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세상.’ 창간을 앞두고 〈시사IN〉이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푸념이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뜻일 것이다. 비단 언론뿐이랴. 정치에 대한 불신, 기업에 대한 불신, 교육에 대한 불신,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 불신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 병증이다.

 

〈시사IN〉은 창간을 기념해 우리 사회의 신뢰지수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사회가 한 계단 성숙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영향력보다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이다. 그 중에서도 〈시사IN〉은 먼저 대선주자와 미디어에 주목했다. 누가 뭐래도 대선은 우리 의 생활을 좌우할 최대 이슈이며, 미디어는 이를 중계할 핵심 도구이다.

비록 정치에 대한 염증,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긴 하지만 그럴수록 옥석을 가리는 일은 중요하다. 기본이 무너진 시대, 그나마 대중은 누구를 신뢰하며 희망을 의탁하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 선거 정국이 카운트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남은 시간은 90일 남짓. 여론조사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50% 안팎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여권의 상황은 아직 혼미하다. 대선 날짜는 성큼 다가오는데 모든 것이 오리무중인 기현상은 역대 대선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다. 한쪽의 고공 비행과 상대편의 지리멸렬이라는 이상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대선 판세를 요동칠 새로운 그래프가 그려질 수는 있을까.

〈시사IN〉은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숨가쁘게 굴러가는 대선 국면을 일반적 지지율 조사와는 다른 척도로 들여다봤다. 누구를 지지하느냐 대신 ‘누구에게 당신을 맡길 수 있겠느냐’를 물었다. 심리학자들은 결정적 순간에는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을 찾는 것이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말한다. 일상 상황에서야 ‘능력’이 선택의 기준일 수 있지만, 결정적 상황에서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대선 주자들에 대한 신뢰 지수를 점검해봤다.

이번 조사 결과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올해 대통령 선거는 이명박 대 이명박의 싸움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대선주자별 조사에서 가장 신뢰받는 이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다. 국민 34.9%가 그렇게 응답했다. 중복 응답까지 합치면 신뢰도는 48.5%까지 올라간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불신하는 대선주자 순위에서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14.2%)가 1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이 후보 홀로 신뢰와 불신을 독점하는 모양새다. 그만큼 기대와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다른 대선주자들은 아직 국민의 안중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명박 후보 신뢰도, 단단하지 않아”

 

이명박 후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그가 현실에서 뭔가를 이룬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밑바닥 샐러리맨에서 출발해 대기업 CEO까지 지냈다. 그는 우리 세대 봉급생활자들의 우상이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는 청계천을 복원했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끝난다는 정치의 속설을 뒤집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정치력이나 조직력이 아니라 기업인과 서울시장으로서의 업무 수행 능력을 바탕으로 경선에서 승리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는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가 된 것에 대해 “정치인과의 싸움에서 기업인이 이긴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인 이명박’의 신뢰도는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이 정혜신씨의 진단이다.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에 대한 관심이 신뢰로 이어지고 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이 후보 곁에 머무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신뢰는 ‘그 사람은 사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이 후보는 경선 과정을 통해 사익을 추구했다는 증거가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신뢰를 흔들 만한 결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위태로워질 수 있다”라고 정씨는 말했다.

 

ⓒ뉴시스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가장 신뢰하는 대선주자와 가장 불신하는 대선주자로 꼽혔다.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씨와 다르면서 비슷하다. “이번 대선은 여야의 싸움이 아니라 이명박 대 이명박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자신을 향한 공세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수성할 수 있느냐에 따라 대선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박씨가 볼 때 이명박의 위기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는 경선 승리 이후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당 지지율과 후보 지지율이 엇비슷하다. 이럴 때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의해 후보 지지율이 당 지지율보다 밑도는 순간이 온다면 박근혜 지지층 일부가 이탈할 수 있다.”

박근혜, 신뢰도 조사의 ‘최대 수혜자’

정치 분석가들은 이 후보 지지층의 결집력이 강하지 않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이명박 후보는 ‘명빠’(이명박 열렬 지지층) 만들기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할지 모른다. 정혜신씨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끌린다. 이명박 후보가 취약한 점이 이것이다. 기능적·상대적 신뢰는 있되, 개인적·절대적 신뢰가 없는 것이 이 후보의 최대 약점이다”라고 말했다. 박성민씨는 “이 후보가 ‘일 좀 잘할 것 같다’ 수준에서 벗어나 확실한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느냐가 대선 승패를 가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신뢰 못지않게 불신이 높다는 점과 ‘박빠’(박근혜 골수 지지층)의 건재야말로 연말 대선 때까지 박근혜 변수가 살아 있을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번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그런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 2위(23.2%)에 꼽혔다. 중복 응답을 합치면 국민의 39.0%가 그녀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고 승복을 다짐했음에도 국민의 관심은 크게 줄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신뢰와 불신을 함께 받고 있는 데 비해 박근혜 전 대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응답한 국민은 3.1%밖에 안 된다. 정혜신씨는 “박근혜 전 대표를 신뢰하는 것은 그녀의 철학적 방향성이라기보다는 심리적 정향에 대한 신뢰라고 본다”라고 말했지만, 수치상으로만 볼 때 이번 신뢰도 조사의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통합신당 대선주자 신뢰도, 모두 한 자릿수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 두 사람과 비교하면 때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아주 낮다. 손학규·정동영·이해찬·유시민·한명숙 후보 순서로 신뢰를 얻고 있지만 아무도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순위는 이들의 컷오프 통과 순위와 같다. 일반 여론조사 지지율과도 비슷하다. 아직은 경선 초반이어서 각 주자들의 장단점이 충분히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들 다섯 주자 중에서 이해찬·유시민·정동영 후보는 신뢰도에 비해 불신도가 훨씬 높았다.

이번 여론조사는 미디어리서치가 8월 말 실시한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15위권 안에 든 정치인 가운데 대통합민주신당의 컷오프 경선에서 탈락한 추미애 전 의원과 천정배·신기남 의원을 뺀 12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당내 경선에서 졌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 영향력이 여전하고, 경우에 따라서 대선 정국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심상정 의원은 민주노동당 경선에서 결선 투표까지 진출하는 등 저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8월 말 현재 지지율이 15권 밖이었던 탓에 불가피하게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기자명 안철흥 기자 다른기사 보기 ah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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