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3반 최윤민 학생의 첫째 언니 최윤아씨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시사IN 신선영
2학년 3반 최윤민 학생의 첫째 언니 최윤아씨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시사IN 신선영

최윤아씨(33)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공개 활동을 하던 희생자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큰 언니’ 노릇을 했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어린 형제자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 대신 목소리를 냈다. 세월호 관련 집회와 인터뷰, 간담회, 북콘서트, 도보 행진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가 체감한 10년은 국가의 대응이 아닌 피해자의 대응이 바뀐 시간이었다. ‘참사를 통해 어른들의 밑바닥을 봤다’라고 말하던 그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저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어요. 참사 이후에 바로 회사를 그만두진 않았어요. 퇴근하고 간담회에 참석하거나, 주말마다 부모님을 따라 진상규명 활동을 했어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몸이 아팠어요. 갑자기 울음이 터져 화장실에서 많이 울기도 했죠. 유가족이 경찰과 충돌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계속 찾아보기도 했고요. 엄마는 제가 세월호 문제에 깊이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저는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을 위해서 이 활동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죠.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2014년 12월에 사직서를 냈어요. 일을 그만둔 후로 더 열심히 활동했어요.

저희끼리 통하는 슬픔이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형제자매라면 모두가 들었을 거예요. ‘네가 잘해야 한다’ ‘부모님을 잘 챙겨야 한다’ ‘이제는 네가 첫째다 또는 막내다’ 같은 말이죠. 어른들의 말이 상처가 됐어요. 윤민이는 여전히 우리 집 막내인데, 죽었다고 존재 자체를 없애려 하는 느낌인 거예요. 저희도 분명히 아프고 슬픈데 다른 슬픔에 가려지는 분위기였죠. 저보다 어린 친구들은 그런 감정을 표현하기 힘든 환경이었어요. 이 이야기도 사람들이 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획한 이유예요. 형제자매 52명을 만나서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스케치북에 적게 했어요. 그걸로 영상도 만들고 광화문광장에서 퍼포먼스도 했어요.

참사 이후에 부모님께서 ‘내가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은 게 너무 후회된다’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이태원 참사도 터지고 말았고, 10년이 지났지만 뭐가 바뀌었나요? 대한민국은 있는 애들도 못 지키는 나라인데,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세월호 참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전부터 아이가 없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결혼을 했죠. 두려움도 있었지만, 참사의 영향 때문에 제가 그리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희는 외동아이를 잃은 다른 부모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목격했잖아요. 그 때문인지 저는 아이를 낳으면 두 명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모전시회에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참여했던 최윤아씨가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2020년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모전시회에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참여했던 최윤아씨가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기자명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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