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3일 관광객과 인파로 북적이는 명동 거리. ⓒ시사IN 이명익
5월23일 관광객과 인파로 북적이는 명동 거리. ⓒ시사IN 이명익

팬데믹이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해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강제적 방역 조치인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도 6월1일부터 사라졌다. 앞서 5월5일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했다. 2020년 1월31일 최고 수준의 보건 위기 대응을 선언한 이후 3년4개월 만이다.

다만 코로나19가 끝난 건 아니다. 코로나19 감염자는 계속 발생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팬데믹의 결말은 ‘종식’이 아니라 토착화를 뜻하는 ‘엔데믹’이었다. 코로나19의 위험을 0으로 제거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심리적으로, (면역의 측면에서는) 신체적으로 그 위험에 대한 수용성이 커지며 우리는 일상을 되찾게 되었다.

이쯤에서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2~3년간 무수한 방역 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우리의 삶은 얽매여 있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 감염병 유행을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기초 접종률이 87%에 이를 만큼 코로나19 예방접종 참여도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부분이 코로나19에 걸렸다. 인구의 60%가량(3164만명)이 확진되었고 숨은 감염자를 고려하면 실제 코로나19 감염자의 비율은 더 올라간다(5월29일 기준). 그렇다면 방역은 왜 했고, 백신은 왜 맞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역도, 백신도 코로나19 팬데믹을 헤쳐 나가는 데에 분명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수단으로 꾀하고자 했던 목적과 실제 달성한 효과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이러한 의문 위에 정파적 공세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평가하는 데에 혼란을 더한다. 출범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의 방역을 ‘정치 방역’으로 규정하고 이와 대비되는 개념에서 ‘과학 방역’을 들고 나온 윤석열 대통령은 엔데믹을 선포하는 5월11일에도 “지난 정부가 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라고 비난의 날을 세웠다. 전 정부의 모든 사업을 부정하는 흐름에 편승해 백신 무용론도 힘을 얻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에 쏟아졌던 국제적인 관심과 상대적으로 적은 코로나19 사망자 수 등을 근거로 “K방역은 세계가 인정한 성공 모델이고 대한민국 의료진을 비롯한 모든 국민의 성취이자 자부심이다(박광온 원내대표)”라고 주장한다.

5월11일 코로나19 중대본 회의 뒤 보건의료진과 기념 촬영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연합뉴스
5월11일 코로나19 중대본 회의 뒤 보건의료진과 기념 촬영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연합뉴스

무엇이 진실일까?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성공했나, 실패했나? 그런데 그 이전에 팬데믹이라는 역사의 시간을 관통한 이후 한국 사회가 남겨야 할 유산이 단순히 ‘잘했다, 못했다, 몇 점이다’ 식의 성적표뿐일까?

〈시사IN〉은 유행 초기였던 2020년 상반기 ‘주간 코로나19’ 시리즈를 진행했다. 예방의학자인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장(당시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과 감염내과 전문의인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당시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이 고정 멤버로 참여했다. 2020년 3월16일 발행된 첫 번째 ‘주간 코로나19’ 기사의 제목은 “코로나19,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최선이다”였다(〈시사IN〉 제653호 참조). 이후로도 김명희 박사와 임승관 원장은 코로나19 유행은 “짧고 굵게” 끝낼 수 없고 긴 호흡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코로나19 연구와 보건·의료 대응 사업을 벌여왔다. 그 바탕에는 코로나19는 ‘국지적인 유행(에피데믹)’이 아니라 ‘팬데믹’이라는 이해가 깔려 있다. 당시에는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지난 3년 코로나19 유행이 전개된 과정은 김명희 박사와 임승관 원장이 내다봤던 시야와 상당 부분 겹친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돌아보기 위해 두 사람을 다시 찾은 이유이다.

종식 가능성 낮았던 코로나19의 자리

5월17일, 경기도 수원에서 만난 임승관 원장은 가로축이 전파력, 세로축이 치명률인 평면 위에 코로나19, 메르스, 사스, 1918 스페인 독감 등 각 감염병의 자리가 찍힌 좌표 그림을 꺼내들었다(〈그림 1〉 참조). 코로나19 유행 기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또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거론되었던 좌표이다. 임 원장은 “감염병 위기 교과서가 있다면 1막 1장 같은 그림이다. 결국은 이 좌표를 알고 그 좌표에 맞게 경기를 하는 것이 감염병 대응의 핵심 원리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신종 감염병 위기 대응은 철저히 역사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토대를 쌓는 분야이다. 일반적인 자연과학처럼 실험을 할 수도 없고, 철학처럼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이론을 얻어낼 수도 없다. 메르스면 메르스, 신종플루면 신종플루, 사스면 사스 각각의 감염병 좌표마다 그 특성에 부합하는 전략이 있다. 인류가 해당 감염병 유행을 겪을 때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 무엇이 합당했고 무엇이 오류였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충실하게 기록해야 하는 이유이다. 임 원장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21세기에 발생한 첫 번째 팬데믹을 겪는 인류로서 후세대를 위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처럼 남다른 전략을 썼던 나라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포괄해 대응 방식을 온전하게 돌아보고 기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좌표평면에서 코로나19의 자리는 어디일까? 신종 감염병이 공포스럽고, 대응이 극히 어려운 까닭은 이 질환의 특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변이가 거듭되며 특성이 바뀌기도 한다. 코로나19는 오리지널 타입(2020년) 출현 이후 크게 델타 변이(2021년), 오미크론 변이(2022년)가 우세종이 되며 치명률과 전파력에서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가 1차 유행을 겪었던 2020년 3~4월 이후에는 큰 틀에서 코로나19의 전반적인 특성이 파악되었다. ‘병독성 측면에서는 치명률이 10%에 달했던 사스만큼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다. 대신 감염자 한 명이 평균 몇 명을 더 감염시키는지를 나타내는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는 2~4명 정도로 전파력은 꽤 높은 축에 속한다.’ 〈그림 1〉의 보라색 동그라미 위치이다. 전파력과 치명률이 “아주 교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전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2020년 1월28일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서울역 뉴스 화면 앞을 지나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20년 1월28일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서울역 뉴스 화면 앞을 지나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김명희 박사는 임승관 원장과는 다른 경로로 팬데믹을 예감했다. 5월1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난 김명희 박사는 “‘설마 내 생애에 팬데믹이?’라고 처음엔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우리가 겪었고 뇌리에도 각인돼 있는 감염병 대유행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Pan)’ ‘사람(Demic)’이라는 그리스어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가 걸린다는 의미를 가진 팬데믹은 아니었다. 2002년 사스는 여러 나라에 유입되고 홍콩, 캐나다 등에는 비교적 큰 피해를 끼쳤지만 전 세계 감염자가 1만명을 넘지는 않았다. 2009년 신종플루는 세계보건기구에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지만 예상보다 위협적이지 않아 일각에서는 섣부른 경고였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5년 메르스는 한국 사회를 꽁꽁 얼어붙게 했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한 나라에 국한된 소규모 유행이었다.

김명희 박사는 “우리가 근래에서 참고할 수 있는 팬데믹은 1918 스페인 독감”이라고 말했다. “2019년 말, 2020년 초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하고 팬데믹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들이 나돌 때 설마 했다. 그런데 번져가는 속도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무증상 감염자가 호흡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거는 전파를 완전히 차단하기가 불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또 대구에서 1차 유행을 겪어보니 젊은 사람들은 걸려도 대부분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이게 팬데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 독감 때를 살펴보면 시작은 1917~1918년쯤이지만 몇 번씩 유행이 돌면서 1921년까지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더라. 짧게 끝나기는 어려워 보였다.”

신종 감염병이 출현했을 때 그 특성에 비추어 이것이 국지적 유행이 될지, 일부 나라에 퍼질지, 팬데믹으로 확대될지 여러 가능성을 상정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2020년 1월 시점에 2023년 5월 현재의 우리가 과거를 반추하듯 앞으로의 전개를 내다보는 건 불가능했다. 신종 감염병 대응은 불확실성이 매우 높고, 앞서 살펴봤듯 바이러스의 특성이 어떻게 바뀔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대응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번에 출현한 감염병이 어떤 유형에 가까우며 어떤 코스로 전개될지를 그려보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감염병에 맞서 사용하는 수단의 궁극적 지향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방역’이다. 메르스처럼 전파력이 낮고 특정 환경(병원 내)에서만 확산이 일어나는 바이러스라면 확진자를 찾아내서 추가 전파를 막는 식으로 감염병을 ‘종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전파를 완벽하게 틀어막을 수 없는 특성상 팬데믹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감염병이라면 방역의 목적은 종식이 아니라 ‘시간 벌기’가 된다.

〈그림 2〉는 인류가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정립해온 신종 감염병 ‘팬데믹’ 대응의 기본 원리이다. 빨간색 그래프는 방역 조치가 없을 때, 초록색 그래프는 방역 조치를 취했을 때 발생하는 감염 환자 수이다. 가운데 실선은 그 사회가 가진 의료 대응 역량을 나타낸다. 감염자의 총량을 뜻하는 그래프 아래의 면적은 동일하다. 그러나 빨간색 그래프처럼 감염 환자가 급격히 치솟아 의료 역량을 압도하면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팬데믹에서 방역의 역할은 바이러스 전파속도를 늦춰 유행 커브를 완만하게 누르고, 그사이에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료 대응 역량을 높여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면역을 획득한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신종 감염병과 인구집단의 면역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는 수준에 도달하면 팬데믹에서 벗어나 엔데믹(풍토병)으로 나아간다. 1918 스페인 독감처럼 백신이 없던 시절이라면 오로지 자연 감염으로만 여기에 도달할 수 있을 테고, 백신 개발 기술이 향상된 현대에 와서는 인공면역(백신)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개된 과정도 이 흐름 속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 코로나19 대응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K방역은 팬데믹 기본 대응을 ①방역 ②의료 역량 확충 ③집단면역으로 나누었을 때 ‘①방역’의 기능과 강도를 고도화한 전략이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된 방역 수단은 ‘개인위생’ ‘확진자 자가격리’ ‘구역 봉쇄’ 정도로 정리된다. 전파 차단의 효과 면에서 느슨하고 뭉뚝한 방식이다. 반면 한국은 대규모 진단검사로 확진자를 가려내고(Test), 추적조사로 접촉자를 샅샅이 찾아내어(Tracing), 확진자는 물론 밀접접촉자까지 물 샐 틈 없이 격리시키는(Isolation) 일명 TTI 전략을 구사했다. 엄청난 물량과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그만큼 강력한 전파 차단 효과를 발휘했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서울 강남구보건소에 설치되었던 선별진료소. ⓒ시사IN 신선영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서울 강남구보건소에 설치되었던 선별진료소. ⓒ시사IN 신선영

팬데믹 대응 전략이 아니었던 ‘K방역’

임승관 원장은 “K방역이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전략은 메르스라는 강렬한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대응 실패를 겪으며 한국의 방역 관료들과 감염병 전문가들은 절치부심했고, 신종 감염병 유입 시 빠르게 진단검사 역량을 늘리고 감염원을 찾아내 지역사회 확산을 차단하는 방식의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실제로 이러한 준비에 힘입어 한국은 2020년 2~3월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1차 유행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K방역에 전 세계적인 찬사가 쏟아지게 된 계기이다.

메르스의 경험을 기반으로 설계된 K방역은 엄밀히 말하면 팬데믹 대응 전략이 아니다. 〈그림 1〉을 보면 메르스 좌표와 코로나19 좌표 사이에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엔데믹으로 귀결되는 팬데믹 코스가 아니라 감염병이 ‘종식’되는 결말을 상정한다. 메르스는 한국인들에게 꽤 심각했던 감염병 위기로 체감되지만 코로나19의 스케일과 비교하면 극히 제한적인 유행이었다. 2015년 메르스 유행은 확진자 총 186명, 사망자 38명을 발생시키고 약 8개월 만에 종결되었다. 2023년 5월29일 기준 코로나19는 국내 확진자 약 3160만명, 사망자 약 3만4700명이다.

팬데믹을 상대로 국지적 유행에 알맞은 전술을 쓴 것은 잘못일까? 임승관 원장은 “그것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K방역은 감염원이 막 유입된 초반부에는 굉장히 효과적인 전략이다. TTI는 마당에 난 잡초를 하나하나 손으로 뽑는 일에 빗댈 수 있다. 몹시 고되지만 잡초가 몇 개 없을 때는 효과가 확실하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잡초는 뽑아도 결국은 번져나간다. 하지만 잡초를 제거하지 않는 집보다는 잡초가 마당을 뒤덮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만큼 코로나19의 위험을 수용하기 위해 의료나 사회 인프라를 개선하고 확충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코로나19 1차 유행 시기이던 2020년 3월11일 대구 서문시장. ⓒ시사IN 신선영
코로나19 1차 유행 시기이던 2020년 3월11일 대구 서문시장. ⓒ시사IN 신선영

임 원장이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은 그다음 단계다. “반면 잡초가 무성해지면 K방역의 효과는 제한되고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이 커진다. 어느 시기가 되면 팬데믹에 걸맞은 태세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메르스 당시의 강렬한 기억과 코로나19 유행 초기의 성공으로 인해 정부와 여러 전문가 사이에 K방역이 감염병 대응의 만능열쇠처럼 인식되었다. 이 수단으로 코로나19 역시 끝낼 수 있다고 봤던 것 같다. 위드 코로나다, 팬데믹이다, 말은 했지만 2022년 오미크론이 출현하기 전까지 사실상 한국 사회는 팬데믹이 아니라 ‘종식 담론’ 안에서 코로나19를 사유해왔다.” 그는 K방역이 우리가 얻게 된 훌륭한 유산이지만 그 목적과 사용 시기가 오도된 채 후대에 전승되는 것을 염려했다.

K방역은 한국식 코로나19 대응의 명암을 모두 내포한다. ‘명(明)’은 뚜렷하다. 보건·의료 위기에서 기본적인 지표라 할 수 있는 사망자 수를 놓고 보면 한국은 확연히 잘한 그룹에 속한다.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에서 한국은 약 670명으로 일본(602명), 싱가포르(305명) 같은 나라들과 함께 낮은 축에 있다(〈그림 3〉 참조). 앞으로 엄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시행된 고강도 방역이 감염자 커브를 완만하게 눌렀고 그 덕분에 의료적으로 더 많은 코로나19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제로 코로나(Zero-COVID)’를 목표로 삼았던 중국(85명)은 가장 극단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명암에서 ‘암(暗)’은 안개처럼 퍼져 있다. 1차, 2차, 3차, 4차 유행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유행 규모가 불어나며 2020년 초에 수립된 K방역과 현실의 간극은 점점 벌어졌다. 그 사이에서 미스매치로 인한 피해와 모순도 누적돼왔다.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감염자를 모조리 찾아내고, 밀접접촉자들을 추적해, 빈틈없이 격리시키는 TTI는 일일 확진자 수가 100명일 때는 성공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 500명이라면 보건소 직원들을 ‘갈아 넣어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1000명(10배), 2000명(20배), 1만명(100배), 10만명(1000배)으로 불어나면 제아무리 물량 공세를 늘리고, 인력을 보충한다 해도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유행 규모를 따라잡을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팬데믹 2년 차가 되도록 “2주만 더” 사회적 거리두기를 견디고, “짧고 굵게” 인내하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파했다. 백신이 도입된 뒤에는 ‘접종률 70%가 될 때까지’라는 목표가 정해졌지만 역시 단기간 참고 견디면 코로나19로부터 해방이 찾아올 거라는 ‘K방역 종식 서사’의 연장이었다. 그 과정에서 코로나19를 장기간 지속될 ‘팬데믹’으로 이해했다면 의당 물어야 하는 질문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보건소를 비롯해 일선의 방역 요원들은 언제까지 강도 높은 업무를 버틸 수 있을까?’ ‘학교와 보육시설 문을 오래 닫는 것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그동안 각 가정은 어떻게 자녀 돌봄을 해결하나?’ ‘영업이 중지되는 동안 자영업자들의 생계는 어떻게 보장하나?’ ‘외출도, 면회도 금지된 요양시설·장애인시설 입소자들의 삶은 어떠할까?’ ‘코로나19에 걸린 투석 환자, 임산부 등은 언제까지 별도 트랙으로 관리해야 하나?’

한국 ‘행정적 병상배정’ 이루어져

해외 코로나19 대응 사례를 비교 분석 중인 김명희 박사는 다른 나라 의료인들에게 한국 상황을 설명하다 보면 난감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의사를 인터뷰하는데 한국에서 동네 의원이 코로나19 환자를 대면 진료하기 시작한 건 2022년 2월부터였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더라.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하지만 외국에서 보면 한국의 의료 대응 역시 상당히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김명희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2020년 초 1차 유행 이후 대부분의 나라들은 기존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흡수하는 방향으로 코로나19 의료 대응을 해왔다. 반면 한국은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정하고, 중앙정부의 ‘병상 배정반’에서 코로나19 환자와 병상을 매칭해주는 별도 시스템을 구축했다. 보건소에서 확진자의 연령, 기저질환, 산소포화도, 현재 상태 같은 정보를 중수본 병상 배정반에 알리면 무증상·경증 감염자는 생활치료센터로 보내고 중등증 이상으로 분류되는 환자는 병상을 배정해 입원시꼈다.

이 역시 유행 규모가 작은 초기에는 비교적 원활히 돌아갔지만 확진자 수가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나는 3차 유행, 4차 유행을 지나며 기능부전이 심화되었다. 일정 규모 이상 환자가 늘어나면 병상배정반의 한정된 인력이 환자와 병상을 일일이 연결하는 시스템이 한계에 달하기 때문이다. 2021년 연말까지도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의 20%가 입원했는데 영국(2.78%), 독일(4.69%), 싱가포르(6.95%), 일본(13.8%)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한국에 유입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독 더 위험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한국은 코로나19 의료 대응에서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정하고, 중앙 정부의 ‘병상배정반’에서 병상을 매칭해주는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사IN 신선영
한국은 코로나19 의료 대응에서 ‘감염병 전담병원’을 지정하고, 중앙 정부의 ‘병상배정반’에서 병상을 매칭해주는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사IN 신선영

김명희 박사는 “한국 의료 대응의 특수성”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다른 나라처럼 기존 의료전달체계 위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본다면 의사가 진찰을 하고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을 가려낸다. 그러나 한국은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정보들로 병상배정반의 공보의들이 환자 중증도를 분류했다. 일종의 ‘행정적인 병상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사실상 별 위험이 없는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입원하게 됐다. 긍정적으로 보면 극도의 안전을 추구한 것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감염병 위기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의료 자원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 내내 한국 정부가 중심적으로 관리한 지표는 ‘코로나19 병상수’였다. 일단 환자가 발생하면 병상이든, 생활치료센터든 어딘가에 배정한 뒤 격리하면 지표상 성공적인 결과로 카운트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병상이 실제 필요한 환자에게 돌아갔는지, 입원한 코로나19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는지, 임종 시 존엄은 지켜졌는지, 의료의 질적인 측면은 평가 과제로 남겨져야 할 부분이다.

돌아보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방역, 의료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바이러스 앞에 높은 장벽을 쌓는 방식이었다. 이는 제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심리에도 공고히 자리 잡았다. 단적인 예를 들어 2021년의 어느 날, 외국처럼 우리도 코로나19 환자를 일반 병의원에서 진료하자고 했다면 그 병원은 다른 환자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교실에서 학생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지속했다면 그 학교는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이 장벽을 허물고 ‘위드 코로나’를 가능하게 했던 건 역설적으로 2022년 우세종이 된 ‘오미크론 변이’였다.

엔데믹을 불러온 ‘오미크론’

전파력이 압도적으로 높아졌지만 병독성은 약해져 감염 시 인명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되 인구집단의 면역 수준을 키우는 오미크론 변이의 유행은 인류 입장에서는 ‘쓰라린’ 행운이었다. 2021년 연말 오미크론이 출현할 무렵, 국제 보건·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점쳐졌던 이유이다(〈시사IN〉 제750호 ‘2022 오미크론 시나리오:성문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기사 참조). 이듬해 오미크론 변이가 지구를 휩쓸면서 실제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는 팬데믹을 지나 엔데믹의 영토에 발을 디뎠다.

오미크론 유입이 본격화되자 2022년 2월을 기점으로 한국 정부는 변화된 바이러스의 특성에 맞춰 고강도 방역을 빠르게 완화했다. 격리 기간이 14일에서 7일로 단축되고, 확진자 격리는 생활치료센터 등 시설 중심에서 재택 치료가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밀접접촉자 자가격리와 트레이싱은 종료되었다. 2022년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고,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이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2022년 4월28일, 방역 관계자 격려 오찬 간담회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이를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K방역은) 중증화율이 높았던 초기에는 코로나 확산 차단에 주력하여 매우 낮은 감염률을 유지했고,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의 확산 시기에는 위중증과 치명률을 낮추는 데 집중하여 국민의 희생과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했다는 점이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앞서 살펴본 코로나19 사망률이라는 객관적인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는 ‘온당한’ 평가이다. 그러나 ‘온전한’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다.

5차 유행이 닥쳤던 2022년 초, 일련의 급격한 방역지침 변경은 체계적 전환이라기보다는 오미크론 광풍에 휩쓸려온 것에 가깝다. 오미크론 변이가 이끈 2022년 이후 국내 코로나19 유행 규모를 보면 앞선 2년 동안 1~4차 유행 파도는 그래프에서 거의 식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그림 4〉 참조). 그러나 2022년 1월까지도 한국 정부는 ‘이번에도 한국은 다를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유행 상황을 전망했다. 한국처럼 유행을 낮은 수준으로 억제해 온 나라들에서 확진자 수가 80배까지 치솟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1월 방역 당국이 내다보는 5차 유행 최악의 시나리오가 하루 확진자 2만~3만명 정도였다. 신규 확진자 5000명 이상이면 오미크론 대비 단계, 7000명 이상이면 대응 단계로 전환한다는 당시의 계획은 1월 초 3000명대였던 확진자 수가 1월 말 1만명대로 급격히 불어나며 제대로 실행 한 번 해보지 못했다.

2022년 1월19일 출근길 시민들이 서울 지하철 사당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22년 1월19일 출근길 시민들이 서울 지하철 사당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년간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의 인식을 지배했던 ‘K방역’에서 벗어나 ‘위드 코로나’로 이행하는 과정은 당연히 매끄러울 수 없었다. 실제로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확진자가 20만명, 40만명으로 치솟자 중수본 병상배정 기능은 마비가 되었는데 여전히 일반 산부인과에서는 진료를 받지 않아 코로나19에 걸린 임신부들의 구급차, 보건소 출산이 이어졌다. 코로나19에 확진된 18개월 아기가 응급실의 ‘격리 병상’이 모두 찼다는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일도 벌어졌다. 짧은 시간에 사망자(최대 하루 470명)가 급증해 한동안 전국 화장장이 포화되고 장례식이 4일장, 5일장으로 길어지기도 했다.

여러 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오미크론 유행을 거치며 코로나19의 강을 건너왔다. 그러나 만약 오미크론처럼 전파력은 강해졌으나 병독성은 약해진 변이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어떤 식으로 출구전략을 찾았을까? 다른 나라는 팬데믹 국면에 맞춰 대응 방식과 위험 수용성을 조절해가는데 2022년에도 홀로 ‘제로 코로나’를 고집했던 중국처럼, K방역의 성채 안에 웅크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되짚을 때 남겨져야 하는 질문이다.

마지막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 남았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백신은 왜 맞은 걸까? 2023년 5월 시점에서 알맞은 답변은 ‘코로나19 감염 시 증상이 악화될 위험을 줄이고 입원이나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김명희 박사는 “어느 연구팀의 분석을 보더라도 백신을 맞은 그룹의 치명률이 낮다. 그건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3월11일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60대 이상에서 코로나19 2가 백신 추가접종 시 중증 예방 효과는 미접종자 대비 94.1%, 사망 예방 효과는 93.9%로 확인되었다. 의학 학술지 〈랜싯 감염병(Lancet Infectious Disease)〉은 2021년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시작된 이후 1년 동안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약 2000만명의 목숨을 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19 백신은 팬데믹에서 인류를 보호하는 데에 분명한 기여를 했다.

서울 송파구 체육문화회관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4월1일 75세 이상 고령자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공동취재
서울 송파구 체육문화회관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4월1일 75세 이상 고령자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공동취재

다만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고 예방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다는 초기의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2021년 백신 도입 시점에서 감염 예방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새로 출현한 변이에서도 효과가 유지되는지 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부풀었던 기대와 실제 효과가 차이를 보이며 ‘백신 무용론’이 싹트기 좋은 토양이 마련되었다. 인과관계와 선후관계를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부작용 보도 역시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 실제 한국의 백신 신뢰도는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큰 폭으로 하락했다. 유니세프가 발간한 ‘2023 세계 어린이 백신접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 90%대에 달했던 한국의 백신 신뢰도는 절반 가까이 추락했다. 이는 향후 한국의 공중보건정책을 위협하는 불씨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3년간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돌아본 이 기사는 ‘완성본’이 아니다. 팬데믹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경험을 반추해본 하나의 해석에 가깝다. 김명희 박사는 “정치 방역이냐, 과학 방역이냐 따위 헛된 이분법에서 벗어나 지적 겸손함과 성찰적인 자세로 우리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각 분야별로 검토를 시작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올림픽처럼 순위를 가리는 국제 경기였다면 한국은 자부심을 느끼고 그간 노고를 기리는 데에서 멈춰도 될 것이다. 그러나 대응의 우수성을 떠나 감염병 위기는 공동체에 아픔을 남기는 재난이었다. 충실하게 ‘팬데믹 기록’을 모으고 교훈을 도출하는 작업이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로 남아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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