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완공을 목표로 인천 송도에 공사 중인 송도 세브란스병원 건설 현장. ⓒ시사IN 박미소

대학병원들이 앞다투어 수도권 지역에 분원을 설립하고 있다. ‘빅5’로 불리는 연세 세브란스병원이 인천 송도,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에 800병상 규모의 대형 병원을 짓는다.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과 인하대병원은 각각 서울 송파와 경기 김포로 진출한다. 고려대, 경희대, 아주대, 한양대 의료원도 경기도 곳곳에 분원을 낼 계획이다(〈그림〉 참조).

이들 9개 대학병원에서 추진 중인 분원 11개가 들어서면 2028년 이후 수도권에 최소 6600개 병상이 더 생긴다. 현재 서울·경기·인천에 있는 대형 병원의 병상 수는 3만여 개로 추정된다. 예정대로 분원이 설립된다면 불과 5~6년 사이에 기존 병상 대비 30%에 가까운 병상이 수도권 지역에 추가로 들어서는 것이다.

최신 설비를 갖추고 교수급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학병원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 그러나 곧 닥쳐올 수도권 대학병원들의 개원을 앞두고 의료계 한편에서는 의료 붕괴가 가속화할 거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폭풍 전야’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수도권에 새로 생기는 대학병원들이 환자는 물론 지방의 의료 인력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는 우려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수도권 병상 6600개 확대에 따라 의사는 약 3000명, 간호사는 약 8000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해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에서 매년 새로 충원하는 전문의 인력이 300~350명 선인 것에 비춰보면 실로 막대한 인력 수요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 인력을 어디에서 끌어가게 될지, 지역 의료계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한 교수는 “국립대병원 교수라고 하면 ‘다들 가고 싶어 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미 지역에서는 국립대 의대라도 교수 채용과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도권에 대학병원이 더 들어서면 인력 유출이 얼마나 심각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금도 경고등이 켜져 있는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을 급격히 악화시킬 거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대구·경북 소재 대학병원의 한 예방의학자는 “신경외과처럼 수술을 하는 과들은 집도의가 있으면 어시스트 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하고 여러 의료 인력이 팀워크를 맞춰야 한다. 지역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팀 구성이 안 되니 의욕적으로 수술을 하려는 교수들이 점점 더 서울·수도권 지역으로 집중된다”라고 지역의 사정을 전했다. 김윤 교수 역시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중증외상 등 24시간 운영이 필요한 응급환자 진료가 더욱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이는 예정된 미래에 가깝다. 의사 인력 공급은 고정된 상태에서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이 큰 규모로 신규 인력을 모집하면 어딘가에서는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고액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 구인난을 겪고 있는 지역 병원들은 더욱더 그 빈자리를 채우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걱정은 큰데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4월11일 구급차가 대구 지역의 한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4월11일 구급차가 대구 지역의 한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예상이 어려웠던 일도 아닌데 정부가 분원 설립에 제동을 걸 수는 없었을까? 기본적으로 병원급 의료기관 신규 개설 허가 권한은 중앙정부가 아닌 시·도지사가 가지고 있다. 지자체 단체장과 지역 정치인들 입장에서 대학병원 유치는 가시적 성과가 된다. 주민들도 병원 이용 측면에서나, 부동산 개발 측면에서나 이를 호재로 여긴다. 제도적으로 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용이한 환경이 조성돼온 것이다.

‘병상 총량제’를 도입해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전체적인 병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나왔다. 그 무렵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OECD 평균을 넘어섰다. 지금은 인구 1000명당 12.7개로 OECD 국가(평균4.3개) 중 가장 많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병상이 과잉 공급돼 있어 병상을 늘리기보다는 줄여야 하는 나라로 꼽힌다. 대학병원 분원 설립이 예정된 수도권 지역은 특히 평택과 파주, 남양주를 제외하면 3차 종합병원급 병상이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분원 설립 막차 탄 대학병원들

그러나 그간의 흐름에 견주어봐도 몇 년 사이에 수도권에 국한해 대형병원 11곳이 들어서는 현상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19년 의료법 개정이 그 발단이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 병상 수를 조절할 필요성이 커져감에 따라 병상이 과잉 공급돼 있는 지역의 경우 시도지사가 병원 신규 설립을 허가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의 동의를 얻도록 2019년 의료법이 개정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지금까지 법을 적용할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 바람에 병상 규제가 강화되기 전, 막차를 타듯 대학병원들이 수도권 분원을 확장할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학병원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온전하게 수혜가 돌아갈지도 미지수다. 의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 병원이 생긴다면 지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 서비스를 채울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불필요한 이용과 의료비 지출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재중 신천연합병원 원장은 “대학병원은 과별로 세분화된 진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포괄적인 케어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는데 이런 흐름과 잘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수도권 분원 설립이 예정된 대학병원들과 조율에 나섰지만, 개원 속도는 조절하더라도 설립 계획을 취소할 의사를 밝힌 병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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