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경제학 퇴치 가이드

현동균 지음, 진인진 펴냄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공멸의 길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내 주류 경제학계의 비웃음을 받았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까지도 ‘흑역사’로 여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는가? 서방국가의 저명 경제학자와 언론들은 ‘아베노믹스 때문에 일본 경제는 돌이킬 수 없게 망할 것’이라고 10년째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나라 경제는 의외로 멀쩡하다. 혹시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최근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기준(주류 경제학들)’이 멀쩡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 책은 ‘포스트 케인스주의’라는 낯선 경제학 이론을 설명한다. 주류 경제학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화폐·자본·소득 같은 기초 개념과 대안 정책을 서술해준다. 기존 ‘포스트 케인스주의’ 관련 서적들은 까다로운 데 비해 이 책은 쉽고 친절하다.

삶은 몸 안에 있다

조너선 라이스먼 지음, 홍한결 옮김, 김영사 펴냄

“의사의 일은 언뜻 순전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를 대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행위이다.”

목구멍, 심장, 대변, 생식기, 간, 솔방울샘, 뇌, 피부, 소변, 지방, 폐, 눈, 점액, 손발가락, 혈액. 이 책을 구성하는 각 챕터의 이름이다. 저자는 의사이자 탐험가다. 미국 뉴저지의 대학병원에서 시베리아 캄차카반도, 히말라야 고지대의 진료소까지 지구촌 곳곳을 배경으로 인체와 거기에 얽힌 환자들의 삶, 의사라는 직업의 하루하루를 풀어낸다. 식도와 기도가 지나는 목구멍은 알고 보면 평생 동안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기관이다. 의대생 시절, 이 구조가 우스꽝스럽게만 여겨졌지만 고령의 환자들이 생을 마감하는 방식을 접하면서 목구멍의 설계에도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몸을 구성하는 장기의 복잡다단한 구조 못지않게 기기묘묘하고 독창적이며 흥미로운 책이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

이나래 외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빨간소금 펴냄

“산업재해는 사회가 노동하는 몸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사회가 먼저 기억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여성보다는 남성의 얼굴이 더 많다. 여성의 노동은 과소 대표되고, 그에 따라 노동하는 여성의 몸에 생기는 문제도 산업재해라는 사회적 접근보다 개인의 약함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골격계 질환이 산재로 인식되기까지는 당사자들의 적극적 증언과 투쟁의 과정이 있었다. 활동가·전문가 6명이 19명의 여성 노동자, 장애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산재 피해자 가족 등을 만났다.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다.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함세웅 평전

김삼웅 지음, 소동 펴냄

“종교 단체가 ‘정의’라는 명칭을 쓰게 된 것은 한국 종교사상 최초의 일이다.”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서, 영화 〈1987〉을 보며 궁금했다. 은폐될 뻔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어떤 곳인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기꺼이 6월 항쟁의 마중물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알고 싶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만든 함세웅 신부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생생히 들춰낸다. 사제이자 동시에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함세웅을 통해 ‘종교’와 ‘정의’가 어떻게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김엘리 외 지음,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기획, 서해문집 펴냄

“이 책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군대의 존재를 ‘퀴어’하게 만든다.”

군대에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군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군대에 대한 의심과 비판은 ‘군대는 다녀왔냐’는 쉬운 질문으로 가로막히고 만다. 전쟁과 군사주의는 한국 사회를 건드리는 뜨거운 주제임에도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다. 군대의 군사 안보가 진정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가? 군대가 오히려 시민을 불안하게 하면 어떻게 하나? 군대를 ‘자연스러운 국가 장치’로 바라본 사회학 연구자와 인권 활동가 등이 여성 징병제부터 군형법 추행죄, 병역거부 논란, 인공지능 무기까지 뜨거운 쟁점을 폭넓게 다룬다. 더 나은 논쟁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근대 용어의 탄생

윤혜준 지음, 교유서가 펴냄

“우리가 자주 쓰는 용어들은 어디에서 출발하였는가?”

민주주의는 왜 민주주의이고, 진보는 왜 진보인가. 혁명과 대학, 경쟁이란 단어는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공통점이 있다면 근대 용어라는 점이다. 영국이 근대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하던 18세기, 당시 만들어진 단어가 여전히 우리 일상과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이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수집한 근대 용어의 계보를 심도 있게 담았다. 외래어의 연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근대 역사의 순간들을 만난다. 저자의 말처럼, 이 말들의 내력을 아는 것은 현재 우리 삶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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