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폭언 문제가 불거지자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는 정명훈 예술감독 중심으로 사조직화한 서울시향의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려 한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이라고 말했다. “기존 일하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바뀌지 않았다. 기존 질서, 기득권, 그것에 계속 매달리려는 어떤 힘의 원천이 있었다. 그것을 새 질서로 바꾸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라는 것이다.

음악계 전문가들은 박 대표가 서울시향의 경영 합리화를 추구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예술의전당이나 고양문화재단에서도 기업가 출신을 CEO로 영입했다가 똑같은 우를 범했다.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생리를 모르면 단체장이 왕따처럼 느낄 수가 있다. 예술에 대한 존중이나 예술가 특유의 섬세함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서울시향 직원들로부터 퇴진을 요구받은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12월5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현정 대표와 정명훈 예술감독이 갈등을 보이자 박원순 시장은 12월11일 언론사 사회부장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정명훈 감독에 대한 공격은 취임 직후부터 있었지만 정 감독처럼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문제가 좀 있다고 배제해버리면 그 대안이 있느냐”라며 정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박 대표에 대해서는 “아직 진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폭언 등이) 사실이라면 경영자로서 상당히 문제가 있다”라며 조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시장은 박 대표 선임 과정에서 정 감독과 논의했다고 밝혔다. 서로 추천해서 거부 의견이 있으면 제외했는데 자신이 추천한 박 대표를 정 감독이 받아들여 정했다는 것이다. 박현정 대표가 현재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정 감독이 음악뿐 아니라 서울시향의 행정까지 좌지우지한다는 것인데, 박원순 시장의 발언은 정 감독이 이미 시향 대표를 정하는 데까지 관여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라 예술감독과 시향 대표의 역할과 권한을 두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현정 대표는 그동안 정 감독이 결정한 일 때문에 시의회에서 난감한 적이 많았다고 호소해온 터라 권한과 책임의 분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다툼의 여지가 남을 수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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