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1일 부산시 연제구 DL이앤씨(옛 대림산업)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일용직으로 일하던 강보경씨(29)가 6층 높이에서 거실 창문을 교체하던 중 떨어져 사망했다. DL이앤씨는 올해 기준 시공능력 순위 6위(국토교통부 평가)인 대형 건설사다. ‘e-편한세상’ 브랜드 시공사로 잘 알려져 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강씨는 김해에서 나노공학으로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강씨는 아버지와 일찍 헤어지고 멍게 까는 일 등을 하며 자신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 이숙련씨(71)에게 저녁이면 매일 전화해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집에 올 때는 치아가 없어 음식을 잘 씹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부드러운 포도를 사오곤 했다. 해병대를 다녀온 뒤 장학금을 받고 틈틈이 급식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내년이면 취업할 예정이었다.

지난 8월11일 부산 연제구 DL이앤씨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고 강보경씨(29)의 어머니 이숙련씨(71·왼쪽)와 누나 강지선씨(33)가 10월10일 서울시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지난 8월11일 부산 연제구 DL이앤씨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고 강보경씨(29)의 어머니 이숙련씨(71·왼쪽)와 누나 강지선씨(33)가 10월10일 서울시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강씨는 부산 DL이앤씨 아파트 건설 현장에 사고 당일 처음 투입됐다가 사망했다. 이튿날 어머니 이씨와 누나 강지선씨(33), 건설 현장에서 형틀목수 일을 10년 한 외삼촌 이한진씨(64) 등이 부산 사고 현장을 찾았다. 유족에 따르면, 유족들이 아파트 6층의 사고 장소를 직접 보고 싶다고 했으나 현장 관리자가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막아서 들어가지 못했다. 안전교육을 이수했다고 했으나 경찰에 확인해보니 거짓말이었다. 안전모를 보여달라고 하자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파트 같은 층 옆 호 거실에는 ‘높이 2m 이상의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할 때 필수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보호구인 ‘안전대’의 고리를 걸 장치가 없었다.

아파트 6층은 약 20m 높이다. 그런데도 왜 안전대 고리를 걸 장치(앵커)를 설치하지 않았을까? DL이앤씨 관계자는 “이미 (벽지 등) 세대 마감이 끝나서 안에다 고리를 박을 순 없고, 외부 배관에 연결해야 했다”라고 말했다(해당 아파트는 시공이 90% 이상 진행된 상태였다). 하지만 외부 배관에도 안전대 고리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DL이앤씨는 “사실 저희가 창문 교체를 지시하지는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원청인 DL이앤씨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하청업체 KCC 일용직 강보경씨가 ‘임의’로 작업을 진행하다 추락사했다는 것이다.

원청 DL이앤씨, “창문 교체 지시 안 했다”

그러나 〈시사IN〉이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원청업체 DL이앤씨와 하청업체 KCC 직원 등 23명의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보면, DL이앤씨 관계자는 사고 전날인 8월10일 오전 9시6분 사진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동 60×호 거실 대창 유리 파손분인 거 같은데 마루 시공 내일쯤이면 내려오니 최대한 빨리 교체 좀 부탁드릴게요.” 사고가 난 가구의 거실 창문 교체를 지시한 것이다. 교체 작업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자, 다음 날인 8월11일 오전 7시43분 DL이앤씨 관계자는 “○동 60×호 거실입니다. 마루 시공 들어갑니다 치워주세요!”라고 말한다. 이로부터 약 2시간30분 뒤에 강씨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원청인 DL이앤씨 관계자는 “창문을 치워달라고 했지 교체를 해달라는 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하청업체 KCC 측은 “조사가 진행 중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치워달라’는 말이 ‘교체’를 뜻하지 않았다고 해서 원청업체의 책임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DL이앤씨 측은 전날 “최대한 빨리 교체”를 부탁했던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 유리창을 “치워주세요”라고 요구했다. 하청 입장에서 이는 ‘어제 부탁한 교체를 빨리 하라’는 지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저희도 관리감독에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현장에 수천 세대가 있어서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는 강보경씨의 외삼촌 이한진씨는 “(원청 관리자가) 그날그날 작업을 지시하며 위험 요소도 다 평가하게 되어 있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강보경씨 사망사고는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일곱 번째 사망사고다. 지난해 3월부터 만 2년이 안 되는 기간에 이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일곱 번의 사고로 모두 8명이 숨졌다(〈그림〉 참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일어난 기업이 DL이앤씨다. 그런데도 해당 기간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DL이앤씨 관계자는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노동부가 DL이앤씨 전국 시공현장을 ‘특별 근로감독’했지만 8월11일 다시 여덟 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강씨가 사망한 이후인 8월29일에야 근로감독관 50여 명을 투입해 DL이앤씨 본사와 현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마창민 DL이앤씨 대표가 10월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창민 DL이앤씨 대표가 10월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조치를 안 해 사람이 죽으면 1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한 법이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들이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 수사한다(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되면 해당 부분은 같은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아 경찰이 수사한다). 수사 종결, 기소 여부 판단은 검찰이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개선하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고, 정부·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보다는 ‘자율규제’에 방점을 두는 법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칙적으로 한 명이라도 사망했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의심되면 그에 맞는 수사와 후속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명이 특정 건설사 현장에서 집중적으로 사망하는데도 별다른 형사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례적인 수사 진행이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강씨 사망 이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너무 늦었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사망사고들을 보면, 강보경씨 사례처럼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정황들이 감지된다. 강보경씨 사망 여드레 전인 8월3일, 서울시 서초구 재건축 현장에서 지하층 철거 전 고인 물을 빼내는 양수 작업을 하던 DL이앤씨 하청업체 노동자가 실종됐다. 오후 4시가 넘어 CCTV로 노동자 동선을 확인했고, 그로부터 2시간여 지난 6시15분께 물에 빠진 노동자를 발견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며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국토교통부의 사고 관련 자료를 검토한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지하 양수 작업은 빠질 위험이 있어서 2인 1조로 작업해야 하는데, 피해자 발견까지 그렇게 오래 걸린 걸 보면 2인 1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 작업계획서조차 제대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전난간 설치 등 토사 붕괴를 막는 조치도 미흡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5일 사망사고도 비슷하다. 경기도 안양시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부어넣는 타설 작업을 진행하던 중, 콘크리트를 옮기는 차량인 펌프카에 연결된 붐대(작업대)가 부러졌다. 붐대 아래에서 작업하던 하청업체의 52세 노동자와 43세 노동자가 부러진 붐대에 맞아 사망했다. 강한수 위원장은 “펌프카 장비에 대한 비파괴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1차적 원인이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펌프카가 타설 작업 장소의 중간지점에 위치해야 붐대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드는데, 주위에서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펌프카가 충분히 가까이 가지 못한 듯하다. 현장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13일부터 DL이앤씨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7건의 원인은 부딪힘·끼임·깔림·추락 등이다. 숨진 노동자 8명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거나 일용직, 이주노동자였다.

8명이 죽는 동안 한 명도 기소 안 돼

강보경씨의 누나 강지선씨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사고 때라도 누군가 제대로 혼을 내주었다면 여섯 번째, 일곱 번째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가 재발방지 대책을 어떻게 세웠기에 또 사고가 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DL이앤씨 측 노무사는 초기에 ‘언론 발설 금지’ ‘탄원서 작성’ 등의 내용이 포함된 합의서를 사고 내용을 잘 모르는 친척에게 들이밀었다. 8월에 장례를 치른 후 두 달 동안 회사는 우리를 방치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사과 한마디를 듣기 위해 유족이 거리로 나서야 하더라. 더 이상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사고는 일어나지 않기를, 누군가의 아들이나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통영에 살던 강보경씨 어머니 이숙련씨와 누나 강지선씨는 지난 8월 말부터 서울에 임시 거주 중이다. 하루 세 번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10월4일에는 ‘DL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대책위는 DL그룹 이해욱 회장과 DL이앤씨 마창민 대표가 유족에게 공개 사과할 것, DL그룹과 DL이앤씨가 재해조사 내역과 재발방지 대책을 공개할 것,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사망사고 7건에 대한 수사 관련 상황을 밝히고 최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움직임을 멈출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10월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사고를 막을 책임을 갖고 있는 원청사로서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 피해자 유족에게 깊은 유감과 위로 말씀을 전해드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창호 교체 작업을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받았다”라고 말했다. 강씨의 어머니 이숙련씨는 “안전벨트 하나만 줬어도 살았을 텐데, 아파트 6층에서 신입에게 일을 시키면서 아무 안전장치도 안 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께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라도 해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DL이앤씨 하청업체 일용직으로 일하다 사망한 강보경씨(29)의 어머니 이숙련씨(71)가 서울시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DL이앤씨 하청업체 일용직으로 일하다 사망한 강보경씨(29)의 어머니 이숙련씨(71)가 서울시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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