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모습. ⓒ시사IN 신선영
대구 경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모습. ⓒ시사IN 신선영

지난 3월, 대구시에서 17세 학생이 4층 건물 높이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지점을 중심으로 5㎞ 인근에는 병원 응급실 7곳이 있었다. 신고를 받은 119 구급대는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22분 만에 최단거리에 있는 대구시 동구에 위치한 대구파티마병원(이하 파티마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했다. 그리고 약 2시간 뒤, 환자는 대구시 반대편인 달서구의 한 병원에서 심정지로 사망했다. 그 과정에서 구급차는 병원 응급실 4곳을 전전했다. 또 다른 4곳은 전화로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하지만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사건은 ‘구급차 뺑뺑이’ ‘응급실 표류’ 같은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병원을 찾아보기 힘든 지역도 아닌 대도시 한복판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대구는 흔히 3차 병원이라 부르는 상급종합병원이 5곳이나 있는 도시이다. 위급한 환자가 갈 곳을 찾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은 사실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점점 더 자주 목격된다.

〈시사IN〉은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이송 과정이 정리된 구급활동 일지를 입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관계자, 의료 현장 스태프, 응급의학 전문가들을 취재해 ‘그날의 사건’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응급실은 병원으로 입장하는 게이트이다.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병원 1층의 응급실뿐만 아니라 그 문을 통과한 이후 2·3층에 있는 각 전문 진료과의 의료진에게 적절한 처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즉 ①이송 ②응급실 ③수술·시술·입원까지 일련의 과정이 끊김 없이 이어져야 한다.

10대 응급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대구 시내를 떠돌던 2시간 동안 이송부터 최종 치료까지 가는 응급의료 사슬은 군데군데 막히고 허물어져 있었다. 그 빈틈 사이에서 응급실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대구북부소방서 대현119안전센터. ⓒ시사IN 신선영
대구북부소방서 대현119안전센터. ⓒ시사IN 신선영

① 이송

3월19일 일요일 오후 2시8분이었다. 대구북부소방서 대현119안전센터에 “‘도와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린다”라는 신고가 접수되었다(〈그림 1〉 참조). 구급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4분 뒤인 2시12분. 옆으로 누운 상태로 발견된 환자는 왼쪽 뒷머리가 부어 있고 오른쪽 발목에 통증을 호소했다. 당시 환자는 의식이 있었으며 간단한 대화 정도는 가능했다고 한다.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 바이털 사인(활력 징후)을 체크하고 기본 처치를 마친 구급대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인 파티마병원으로 향했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오후 2시34분 파티마병원에 도착했다. 파티마병원은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은 아니지만 대구 동쪽 권역에서 가장 규모 있는 종합병원(2차 병원)으로 병상수가 700개가량 되는 큰 병원이다. 소방 구급활동 일지에 따르면 파티마병원은 그 당시 정신과 진료가 불가해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수용 곤란 이유를 밝혔다. 3월30일 〈매일신문〉 보도에서 병원 관계자는 외상 치료와 정신과 진료가 병행돼야 하는 상태로 판단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권유했다는 취지로 당시 상황을 밝혔다.

구급차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파티마병원에서 약 3㎞ 떨어져 있는 경북대병원 응급실. 경북대병원은 대구·경북 지역의 거점이 되는 상급종합병원이다. 전국에 진료권별로 17곳 지정돼 있는 권역외상센터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이 환자처럼 낙상이나 교통사고로 골절, 출혈 등 중증 외상을 입은 환자에게 신속한 치료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도입된 시설이다. 그러나 일요일 오후 경북대병원 응급실과 권역외상센터는 거의 ‘풀 베드(full bed)’에 가까웠다고 한다. 게다가 그 시각 산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응급환자가 경남 밀양 인근에서 닥터 헬기를 타고 경북대병원으로 오고 있었다. ‘환자 포화 및 병상 부족’을 이유로 경북대병원 응급실 역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오후 3시5분부터 구급대는 경북대병원 주차장에서 환자를 태운 채로 대구 지역의 나머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한다. 계명대 동산병원은 ‘외상성 CPR 환자 처치 중(심폐소생술)으로 수용 불가’라고 사유를 밝혔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신경외과 진료 불가’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영남대병원은 ‘외상 환자 3명 대기 중’이라 응급실 접수가 어렵다고 했다.

4월11일 경북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 구급대원이 통화를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4월11일 경북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 구급대원이 통화를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대구 시내 상급종합병원에서 모두 ‘안 된다’는 통보를 받은 119 구급대는 이번에는 중소 규모 병원에 연락을 취한다. 환자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북대병원 인근의 A 병원에 도착한 건 3시39분이었다. 환자를 본 A 병원은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4시8분에 통화한 B 병원 응급실은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4시10분 달서구의 중소병원인 C 병원 응급실에서 ‘수용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119 구급대는 대구 동쪽에서 추락한 환자를 태우고 서쪽으로 구급차를 몰았다. 4시27분 구급차는 C 병원에 도착했지만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는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했다. 구급대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인 대구가톨릭대학병원으로 내달렸으나 환자는 결국 숨을 거뒀다.

이송 과정에서 119 구급차는 번번이 병원의 수용 곤란 통지 앞에 가로막혔고, 환자는 끝내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했다. 수도권 소재 병원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이런 상황이 심화된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급하면 구급에서 연락 안 하고 올 때도 많았고, 자리가 없으면 스트레처카(간이침대) 갖다 놓고 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는 열이 나면 일단 감염 의심 환자로 분류되니까 구급에서도 응급실에 확인을 하고 오는 쪽으로 방식이 굳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그 결과로 응급실에 연락이 왔을 때 병원 사정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받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과거보다 용이해진 측면이 있다.”

경북대병원 관계자는 “4층 건물에서 떨어진 환자라고 연락을 받았다면 응급실에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수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 직후 사고 내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파티마병원과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구급대로부터 환자가 약 2층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추정되며 상태는 경증이라고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송 과정에서 구급대가 환자의 상태를 오판했고 결과적으로 재빠른 조치를 어렵게 한 셈이다. 그렇다고 구급대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한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는 119 구급대에게 정확한 중증도 분류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이 아닌 구급대원이 환자 상태를 알기에는 한계가 있는 데다 응급환자의 상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현장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되어야겠지만 환자 중증도 판단은 응급실에서 하는 것이 맞다.” 대구 지역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병원에 왔을 때 적어도 CT(영상학적 검사)를 찍어봤어야 하지 않나 싶다. 처음에는 4층이 아니라 더 낮은 곳에서 떨어진 것으로 알았어도 추락 사고는 지연성 뇌출혈 같은 것이 생길 가능성을 늘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비난의 화살은 응급실에 돌아가야 할까?

대구파티마병원의 지역응급의료센터. ⓒ시사IN 신선영
대구파티마병원의 지역응급의료센터. ⓒ시사IN 신선영

② 응급실

보건복지부와 대구시는 이 사건을 공동조사 중이다. 경찰에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119 구급대가 환자를 태우고 첫 번째로 갔던 파티마병원이 현재로서는 곤란한 위치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의료진들은 파티마병원에서 환자 수용이 불가하다고 밝힌 사정(정신과 전문의 부재)이 골든타임이 중요한 응급환자를 받지 못할 절대적인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권역외상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북대병원도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대구 지역 의료계 인사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복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지역의 응급의료 현장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적절한 조치였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파티마병원과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정말로 계속해서 (환자가) 터져나가는 응급실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파티마병원은 대구에서 가장 많은 응급환자를 보는 곳이다. 대구응급의료협력추진단이 펴낸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파티마병원의 응급실 방문 환자 수는 5만7000여 명이다. 규모가 더 큰 상급종합병원들(경북대·영남대·계명대·대구가톨릭대)보다 더 많은 응급환자를 받았다. 두 번째는 경북대병원으로 5만2400여 명이었다.

민간병원이지만 나름 공익적 가치에 따라 응급환자를 열심히 본다는 것이 파티마병원에 대한 지역 의료계의 평판이다. 최근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진료를 중단해 이슈가 되었던 소아 응급환자의 야간·주말 진료도 파티마병원은 이어가고 있다. 앞의 전문가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조사 결과가 파티마(지역응급의료센터)나 경북대병원(권역응급의료센터)의 자격을 취소하는 조치로 귀결된다면 대구 응급의료체계는 거의 마비라고 봐야 한다.”

대구는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특히 심각한 지역이다. ⓒ시사IN 신선영
대구는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특히 심각한 지역이다. ⓒ시사IN 신선영

응급실 과밀화가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구 지역은 특히 아픈 기억이 있다. 2010년 11월 ‘4세 여아 장중첩 사건’이다. 이번 사건처럼 일요일에 생긴 응급환자였다. 복통 증세를 호소하던 환자는 경북대병원을 비롯해 응급실 5곳을 떠돌다 사망했다. 당시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유독 대구의 응급실이 붐비는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2012년 대구시 조사에 따르면, 응급실 과밀화지수의 전국 평균이 0.75인 반면 경북대병원은 1.82, 파티마병원 1.41, 대구가톨릭대병원 1.32, 영남대병원 1.09, 계명대 동산병원은 2.21이었다.

대구 지역 의대의 예방의학과 교수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로 대구가 이 일대의 중심도시이다 보니 경북 일대와 경남 일부 지역의 환자까지 대구의 병원으로 몰린다. 두 번째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인데, 대구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접근성이 너무 좋아서 그렇다.” 상급종합병원은 ‘1·2·3차 병원’으로 이루어진 의료 피라미드에서 꼭짓점에 있는 의료기관이다. 전국적으로 총 45개 상급종합병원이 있는데 그중 5개가 대구에 있다. 이런 이유로 대구시는 ‘메디시티(Medicity)’를 표방한다.

큰 병원이 많으면 그만큼 의료자원이 풍부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때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예방의학과 교수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 바람에 지역 의료전달체계에서 허리를 담당해야 하는 2차급 종합병원들이 거의 괴멸했다. 300병상 이상 되는 규모 있는 2차 병원들이 다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다시피 한 곳이 파티마병원이다.”

1·2·3차 의료 피라미드는 거칠게 분류하면 더 중한 환자를 진료하는 순서이다. 동네의원(1차)에서 비교적 가벼운 질환을 보고, 입원 병실을 갖춘 2차급 병원과 종합병원에서 규모에 맞게 경증·중등증 환자를 받고, 상급종합병원에서 난이도가 높은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사전적인 기능이다. 그런데 대구는 상급종합병원의 접근성이 좋다 보니 그리로 환자들이 몰리고, 그 결과 2차급 의료기관들이 문을 닫고, 다시 이런 2차 병원 응급실에서 봐야 하는 경증·중등증 환자들까지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 것이다.

대구 영남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입구. ⓒ시사IN 신선영
대구 영남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입구. ⓒ시사IN 신선영

2010년 4세 응급환자 사망 이후, 대구에서는 민관이 모여 대구응급의료협력추진단을 꾸렸다. 추진단은 고질적인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응급의료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했다. 중심병원과 협력병원의 연계를 강화해 환자가 몰리는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위급한 처치가 끝나면 주변의 중소병원으로 분산시키는 사업이다. 그러나 수년간 왜곡된 형태로 자리 잡은 의료 전달체계 위에서 2023년 3월 매우 유사한 성격의 사건이 또다시 되풀이되고 말았다. 사실 대형병원은 더욱 비대해지고 허리급 병원들은 고사 상태에 놓여 지역의 의료 생태계가 위태로워지는 현상은 한국 의료계 전체가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대구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났을 뿐이다.

이번 사건의 내용을 살펴본 수도권 소재 병원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아무리 바빠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현장을 아는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책임져야 할 환자가 이미 응급실에 잔뜩 있는데 ‘뒷단(응급실에 들어온 이후 관련 진료과와 연계)’이 풀리기 까다로워 보인다면 응급환자를 받아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아무래도 유보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뒷단이 풀리기 까다로운 환자’라는 말은 또 하나의 공백과 이어진다.

경북대병원 주차장에 서 있는 구급차들. ⓒ시사IN 신선영
경북대병원 주차장에 서 있는 구급차들. ⓒ시사IN 신선영

③ 수술·시술·입원

환자는 4층 건물 약 13m 높이에서 추락했다. 10m 이상에서 떨어진 사고면 외견상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중증 외상이라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의료진들은 일관되게 말했다. 부검 결과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이런 환자는 많은 경우 ‘다발성 외상 환자’로 분류된다. 신체 여기저기에 부상을 당했다는 뜻이다.

대구 지역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한 전문의는 “다발성 외상 환자들은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가 힘든 것이 현재 한국 의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4층에서 떨어졌다면 뇌출혈이 생길 수 있으니 일단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하고, 골절이라면 정형외과, 피부를 봉합할 성형외과, 충격으로 장출혈이 있다면 외과, 코나 귀까지 손상됐다면 이비인후과 전문의도 필요하다. 4~5개 과가 오케이를 해야 하는데 한 군데라도 전문의가 없으면 응급실에서는 ‘우리 병원은 안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이 벌어진 일요일 같은 경우는 당직이 없는 과가 대부분이다.”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가 배후 진료과로 원활하게 연계되어야 중증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가 배후 진료과로 원활하게 연계되어야 중증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

응급환자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과 시간에만 생기지 않는다. 응급실뿐만 아니라 최종 치료를 담당하는 배후 진료과가 24시간 돌아가는 병원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위급한 중증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오랜 기간 한국 대형병원들은 야간과 주말 진료를 각 과에서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전공의)들의 초장시간 노동으로 채워왔다. 2017년 ‘전공의특별법’에 따라 전공의 노동시간이 주 80시간으로 제한된 뒤 5년이 흘렀지만 한국 의료계는 이 공백을 메울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평일이었다면 이 환자를 살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받은 의료계 인사 그 누구도 ‘그랬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답하지 않았다. 당직 설 의사 이전에 환자의 생명과 연관된 수술을 하는 의사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 의료 사정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모든 병원이 기본적으로 예전처럼 수술을 충분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다발성 골절 환자, 외상 환자뿐만 아니라 뇌혈관, 대동맥 등 혈관에 좀 큰 문제가 생기거나 수지 절단(손가락 절단)돼 접합해야 하는 경우, 이런 수술을 하는 병원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수술하는 의사 풀 자체도 좁아지는데 그나마 있는 의료진마저 서울과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이 대구의 상황”이라고 이 전문가는 덧붙였다.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은 이중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각 응급실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온라인 종합상황판’을 운영한다. 수요일인 4월20일 오후 4시쯤 대구 지역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의 종합상황판을 확인했을 때 각 병원마다 적게는 3개, 많게는 5개까지 응급실에 와도 진료가 불가능한 과를 알리는 메시지가 달려 있었다(〈그림 2〉 참조).

〈그림 2〉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제공하는 응급실 온라인 종합상황판.
〈그림 2〉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제공하는 응급실 온라인 종합상황판.

소방청이 펴낸 ‘119 구급서비스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구급차가 응급실에 갔지만 환자를 받아주지 않아 재이송된 사례는 총 7634건이었다. 가장 빈번한 재이송 사유는 전문의 부재(31.4%)였다. 그다음으로 병상 부족(17.1%), 환자·보호자 변심(4.9%) 순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 분석에 따르면, 적정 시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하는 중증 응급환자는 2018년 14만1316명(47.2%)에서 2022년 14만6543명(52.1%)으로 5%포인트 증가했다.

응급실 현장과 응급의료체계에 두루 밝은 한 전문가는 “안타깝지만 어떤 해결책 하나를 도입해서 앞으로는 좋아질 거다, 긍정적인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답변”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10대 응급환자가 추락 이후 숨을 거두기까지 ①이송 ②응급실 ③수술·시술·입원 단계 단계마다 단시간에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중첩돼 있었다.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의료 인프라와 시스템도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지역의 응급의료를 구성하는 119 구급대와 응급실, 또 병원과 병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즉 호흡을 맞춰가는 일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2010년 4세 응급환자의 사망 이후 협력을 쌓아가려는 대구시 소방과 의료기관들의 노력도, 이번 사건으로 책임 소재 공방이 벌어지며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누구의 잘못일까? 꼬인 줄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질문만 자욱한 가운데 분명한 것은 17세 응급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거리를 헤매다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뿐이다.

4월11일 '골든타임'이라고 적힌 사설 구급차가 대구 시내를 달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4월11일 '골든타임'이라고 적힌 사설 구급차가 대구 시내를 달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기자명 대구/글 김연희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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