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에서 태동한 대표적 신흥 종교라고 평가받는 통일교의 속내가 요즘 복잡하다. 교회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의 부인과 세 아들 사이에 재산권을 둘러싸고 서로 물고 물리는 법적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문선명 총재의 삼남인 현진씨(42)가 책임자로 있는 국제통일교회재단(UCI)이 지난 1월 어머니 한학자씨(68)가 대표로 있는 재단을 상대로 240억원대 부당이득금을 반환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이에 맞서 지난 5월에는 문 총재가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명한 일곱째 아들 문형진 통일교세계회장(32)이 형인 현진씨를 상대로 ‘UCI 재단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미국 법원에 냈다.

이와 별도로 통일교 재단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유지재단은 서울 여의도에 개발 중인 파크원 개발 시행사 Y22를 상대로 지상권 매각을 막기 위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 소송 역시 문형진·문국진(넷째 아들) 등 문 총재가 지명한 후계 체제와 여기에서 비켜나 있는 삼남 문현진씨 측이 대립하는 구도다.


ⓒ뉴시스9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을 돌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문선명 총재와 부인 한학자씨.

문 총재 가족 사이의 재산 다툼처럼 보이는 일련의 소송에 대해 통일교 측은 “재단의 공적 자산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법적 쟁송일 뿐이다”라고 격하시키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넘기기에는 사안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축복 결혼식’ 등을 통해 가정의 가치를 강조하고, 창시자 가족 자체를 ‘모델 가정’으로 여겨온 통일교에서, 그것도 교주인 문 총재가 살아 있는 시점에 이런 분란이 발생한 것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통일교 안팎에서는 대개 문 총재의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이번 분란이 빚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올해 93세인 문선명 총재는 3년 전 자신이 구순을 맞은 것을 계기로 아들들 중심의 후계 체제 전환을 모색했다. 이에 따라 통일교단의 핵심 축이라 할 종교 부문은 막내인 일곱째 형진씨(33), 교계 재단 산하에 흩어진 20여 개 기업 경영은 넷째 국진씨(41), 그리고 세계 평화활동 등 NGO 활동 부문은 셋째 현진씨(42)가 각각 맡았다.


지난해 막내 아들 문형진씨를 유일한 상속자로 발표한 문 총재 선포문(아래)과 삼남 문현진씨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지난 5월의 선포문(위).
이후 3년 동안 통일교는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그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등으로 바꿔 달았던 간판을 다시 ‘통일교’로 복원한 점이다. 문형진 회장과 함께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문국진 통일그룹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교회가 핍박받는 과정에서 통일교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았지만, 종교와 신앙에 대해 우리는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통일교 간판을 부활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문형진 신임 통일교세계회장도 교회가 영성에 뿌리내리려면 오랜 세월 핍박받아온 통일교라는 이름을 다시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는 교회만이 아니라 통일교 산하 기업 경영에도 나타났다. 문 총재는 2005년 미국에서 경영 수업을 받은 국진씨를 불러들여 자본금 1조7000억원대에 이르는 통일그룹 구조조정을 맡겼다. 문국진 이사장은 33개에 이르던 통일교 재단 산하 각종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 22개 기업만 남기고 대폭 정리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얻는다.


문현진, ‘불경죄’ 저질러 밀려났다?

막내 문형진 세계회장과 넷째 문국진 통일재단 이사장이 주도한 이 같은 파격적인 변화는 살아 있는 문 총재의 후광과 지지를 등에 업고 진행되었던 만큼 겉으로는 통일교 내부에서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계 구축 과정과 일련의 변화를 지켜보며 생각을 달리하는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문 총재의 삼남 현진씨였다.

문 총재의 일곱 아들 중 첫째와 둘째, 여섯째는 사고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현진씨가 사실상 장남이다. 아버지를 닮아 장대한 기골에 달변가인 그는 2000년부터 문 총재가 주도한 세계평화 활동의 전면에 나서면서 사실상 통일교의 후계자로 주목되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제자로서 통일교 2인자라 불리던 곽정환 이사장을 장인으로 둔 만큼 그의 입지는 독보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8년 봄 이후 문선명 총재의 관심은 현진씨 대신 막내아들 형진씨에게 급격하게 기운다. 현진씨가 아버지 눈 밖에 난 결정적인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통일교의 최고지도자 지위에 있던 장인 곽정환 목사와 함께 대부분의 통일교 공식 직책에서 밀려났다는 점에서 모종의 ‘불경죄’가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삼남 문현진씨는 ‘평화운동가 문선명의 길’을 계승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두 동생을 후계자로 낙점해 통일교의 교권과 재단 운영권을 맡기는 과정을 지켜본 현진씨는 이후 ‘아버지 가르침의 참다운 계승’을 모토로 내걸고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통일교에서는 2009년 8월 현진씨에게 UCI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지시했다. 현진씨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현진씨는 UCI 이사진 중 통일교에서 파견한 두 사람을 해임하고, 그 자리를 처가 식구인 곽정환 회장 자녀들로 바꿨다. 이어 UCI 정관에서 통일교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고, 자기가 세계평화 운동을 벌여나가던 ‘글로벌 피스 페스티벌(GPF)’ 재단에 UCI 재산을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현진씨의 이 같은 독자 행보는 통일교 내에서 문 총재의 지시를 거부하는 이단으로 몰렸다. 그 배후에 장인 곽정환 전 이사장과 그 친인척들이 있다고 해서 통일교는 한때 교회 2인자였던 곽 전 이사장을 ‘사탄’으로 공개 규정하기에 이른다. 곽정환 전 이사장과 문현진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자산에 대한 반환 소송도 잇따랐다. ‘참부모’(문선명·한학자 부부)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통일교 풍토에서 현진씨의 외길 행보는 내부적으로 적잖은 논란거리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현진씨가 문 총재의 아들인 데다, ‘아버지의 가르침과 뜻을 올바로 계승하는 길’이라는 명분을 앞세웠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로서는 덮어놓고 비난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이른바 통일교판 ‘왕자의 난’ 한복판에는 세 형제 중에서도 나이가 한 살 차이에 불과한 현진씨와 국진씨가 자리한다. 두 사람은 통일교가 소유한 〈워싱턴 타임스〉를 둘러싸고 오랜 대립을 벌여왔는데, 최근 이 신문은 국진씨 쪽으로 넘어갔다. 문국진 이사장은 〈시사IN〉과 만나 “모든 사태의 원인은 형님이 아버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데 있다. 지금이라도 아버님 지시에 따르면 포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43쪽 인터뷰 기사 참조).

그러면 문현진 회장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교계에서 절대자인 아버지의 지시를 거역하는 모양새로, 심지어 통일교에서 사탄으로까지 몰리면서 버티고 있을까. 현재 UCI 회장으로서 미국 시애틀에 머물고 있는 그는 자기 대리인을 통해 생각을 전해왔다. “단순한 재산 싸움이 아니다. 아버님의 평생 업적이 후세에 어떻게 계승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관점 차이다.” 문현진 회장이 바라보는 아버지상과 계승해야 할 부친의 업적은 단순히 통일교 창시자나 메시아(재림주)로서보다는 인류 평화에 기여한 사상가에 더 가깝다. 


통일교 강화를 주장하는 막내 형진, 넷째 국진, 딸 인진씨(오른쪽 사진 오른쪽부터).

문 총재 “상속자는 문형진, 그 외는 이단자”

그러나 동생들은 메시아로서의 아버지 위상을 더욱 강조한다. 문국진 이사장은 “성서에 예수는 재림하신다고 했고, 재림주가 있어야 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간단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통일신학을 종합하면 아버님이 재림 그리스도로 오셨다고 믿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문현진 회장은 “아버님은 모든 이에게 메시아적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고 손수 그런 삶을 살아오신, 위대한 평화운동가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업적을 계승하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문선명 총재에 대한 이런 관점의 차이는 통일교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이어진다. 사실상 통일교회 후계자로 지명된 문형진 세계회장은 1996년 아버지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꿔 단 통일교 간판을 부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문현진 회장 측은 이에 대해 “동생들이 아버지의 사상과 행적을 종교화하는 것은 역주행이다”라며 반대한다. 종교를 초월하여 가정연합으로 명칭을 바꾼 뒤 인류 평화와 초종교적 보편 가치를 추구해온 아버지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아들들의 분란에 대해 93세의 고령임에도 비교적 건강을 유지하며 활동하는 문선명 총재는 겉으로 막내 형진씨와 넷째 국진씨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새로 들어선 후계 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판단한 통일교에서는 지난해 6월 문 총재 명의의 친필 휘호로 “세계 통일과 천주통일 선교본부의 공문만 인정한다.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 외 사람은 이단자요 폭파자이다”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가족 간 소송 사태가 집중 보도된 지난달에는 문 총재와 한학자 여사가 사인한 또 하나의 선포문을 내놓았다. ‘문현진은 UCI 회장직을 내놓고 그 재단 자산은 통일교회로 반환하며 소송을 중지하라’는 요지였다. 


ⓒ시사IN 윤무영통일교 재산권 다툼에 휘말려 공사가 중단된 서울 여의도 파크윈 건설 현장.

지난 60여 년 동안 기독교계의 극한 이단 시비 속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국내외에 교세를 확장해온 통일교에서 문선명 총재의 말은 곧 법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현재 셋째 아들 현진씨는 아버지의 선포문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런 지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배후에 문 총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자기에 대해 허위 보고를 하는, ‘종권에만 눈먼 세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을 패륜아와 사탄으로 모는 교회 내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20세기의 대표적 신흥 종교를 창시한 문선명 총재가 생전에 마주한 후계 체제의 분란은 가장 큰 시련인지도 모른다. 그가 어떤 식으로 이 사태를 수습할지 결과가 주목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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