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시사IN 조남진

하마스는 무장 정파일까, 테러단체일까.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얽히고설킨 악순환’이라고만 불러도 될까. 이것은 전쟁인가, 집단 학살인가. 2023년 10월7일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다루는 국제 보도를 둘러싼 질문이 쌓였다.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뎡야핑 씨(활동명·왼쪽)에게 지난 100여 일은 바뀌지 않는 현실에 분노했던 순간들이 빼곡하다. ‘아기 참수’ ‘하마스의 이스라엘인 강간’ 같은 허위 정보가 횡행했다. “직접 취재가 힘들다면 외신을 인용할 수 있다. 문제는 전 세계 권위 있는 언론들이 절대 중립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구 언론은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를 적극 퍼트렸고, 국내 언론은 이를 받아쓰는 데 머물렀다. 정정보도는 실종되었다.

활동명을 쓰는 것은 입국 문제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 가려면 이스라엘을 꼭 거쳐야 한다.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로도 일하는 뎡야핑 씨는 안식월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찾고 있다. 2004년 반전 평화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꼭 현지에 가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2012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가 레일라 칼리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접하고 활동을 시작한 새라 씨(활동명·오른쪽)도 마찬가지다. 출발을 주저하던 그에게 한 팔레스타인인이 격려해주었다. “일단 가서 봐라.” 우리의 싸움을 세계에 알려달라던 이들의 절박함을 만나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특별한 사명감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저 조금 더 깊이 연결되었고 순간마다 용기를 냈을 뿐이다.

지난해 4월 팔레스타인을 찾았을 땐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이스라엘 군의 위협이 도사리는 초등학생의 등굣길을 동행하고, 올리브 수확도 도왔다. 유대인 정착촌 안에서 농부들이 종종 폭력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점령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도시였는데 완전히 바뀌어 있더라. 테러범을 잡는다는 미명하에 민간인이 계속 죽고 있었다. 길거리 사람들 눈빛부터 달라져 있었다.” 스스로를 ‘희생의 세대’라 부르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무장투쟁 조직들이 늘어나고 있었다고 뎡야핑 활동가는 기억했다. 그리고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이스라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첫 일주일 동안 퍼부은 폭탄이 6000t이라고 한다. 1년 동안 미국이 아프간에 쏟아부은 폭탄보다 많다. 이것이 학살이 아니면 무엇인가?”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자는 금세기 벌어진 전쟁 중 전례없는 규모로 치닫고 있다.

그때부터 뎡야핑, 새라 활동가의 일상은 더없이 바빠졌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 1인 시위부터 집회 참가까지,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는 가자지구의 실상을 알리는 선두에 섰다. 한국 정부의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도 그중 하나다.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닌 비극이다. “인종청소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가 76년간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국제사회에서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립된 팔레스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조그마한 나라 한국에서조차.” 새라 활동가의 말이다. 가자지구는 통신이 끊어졌으나 서안지구에선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활동이 현지에 전해지고 있다. 그 덕분인지 함께하겠다는 국내 시민사회단체도 늘고 있다. 더 많은 목소리를 기다린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목소리를 낸다면 분명 연결될 것이기에.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