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법치(法治)를 말한다. 심지어 드라마 속의 ‘빵꾸똥꾸’까지 단호하다. “힘 있는 사람, 공직자가 먼저 법을 지켜야만 국민의 법질서 인식을 바꿀 수 있다.” “법치를 바로 세워 일류 국가로 가는 기반을 다질 것이다.”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은 법치다.” 촛불집회 이후 법치는 이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검찰은 2009년을 ‘선진 법질서 기반 구축의 해’로 정하고 적극 나섰다. 특히 노동조합·시민단체 등의 단체 행동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웠다. 경찰은 각종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용산 철거민 농성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강경 진압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법치도 삼성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1일자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특별 사면했다. 단 한사람을 위한 사면이었다. 국경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연말 사면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전 회장은 두 번째 사면이었다. 경제인의 단독 사면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삼성 주변에서는 사면에서 이학수·김인주·최광해 등 가신그룹이 제외된 것에 대해 뒷말이 많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사면에서 제외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 자택에서 도청기가 나왔는데 이 회장 쪽에서 이학수 부회장 쪽을 의심하는 눈치였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적 관점에서 사면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법무부 최규일 검찰국장은 “법과 원칙의 문제 때문에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냐는 식으로 굉장히 중요한 국익에 관한 고려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국 교수(서울대·법학)는 “나쁘지만 돈만 벌면 된다는 사면은 법치주의에서 말이 되지 않는다. 사소한 법률 위반에는 엄벌하면서 횡령·조세포탈·비자금 은닉 등 중죄를 저지른 사람을 4개월 만에 사면하는 법치를 누가 믿겠는가”라고 말했다. 조국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약자와 서민을 통제하고 징벌하는 것을 법치로 오인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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