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4~6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분기 성장률을 연 단위로 환산한 수치) 기준으로 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들의 예상치였던 2.9%의 두 배에 달하는 놀라운 수치다. 2020년 하반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초저금리'로 달성한 GDP 성장
높은 2분기 성장률의 가장 큰 요인은 초저금리로 인한 엔화 가치 하락, 이에 따른 수출 호조로 분석된다. 일본은행(일본의 중앙은행)은 다른 선진국들이 지난해 초부터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가운데서도 기준금리를 아주 낮은 수준인 –0.1%로 고수해왔다. 이로 인해 엔화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엔화 가치 역시 2000년대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예컨대 지난해 3월엔 1달러당 115엔 수준이었던 엔화 가치가 8월15일 현재 145엔 선까지 떨어졌다. 1달러로 115엔밖에 못 샀는데 지금은 145엔이나 살 수 있으니, 엔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그만큼 하락한 것이다.
통화 가치 하락은, 그 나라에서 해외로 수출하는 상품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일본산 제품을 더 저렴하게 많이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이 나라 수출업체들이 수익이 늘고 GDP 또한 상승한 것이다. 특히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수익이 지난 몇 달 동안 수출 증가로 크게 늘다. 일본의 지난 2분기 수출액 증가율은 3.2%에 달한다.
또 하나의 원인은 일본 정부가 지난 4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입국 규제를 해제하면서 크게 늘어난 관광객 수다. 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70% 이상을 회복했다. 최근 중국이 단체 여행 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일본 관광업은 더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 이전엔 일본 관광업의 수입 중 1/3 정도가 중국 관광객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일본 경제는 부활할까?
일본 경제는 지난 30여 년 동안 물가와 소비, GDP가 모두 제자리걸음을 하는 지독한 정체를 겪어 왔다. 이런 빈사(瀕死)의 경제 시스템에 새로운 활로가 뚫린 것일까?
그러나 일본의 모든 경제 지표들이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이 수출하는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반면 일본으로 수입되는 에너지, 원자재, 소비재 등의 가격은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해 초부터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격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투자를, 가계는 소비를 줄이면서 경기 회복세가 약화되었다.
특히 물가가 오르는 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아 지난 3월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직접 나서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의 임금 인상률(2022년 5월 대비)은, 199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높은, 1.8%로 나타났다. 청신호로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2022년 5월~2023년 5월) 동안 ‘핵심 소비자물가 상승률(가격 변동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소비재 물가로 측정한 인플레이션율)’은 1.8%(임금 인상률)보다 오히려 1.4%포인트 높은 3.2%로 나타났다.
파격적 통화정책으로도 달성 불가능한 목표?
이런 경향이 일본의 2분기에도 관철되었다. 일본의 수입액은 전분기(1분기) 대비 4.3%나 줄었으며, 민간 소비 역시 0.5% 감소했다.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이 오랜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단순한 수출 증가가 아니라 민간 지출 증가로 수요와 물가가 자연스럽게 오르고 이에 따라 임금이 상승해 다시 수요를 늘리는 선순환을 회복해야 한다. 전 세계가 ‘미친 것 아닐까’라며 손가락질했던 초저금리 정책 역시 이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일본은 인플레이션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높여 민간 지출을 늘릴 수 있을까? 파격적 통화정책과 정부의 임금 인상 권고만으로는 디플레이션 탈출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이 오히려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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