. 

‘삼성 미술품 팔아 태안 굴밭 매입하라’ ‘삼성그룹 경호업체 서산 검찰 박살내자’ ‘삼성 타도 삼성 불매, 태안군민 통곡한다’.

최악의 기름 유출 사건이 발생한 지 50여 일, 지금 태안은 거대한 ‘반삼성 기지’로 거듭났다.  북쪽으로는 만리포 해수욕장이 있는 소원면부터 남쪽으로는 안면도까지, 태안군 전체가 온통 삼성을 질타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태안군청 안에까지 버젓이 ‘삼성 타도’ 현수막이 걸렸다.  군민은 ‘삼성’이라는 말만 나와도 이맛살을 찌푸린다. ‘지역 토호’의 터전인 수협까지도 삼성계열사인 ‘CJ푸드’에 수산물을 납품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한 지역 ‘전체’가 정부가 아닌 기업을 상대로 이처럼 똘똘 뭉쳐 분노한 적은 없었다. 어쩌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했을까.
 

ⓒ시사IN 윤무영기름 유출 사고 이후 방제작업에만 매달린 태안 주민은 생계가 막막한 형편이다.

기름 유출로 죽어가는 바다에서도 어민은 살길을 찾았다. 굴을 따고, 바지락을 캐던 손으로 흡착포를 붙이고, 바위틈의 기름을 정성스레 닦아냈다.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기름덩어리를 없애다 보면 그 끝에 살길이 보일 거라고 믿었다. 타지에서 자원봉사자가 밀물처럼 몰려왔고, 각지에서 성금도 도착했다. ‘조금만 더···’ 견디면 살길이 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사고 책임자인 삼성중공업은 침묵했다. 보상 대책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이 50여 일을 나몰라라 했다. 가끔씩 삼성 임직원이 자원봉사를 나왔다는 ‘미담’ 기사만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묵묵히 바위틈의 기름을 닦아내던  어민은 결국 삼성을 향해 돌을 들었다. 이충경 의항리 어촌계장은 “삼성에 대한 분노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유? 처음부터 삼성이 잘못했는지 몰랐겠슈? 자원봉사자가 와서 고생하는디, 일단 기름부터 걷어내고 나중에 따지자고 꾹 참은 거유. 근데 뭐유, 사고난 지 50일 동안 삼성은 입 딱 닫았잖유. 어찌됐든 정부는 입으로 위로라도 했지, 삼성은 한 게 뭐 있슈? 우릴 기름 한 방울보다 못한 존재로 본 거유.”

실제 피해 어민이 얼마나 ‘인내’해왔는지는 ‘현수막 변천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난해 말까지 어민은 자원봉사자에 대한 고마움과 정부의 피해 보상을 촉구하는 현수막만 걸어왔다. ‘가해자’ 측에 대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린 게 1월 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수막에 삼성을 적시하지 않은 채 ‘원유 유출 사고 회사는 진실하게 사과하라’는 수준이었다.

최초로 삼성이라는 글자가 등장한 현수막 역시 ‘삼성인지, 정부인지 우리 터전 다 죽였다. 정부는 신속하게 선보상하라’는 내용에 머물렀다.  참았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한 건 지난 1월10일, 굴 양식업을 하던 이영권씨가 음독자살한 뒤부터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이평주 사무국장은 “삼성은 시간이 흐르면 어민의 분노가 사그라질 것이라고 여겼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거대한 분노가 축적되었다. 일류 기업 삼성이 태안어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게 커다란 실책이다”라고 말했다.

태안군민이 삼성에 반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삼성이 우리 사회의 언론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는 것을 태안군민이 깨달았다는 뜻이다. ‘삼성 장학생, 검찰은 자폭하라’ 같은 현수막이 이를 웅변하다. 태안읍내에서 보험 대리점을 운영하는 강희권씨는 “예전에는 군민이 삼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검찰 매수·노조 탄압 등 삼성의 범죄 행각에 대해서도 속속 깨달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름 유출 사고의 수습 과정이 어민에게는 곧 ‘반삼성’의 학습 과정이었던 셈이다.  
 

ⓒ시사IN 윤무영시간이 흐를수록 태안에는 삼성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늘고 있다.

‘학습 효과’도 두드러졌다. 현지 어민은 삼성 측이 언론사 기자나 피해조사 전문가 등으로 위장해 자기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캐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뿐 아니다. 삼성 측에서 현지에 파견된 언론사 기자들을 매수해 언론 보도가 통제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만리포주민대책위 사무실에서 접한 어민의 격한 반응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성이 장악한 우리 사회’에 대해 태안군민이 얼마나 깊게 불신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인 셈이다.

물론 삼성 처지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사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법적으로 가려지지 않은 가운데 자신들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게 과도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 이후 삼성은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뒤늦게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게재했지만,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갯벌에서 '맨손어업'한 1만명 더욱 난감

지난 1월23일, 서울로 상경한 태안군민은 마침내 삼성을 타격했다. 돌과 화염병 대신, 태안에서 걷어올린 기름덩어리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 집어던졌다. 김이며 우럭 등 어민이 자식처럼 키우던 ‘바닷것’들도 함께였다. 하지만 굳게 닫힌 삼성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삼성중공업 임원 한 명이 문틈으로 살짝 비집고 나와 ‘죄송합니다’ 한마디만 하고는 사라졌다. 이런 행태에 더욱 분노한 어민이 가슴을 치고 발을 굴렀지만, 거기까지였다. 태안군민 4000여 명은 쓰린 가슴을 안고 서울을 떠나야 했다. 

이날 서울역에서 열린 ‘기름유출사태 특별법 제정·삼성 무한책임 촉구대회’ 집회장에서는 삼성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 어민 중에는 ‘삼성 멸망’이라는 섬뜩한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두른 이들도 있었다.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모형을 때려부수고,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을 박살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의 연설이 길어질 때마다 “삼성 때려부수러 가야지, 왜 X같이 연설만 하고 자빠졌느냐”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편집국장 신문웅씨는 “나조차도 펜을 놓고 삼성에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만큼 주민의 정서가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기름 유출 사건은 태안군민 전체의 삶을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삶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만 벌써 세 명이다. 음독자살한 고 이영권씨의 아들 이운규씨(36)는 “보험회사 조사기관 직원들이 와서 이상한 말만 하지 않았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토로한다. 숨진 이씨는 미인가 양식장을 운영해왔다. 행정용어로 ‘미인가’일 뿐,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되는 바닷가에서 철들 무렵부터 해왔던 일이다. 하지만 조사기관 직원들은 이씨에게 “미인가 양식장은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라고 귀띔했고, 처지를 비관한 이씨가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안희태지난 1월23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이 ‘상경 집회’를 연 태안 주민이 던진 기름 덩어리로 범벅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정확한 지적은 아니다. 현재 피해 어민들의 보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민대책위와 관계기관 등이 계속해서 조율을 해나가고 있다. 피해가 워낙 광범위한 만큼 섣불리 보상 규정 등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씨처럼 미인가 양식장을 운영한 이들만이 아니다. 시간 날 때마다 갯벌에 나가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간 이들의 경우 숫자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군청 측은 6만4000 군민 중 4만4000명이 어업종사자이고, 이 가운데 5000명 정도가 맨손어업자라고 밝혔다.  반면 어촌계 측은 1만명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군청에 ‘맨손어업’ 신고를 하지 않고 일을 한 어민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피해 보상을 기대하는 한편, 방제 작업에 참여해 받는 일당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하지만 설 이후에는 전문 방제업체가 작업을 전담할 예정이어서 그마저도 끊길 형편이다. 더욱이 지금껏 진행해온 방제 작업 일당조차 아직 지급되지 않은 상태여서 어민의 괴로움은 더하다. 이운규씨는 “설 전에는 방제작업 일당을 지급해준다는디, 그것도 그때 가봐야 알것쥬”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120가구는 당장 먹을 쌀조차 없어

방제 작업이라도 할 수 있는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기름이 밀려오지 않은 지역의 어민은 아무런 생계 대책이 없다. 근흥면 마금리에서 음독자살한 칠순 노인 김용진씨의 경우가 그랬다. 맨손어업으로 바지락을 캐 시장에 내다  판 돈으로 몸이 불편한 아내와 단둘이 살았던 김씨는 사고가 터지자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야 했다. 바다를 보며 한숨만 쉬던 그는 1월1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늙은 아내는 충격으로 몸져누웠다. 1월20일 밤, 취재진이 찾은 김씨의 집에는 형언할 수 없이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졸지에 아비의 죽음을 맞은 김씨의 자녀들은 상기된 얼굴로 “불효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아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기름 유출 사건은 그렇게 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사IN 윤무영음독자살한 이영권씨 아들 이운규씨가 아버지가 일하던 양식장 앞에서 비통해하고 있다.

산사람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다에 기대 먹고살던 어민은 물론 횟집, 여관, 낚시상, 구멍가게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검은 바다만 원망한다. 지난 1월17일, 군청이 파악한 바로는 쌀이 떨어져 당장 생계가 곤란한 집이 120가구나 된다. 태안주민에게 이번 설은 평생 가장 ‘잔인한’ 명절일 수밖에 없다.     

오늘도 어민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닷가로 향한다. 더러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방제 작업에 참여하곤 하지만, 이제는 지쳤다. 50여 일을 기름구덩이에서 뒹굴어온 어민은 여전히 코를 찌르는 아스팔트 냄새에도 무감각해졌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과다.

살길을 잃은 어민은 결국 바다를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 어민이 외면한 바닷가에는 검은 타르 덩어리들만이 게와 고둥 대신 숨어 있을 것이다. 1월23일, 서울역 집회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끝이면, 너희도 끝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