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른보다 어린이가 재앙에 휩쓸릴 때 더 큰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 종(種) 차원의 무의식적 생존 전략이라고 한다. 어린 개체를 보호해야 해당 종(種)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개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에서도 어린 개체에 대한 감시와 보호가 관찰된다.

그러나 정치, 그리고 ‘정치의 연장’인 전쟁에선 이 같은 인류의 생존 전략마저 쓰레기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영국 BBC 방송에서 ‘가짜뉴스와 소셜 미디어’ 관련 기사를 쓰는 마리안나 스프링 기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어린 희생자들에 대한 소셜 미디어 담론에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죽음

스프링 기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어느 순간부터 어린 소년들의 얼굴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자주 게시되는 것을 발견했다. 소셜 미디어에선, 소년들의 운명에 대한 상반된 이야기들이 퍼져 있었다. ‘기본적 팩트’는, 각각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사람인 두 소년이 상대방 민족에게 살해당했다는 것. 그러나 ‘살해 사실 자체가 가짜뉴스’라거나 심지어 ‘그런 소년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대안적 팩트’들이 무분별하게 제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마르(팔레스타인)와 오메르(이스라엘)는, 가자지구를 둘러싼 철조망을 경계로 23km 떨어진 지역에 살았다. 구글 지도를 활용하여 작성한 이미지.
오마르(팔레스타인)와 오메르(이스라엘)는, 가자지구를 둘러싼 철조망을 경계로 23km 떨어진 지역에 살았다. 구글 지도를 활용하여 작성한 이미지.

살해당한 것으로 주장되는 소년 중 한 명의 이름은 오마르 빌랄 알-반나(Omar Bilal al-Banna)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가자지구의 북쪽에 있는 자이툰에 살았다. 다른 소년의 이름은 이스라엘인인 오메르 시만-토브(Omer Siman-Tov). 오메르는 가자지구를 에워싼 철조망(전쟁 이전부터, 이스라엘 측이 가자를 봉쇄하기 위해 설치해 둔)의 동쪽 이스라엘 영토인 ‘닐 오즈’에 거주했다. 두 소년의 집은 철조망을 경계로 23km 정도 떨어져 있다. 둘 다 4세였다.

“팔레스타인 소년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

스프링 기자가 팔레스타인 어린이 ‘오마르의 죽음’이란 이슈를 처음 알게 된 통로는 X(옛 트위터)였다. X의 친(親)이스라엘 성향의 계정이 올린 이 게시물은 ‘회색 셔츠를 입은 남성이 흰 천으로 싼 어린이의 시신을 안고 있는’ 동영상을 공유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하마스가 필사적으로 나오네! 사망한 팔레스타인 아이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올렸어. 그러나 잠깐만 기다려! 그건 진짜 아이가 아니라 인형이야.”

스프링 기자가 BBC에 관련 기사를 출고한 10월26일 현재 이 게시물은 380만번 조회되었다. 이 친(親)이스라엘 성향의 계정은 새로운 게시물로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동영상에서 갈무리한 아이의 얼굴 이미지에 붉은색으로 동그라미를 치면서 이렇게 썼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실수로 인형 동영상을 올려버린 거지.”

이후 X의 친이스라엘이나 반(反)하마스 계정들이 같은 주장을 반복해서 업로드한다. 심지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의 공식 계정들까지 같은 내용의 게시물들을 올렸다.

기자의 팩트 확인에 분노한 이스라엘 대사관

그러나 스프링 기자의 눈엔 동영상에 나온 형체는 인형이 아니라 어린이인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 원본 동영상이 팔레스타인 사진작가 모아멘 엘 할라비(Moamen El Halabi)에 의해 현장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선 할라비 작가 이외에도 AFP(프랑스 통신사) 소속 모하메드 아베드(Mohammed Abed) 기자가 취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소년의 주검을 촬영한 시각과 장소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5일째 계속되고 있던 10월12일, 가자지구의 알-시파 병원 영안실 앞이었다.

10월29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한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이날까지 이스라엘인 14000여 명과 팔레스타인인 7600여 명이 사망했다. ⓒAFP PHOTO
10월29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한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이날까지 이스라엘인 14000여 명과 팔레스타인인 7600여 명이 사망했다. ⓒAFP PHOTO

스프링 기자는 소년의 모친에게도 사실을 확인했다. 소년은 숨질 당시 형과 함께 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주변 민가에 쏟아졌고, 그 잔해가 소년을 덮쳤다. 소년의 형도 다리에 부상을 당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의 4세 소년 오마르 빌랄 알-반나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살해당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확인되었다.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측은, 이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는 BBC에게 “허위 정보 사례를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하면서도 BBC가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며 오히려 화를 냈다.

“이스라엘 소년은 ‘위기 전문 배우’”

이스라엘의 4세 소년 오메르 시만-토브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한 지난 10월7일 당일 숨졌다. 하마스는 오메르의 부모를 사살했다. 오메르와 그의 두 누나는 집에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다. 가족이 모두 죽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X의 공식 계정에 오메르 가족의 생전 사진을 공유하며 이렇게 썼다.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한 가족을 몰살시켰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그들의 추억에 축복이 있기를.” 이 게시물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나프탈리 베넷 전 이스라엘 총리도 이 게시물을 공유했다.

스프링 기자는 게시물의 댓글을 읽다가 경악했다. 하마스를 지지하는 계정들은 하마스가 “어린이를 죽이지 않았”으며, 오메르는 “돈을 받는 배우”라고 썼다. 심지어 오메르와 누나들이 애당초 살해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정부의 게시물과 가족 사진은 “최고 수준에 이른 유대인 방식(Jewish)의 프로파간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어떤 유저는 ‘오메르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며 “거짓말 그만하라”고 일갈했다. 오메르와 누나들을 ‘위기 전문 배우’로 몰아치기도 했다.

그러나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살상했으며 그중 상당수가 어린이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동영상 포함)들이 이미 존재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오메르 가족’을 조작할 이유 자체가 없다. 더욱이 스프링 기자는 오메르 가족이 사망하기 직전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지인까지 찾아내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10월7일 하마스가 공격한 이스라엘 닐 오즈 지역에서 파괴된 민간인 주택의 잔해에 깨진 조각상들이 놓여 있다. ⓒAP Photo
지난 10월7일 하마스가 공격한 이스라엘 닐 오즈 지역에서 파괴된 민간인 주택의 잔해에 깨진 조각상들이 놓여 있다. ⓒAP Photo

친(親)하마스 성향의 일부 계정들은 ‘오메르의 사망’을 팩트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팩트를 기반으로 ‘대안적 사실’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살인은 사실이지만 하마스의 소행은 아니다”라거나 “이스라엘 측이 살해하고 하마스의 짓으로 조작했다”라고 주장한다. ‘하마스는 어린이를 죽이지 않는다’는 철석같은 신념이 ‘팩트’와 충돌하면서, 그 부조화를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소행과 조작’이란 결론으로 내보인 것이다.

이와 관련, 스프링 기자는 자신의 기사(10월26일)에서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소년들의 죽음을 부정하는 방식은, 물리적 전쟁과 병행되는 정보 전쟁(information battle)의 실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며 “어린이에 대한 폭력을 경시하고 심지어 부정하는 뻔뻔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