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를 둔 양승미씨(52)는 2014년 여름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리본을 만들었다. 한때 피켓을 들고, 특별법 서명도 도왔다. 현재 매주 목요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서 안양지역 사람들과 노란리본을 만들며 공간에 온기를 채워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첫째가 열아홉 살이었어요. 첫 일주일 정도는 밖을 못 나갔어요. 말 그대로 세상이 정말 무서웠죠. 우리 아이들은 웃고 있는데, 한쪽은 울고 있으니까, 감정 조절이 힘들었죠.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걸 세상 엄마들을 다 알아요. 일주일쯤 지났나, 문득 세월호 엄마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싶더라고요.
2014년 5월께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당시 학생이던 용혜인 의원이 주도한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에 참여했어요. 혹시 누가 알아볼까 봐 제일 뒤에서 조용히 걸었죠.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광화문광장에서 노란리본을 만드는 데 손을 보태달라는 소식을 SNS로 접했어요. 그해 8월부터 광화문에 나가 노란리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안양에서 광화문까지 일주일에 한 번 가던 게 횟수가 점점 늘어 그해 가을부터는 매일 갔어요. 내가 시민들과 유가족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가 정치적 공격을 받던 시기에 광화문에 모이던 시민들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죠. 아침저녁으로 공방 문을 여닫는 게 심적으로 어려웠지만, 끝까지 저를 믿었어요. 정치는 모르겠지만, 유가족을 돕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제 주위에 여전히 많더라고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미국과 캐나다에서 행사가 열린다고 하면 해외로 노란리본을 보내드리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돈 받고 하느냐고 오해도 많이 받았죠. ‘우리 집 반찬값으로 한다’고 말했죠. 당시 정부기관 사람이 찾아오는 악몽을 꾸기도 했어요. 제가 이런 일을 한다고 얘기해본 적은 별로 없어요. 저 같은 주부가 활동해서 누군가의 눈에 띈다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겠다. 그러면 진상규명을 앞당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그게 시민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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