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역사의 한 장을 살고 있다는 감각이 이처럼 또렷했던 시간이 또 있었을까. ‘코로나19’는 ‘1918 스페인 독감’에 버금가는, 아니 이를 뛰어넘는 이름이 되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의 수산물 시장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첫 장으로 인류가 겪어온 일들은 역사의 장면, 장면으로 새겨질 것이다. 2022년은 어떨까. 아직 백지로 남아 있는 이 장에 거대한 이야기의 결말이 쓰일 수 있을까.

팬데믹 3년 차, 인류는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 전파력을 극단적으로 높인 돌연변이인 오미크론이 출현했다. 선진국에서는 부스터샷 접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그러나 백신 불평등의 그림자는 여러 나라에 여전히 깊게 드리워져 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투약하는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가 드디어 출시됐다. 이 새로운 상황은 ‘팀 인류’가 코로나19에 맞서 2022년을 살아가는 데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까.

〈시사IN〉은 감염내과 전문의, 현장 대응 관리자, 면역학자, 정부 관료 등 감염병과 방역 분야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2022년에 펼쳐질 수 있는 장면 7가지를 그려봤다. 전망을 내놓는 마음이 무겁다. 취재를 종합하면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는 양자택일 관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은 차라리 연속선상에 있는 문제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는 과정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기사에서 제시하는 ‘2022 코로나19 전망’이 어긋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어떤 낙관은 쓰라리게 배신당할 것이다. 어떤 비관은 실현되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배우지 않았던가. 코로나19 팬데믹의 다른 이름은 ‘불확실성’이다. 이 게임의 주도권은 바이러스에게 있다. 다만 최악을 피하는 일은 인류의 손에 달려 있다.

① 최상의 시나리오:구세주 오미크론 오셨네

오미크론은 지난해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12월 무렵부터, 이 새로운 변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2022년 들어서는 이 시나리오가 지구적 차원에서 상당한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22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마스크를 쓴 산타가 등장했다. ⓒAP Photo

신종 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인 오명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는 1월12일 국립중앙의료원 기자회견에서 “오미크론이 이번 팬데믹에서 넘어야 할 마지막 고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고비를 넘는 데에는 2개월이 채 걸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빌&멀린다게이츠 재단’을 통해 감염병 위기 대응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온 빌 게이츠 역시 앞날을 비슷하게 내다봤다. 1월11일 게이츠는 트위터에서 올해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오미크론이 한 나라를 훑고 지나가면 올해 나머지 기간에는 훨씬 적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코로나19는 계절성 독감처럼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집된 오미크론 관련 데이터들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오미크론은 무서운 속도로 전파되지만 걸렸을 때 증상은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것이다. 2021년 우세종의 자리에 등극한 ‘델타 변이’와 비교해 오미크론의 전파력은 2배 이상 높은 반면, 중증도는 5분의 1 정도로 파악된다.

이런 차이는 오미크론의 감염 패턴과 관련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미국 워싱턴 대학 등에서 수행한 동물실험에서 오미크론은 ‘상기도(코, 입, 목)’에선 매우 활발하게 증식했지만 폐로는 잘 침투하지 못했다. 델타 변이 등 앞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하기도’인 폐까지 내려가 폐렴 등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이와 달리 오미크론은 호흡기 입구에서 주로 번식해 바이러스를 쉽게 옮기지만 증상은 더 가벼운 것으로 보인다. 오명돈 교수는 오미크론과 델타는 확연히 다르다며 오미크론을 ‘코로나22’로 부를 만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파력을 ‘극강’으로 키운 돌연변이가 출현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불과 수개월 내에 천하를 평정한다. 지난 두 달 동안 남아공에서 일어난 일이다(〈그림 1〉 참조). 오미크론 확산으로 11월 중순부터 가파르게 증가한 남아공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한 달여 만인 12월 중순 정점을 찍고 떨어졌다. 오미크론 유행이 12월 무렵 본격화된 영국에서는 올해 1월 중순을 지나며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왜 그럴까? 바이러스가 단시간 내에 어떤 집단을 전방위로 훑고 지나가면 그 인구 집단의 면역 상태가 이전과 달라진다. 과거 코로나19에 걸렸거나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인체 내에 생긴 면역체계의 보호 덕분에 오미크론을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동시에 오미크론 감염으로 추가적인 면역을 얻는다.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백신 미접종자는 기본적인 면역이 없으니 오미크론에 더 쉽게 걸리고 중증으로 악화될 위험이 접종자보다는 높다. 그러나 회복된다면 일정 수준의 면역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구 집단의 전체적인 면역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지고 그 결과 유행은 안정기로 접어든다. 여러 감염병 전문가들이 2022년에는 코로나19가 팬데믹 상황을 지나 엔데믹(풍토병)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엔데믹이란 인류의 면역과 바이러스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12월29일 기자회견에서 새해에는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의 급성 단계(acute stage)’가 끝날 것 같다고 밝혔다. 2020년 ‘팬데믹’을 선포한 이후 나온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그러나 잠깐. 지금까지 살펴본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오미크론이 대유행을 일으키고 지나간 이후의 이야기다. 오미크론의 ‘대유행 기간’이 빠졌다. 오미크론이라는 태풍이 한반도를 휩쓰는 기간은 대략 2월, 3월, 4월일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② 감기가 된 코로나19?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코로나19는 이제 감기나 독감(인플루엔자) 같은 가벼운 질환이 된 걸까? 지금까지 수집된 데이터로 평가하자면 오미크론의 치명률(0.16%)은 독감(0.1%)에 견줄 만해 보인다.

1월20일 데이터 기준 〈시사IN〉 재가공

그러나 이 전망엔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져 있다. 전파력이다. 〈그림 2〉는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꽤 친숙해진 그래프다. 전파력을 가로축으로, 치명률을 세로축으로 그린 좌표 평면에 주요 감염병들이 점으로 찍혀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020년 오리지널 타입, 2021년 델타 변이, 2022년 오미크론 변이로 거치며 성큼성큼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오미크론의 치명률이 낮아져 세로축 기준으로 독감과 같은 선상에 있게 될지라도, 오미크론과 독감의 위치는 분명히 동떨어져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오미크론의 전파력은 ‘아찔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홍역은 현존하는 감염병 가운데 전파력이 가장 강하다고 꼽힌다. 백신접종이나 방역 조치가 없는 자연 상태를 가정했을 때 환자 한 명이 평균 15명을 감염시킨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홍역을 제외하면 오미크론보다 전염력이 더 좋은 감염병은 이제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파력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된다는 뜻이다. 오미크론의 중증도가 델타에 비해 5분의 1로 줄었다 해도, 오미크론이 델타보다 5배 더 많은 확진자를 만들어낸다면 중환자 수 자체는 같아진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연령에 따라 위험도가 크게 다르다. 오미크론이 출현하기 이전에도 젊은 층과 청소년, 어린이들에게 코로나19는 치명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고령층으로 가면 치명률이 현격하게 올라간다. 1월16일 기준 연령별 코로나19 누적 치명률은 80대 이상 14.29%, 70대 4.31%다. 국내에서 오미크론 유행이 본격화되면 전반적인 치명률은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고령층에게 오미크론의 치명률은 여전히 무시하기 어려운 위험으로 남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한 확진자 증가 전망이 거의 확실시돼왔다. 지난해 12월 말 질병관리청이 KIST와 공동으로 수행한 감염병 확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거리두기 지침(밤 9시 영업제한, 최대 4인 모임 기준)을 유지하더라도 1월 말 하루 신규 확진자가 1만명을 웃돌 것으로 예측됐다. 1월7일 정부가 마련한 ‘오미크론 발생 전망 및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오는 3월 중순엔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2만명, 중환자 수는 20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 결과를 제시했다. 최대 정점이 10만명 이상일 거라는 추정도 나온다.

그동안 한국이 경험했던 코로나19 유행 규모에 비춰본다면 놀라운 숫자다. 그러나 오미크론의 전파력을 감안하면 이보다 몇 배 더 큰 규모의 유행이 닥친다고 해도 결코 놀랍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한국과 함께 코로나19 유행을 성공적으로 관리해온 나라로 꼽힌다. 오미크론 변이가 유입되던 지난해 11월 무렵 오스트레일리아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1300명대였다. 1월15일 현재 이 나라의 하루 평균 확진자 수는 10만7000여 명이다. 두 달 만에 확진자가 약 80배 증가했다(〈그림 3〉 참조).

오미크론은 독감이 아니다. 오미크론은 ‘오미크론’이다.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일수록 유행 곡선은 빠르게 정점에 도달한다. 그 정점은 높고 기울기는 가파르다. 확진자 수가 매우 신속한 속도로 증가했다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 기사를 쓰는 1월20일 시점에서는 ‘5차 유행이 코앞에 와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실제 확진자 발생 추이는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한 속도와 규모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1월12일 중앙임상위 기자회견에서 “오미크론이 마지막 고비”라고 했던 오명돈 교수의 발언은 사실 ‘마지막’이 아니라 ‘고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기자회견 일주일 전인 1월6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오 교수는 오미크론의 파고가 한국을 휩쓸고 지나가는 기간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③ 상상 그 이상의 팬데믹

1월7일 오미크론 토론회에는 전문가와 의료진 이외에 정부 측 패널로 방대본(질병관리청)의 이상원 역학조사분석단장이 참석했다. 예방의학전공자인 이 국장의 발언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의료적인 문제’ 이전에 ‘비의료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오미크론 유행에서 걱정되는 측면이 있는데 (…) 하나는 결근이라는 문제입니다. 확진자가 생기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데, 환자 1명뿐만 아니라 접촉자 혹은 간병하는 가족까지 격리가 됩니다. 영국 사례를 보면 3~4일마다 인구의 1%가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확진자는 1%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5%, 10%의 사람들이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를 유지해야 하는 필수시설 발전, 금융, 통신, 교통 이런 모든 분야에서 차질을 겪을 수 있습니다.”

사회 기능 마비는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는 나라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감염자와 밀접 접촉자가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서 버스와 지하철은 물론 항공기까지 멈추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델타항공은 1월13일 지난 4주 동안 전체 직원 가운데 8000여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고 밝혔다. 뉴욕시 지하철은 한때 병가를 낸 직원이 전체의 21%를 차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이 대거 코로나19에 걸려 폐기물 수거가 지연되는 바람에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뉴욕시 지하철은 오미크론 확산으로 한때 병가를 낸 직원이 21%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오미크론발 인력난’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가뜩이나 포화 상태인 병원이다. 〈뉴욕타임스〉는 1월4일, ‘앞선 유행과 비교해 중환자 수는 큰 폭으로 늘지 않고 있지만 경증 환자들의 입원이 폭증한 데다가 코로나19 감염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의료진까지 늘어나 병원이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 보건 당국은 1월10일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된 의료진이라도 증상이 없다면 격리하지 않고 병원에서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지침을 변경했다.

미국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 대응에서 체면을 있는 대로 구긴 나라다. 저런 혼란은 외신을 타고 보도되는 해외 뉴스일 뿐 한국은 다르지 않을까? 한국과 외국의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을 두루 경험한 한 방역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한국은 촘촘하고 강도 높게 방역체계를 유지해왔잖아요. 그에 비하면 외국은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고요. 역설적으로 한국은 오미크론에 맞춰 태세 전환을 하기가 훨씬 어려울 겁니다.”

④ 최악의 시나리오:지금까지 하던 대로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지난 2년 동안 현장에서 의료와 방역체계를 운영해온 ‘필드 플레이어’이다.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임 원장은 오미크론보다 강력한 변이의 출현이나 경구용 치료제 부족 등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한다면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유행에서 K방역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11월, 12월 중환자 병상이 고갈되며 인명 피해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의 ‘100만명당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는 125명으로 미국(2565명) 영국(2237명)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극단적인 봉쇄 없이 이루어낸 결실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인적·물적 자원을 공격적으로 투입하면서 강도 높은 방역 전술을 구사해왔다. 대량 진단검사 체계를 구축하고, 적극적인 역학조사로 추가 확진자와 접촉자를 찾아냈으며, 이들을 전수 격리해 확산을 차단했다. 그러나 같은 전법으로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를 상대할 수 있을까.

임승관 원장은 추세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2020년 하루 확진자가 수십 명 수준일 때 정립된 K방역은 2021년 델타 변이로 수천 명대 확진자가 나오자 삐걱대기 시작했다. 오미크론이 초래한 5차 유행에서는 확진자 규모가 수만 명대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이른바 3T 전략(검사-추적-격리)을 수행해온 주체는 보건소와 지자체 공무원들이었다. 임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방역 일선은 이미 번아웃 상태입니다. 지금보다 일이 10~20% 늘어난다면 어떻게든 감당해내겠지요. 그러나 100~200% 증가한다면 그때는 주저앉을 겁니다. 코로나19에 걸려 출근 자체를 못하거나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속출할 겁니다. 대응체계를 바꿔내지 못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시스템이 ‘멜팅 다운’되는 겁니다.”

오미크론이 한국에 가져올 혼란은 오미크론의 특성 그 자체보다도 새로운 변이와 그동안 우리가 구축해온 한국식 방역체계 사이의 간극에서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택 치료의 경우, 한국은 하루에 두 번 건강 모니터링을 하고, 재택 치료자 및 동거인을 위한 ‘재택 치료 키트’ ‘개인보호구 키트’ ‘식료품 꾸러미’ 등을 보건소와 구청 등에서 일일이 보내준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하루 확진자가 수만 명 발생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모델이다. 외국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처럼 강도 높게 관리하는 곳은 거의 없다. 확진자에게 며칠간 집에서 머물 것을 권고하고 상태가 나빠지면 연락할 응급콜 번호를 알려준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19 환자들이 자연스럽게 동네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다. 임승관 원장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최대한 가볍고 효율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곧 닥쳐올 5차 유행에서 한정된 자원을 고위험군과 중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에 걸릴 때 정말 위태로운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1월19일 많은 눈이 내려 한산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 일일 확진자가 7000명을 넘어서면 PCR 진단검사 대상자는 65세 이상 등 고위험군으로 한정된다. ⓒ시사IN 조남진

⑤ 성문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정부도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1월14일 중수본은 ‘오미크론 확산 대비 방역·의료 대응체계 준비’ 계획을 발표했다. 1월29일 이 ‘오미크론 대응체계’로 넘어간다. PCR 진단검사 대상자는 60세 이상 등 고위험군으로 한정된다. 확진자와 접촉자의 격리 기간은 10일에서 7일로 단축된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시사IN〉에 전체적인 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증으로 갈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을 빨리 찾아서 신속하게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것입니다. 확진자가 1만명, 2만명 수준으로 나오면 국내 PCR 검사 인프라(최대 85만 건)도 한계치를 넘어섭니다. 예전처럼 모든 감염자를 다 찾아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젊은 층 확진자를 다소 놓치더라도 고위험군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1순위입니다.”

1월13일부터 도입된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는 발병부터 5일 이내에 복용해야 약효를 볼 수 있다. 방역 당국은 먹는 치료제를 통해 코로나19 고위험군의 증상이 중증으로 가는 경우를 줄여 중환자실 포화를 막을 수 있길 기대한다.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해서도 고위험군 확진자를 빠르게 선별해내야 한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1월 말 오미크론 태풍은 한반도에 본격 상륙하고 있다. 반면 방역 패러다임 전환은 여러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K방역은 지난 2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주문이었다. 의료기관부터 학교, 직장, 카페, 식당, 결혼식장, 장례식장까지 고강도 방역체계가 깊게 뿌리내렸다.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와 심리에도 공고히 자리 잡았다. 2022년 1월 현재, K방역은 사회시스템인 동시에 집단적 인식 체계다.

2022년 2월의 어느 날을 그려보자. 열이 나는데 선별진료소에서 PCR 검사를 받을 수 없다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3월 신학기, 영국처럼 밀접접촉자라도 증상이 없다면 등교를 허용했을 때, 당신의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가? 4월의 어느 날 미국처럼 격리 기간이 더 짧아져 코로나19에 걸렸던 동료가 5일 만에 출근했다면 옆자리에서 불안감 없이 근무할 수 있는가?(("오미크론 유행, 외국은 코로나19에 걸리면 어떻게 할까?" 참조)

지금까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바이러스 파도에 맞서 튼튼하고 높은 성벽을 쌓는 일이었다. 이 성벽은 파도를 완전히 차단하진 못해도 비교적 안전하게 성안을 지켜냈다. 그런데 오미크론은 파도가 아니라 폭우다. 곧 성 안에 물이 차고 홍수가 날 것이다. 오미크론 대응은 배를 타고 이 거세진 물살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방역 당국이 신속하게 방역과 의료체계를 전환해내어 적시에 타고 나갈 배가 건조되었다고 치자. 한국 시민들은 기꺼이 이 배에 승선할 준비가 되었을까. 성 밖은 두렵다며 주저하는 사람은 없을까? 오미크론은 독감에 불과하니 배 따위는 필요 없다고 거부하는 사람은 없을까? 이 질문이 향하는 곳은 정부도 전문가도 아닌 당신과 나, 바로 시민들이다.

⑥ 물백신 네버엔딩스토리샷?

백신을 맞은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된다. 높은 백신접종률에도 오미크론이 확산된다. 자연스럽게 백신의 효능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신은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분명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림 4〉는 1월13일 뉴욕시 보건 당국이 오미크론 유행의 특성을 분석해 발표한 자료다. 뉴욕시 보건 당국은 이 그래프를 바탕으로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입원율은 접종 완료자보다 8배 높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제 코로나19 감염 혹은 코로나19 백신으로 생기는 면역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백신은 일종의 바이러스 모조품이다. 자연감염 이후 발생한 면역과 백신접종으로 획득한 면역은 기본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가진다. 면역학자인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의 경우 ‘중화항체’는 빨리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T세포’ 면역이 유지되는 기간은 더 길다”라고 말했다.

인체의 면역계에서 ‘중화항체’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 감염을 막는다. ‘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죽여 바이러스가 더 증식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19 백신의 감염 예방효과는 비교적 단시간에 낮아지지만, 병세가 악화되는 걸 막는 중증 예방효과가 길게 유지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다시 정립될 필요가 있다. 백신을 접종해도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지만, 접종자는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덜 전파시키고, 본인 역시 훨씬 안전하게 코로나19를 이겨낼 가능성이 높다.

부스터샷 접종이 시작되면서 이러다 럭키세븐샷(7차 샷), 빼빼로샷(11차 샷) 그리고 ‘네버엔딩스토리샷’까지 맞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코로나19 백신은 대체 몇 번 더 맞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신의철 교수는 이렇게 되물었다. “인플루엔자 백신 몇 번 맞았는지 기억하세요?” 코로나19 백신도 장기적으로는 독감 예방접종처럼 매년 정기적으로 맞는 백신이 되리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1월19일 서울 사당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⑦ 마스크 벗는 날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주로 오미크론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오미크론이 코로나19의 마지막 변이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이 기대를 거는 구석은 있다. 전파력 ‘극강’의 돌연변이 오미크론이 전 지구를 휩쓸고 지나가면, 그 이후 전 인류의 면역수준은 한층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 바이러스 처지에서는 돌연변이를 만들어낼 기회가 줄어든다. 인류로서는 설사 새로운 변이가 나타나더라도 앞서 얻은 면역 덕분에 좀 더 쉽게 이겨낼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바이러스의 변이를 예측하는 건 인간 능력 밖에 있는 일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염병 학자일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이 지난해 10월 백악관 브리핑에서 했던 말을 겸허하게 새길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델타의 능력을 뛰어넘는 변이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남아공에서 오미크론이 발견됐다.

팬데믹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2022년 인류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오명돈 교수는 팬데믹의 끝이란 두 가지 의미라고 말했다. “첫 번째, 의료시스템이 환자를 받아낼 수 있으면 됩니다. 두 번째 우리 사회 그러니까 감염된 환자와 그 가족과 시민들이 그 일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됩니다.”

‘받아들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위험한 변이가 더는 출현하지 않거나, 확진자 규모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치명률이 한층 낮아진다면, 시민들 역시 코로나19를 받아들이기가 보다 수월하겠지만 그것들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코로나19의 끝’이란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이 ‘우리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며 일상의 영역을 넓혀갈지’ 논의하고 합의한 결과물에 가까울지 모른다. WHO가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을 선포하며 인류는 2020년 3월11일 공식적으로 팬데믹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팬데믹의 끝은 한날한시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마스크를 벗는 날은 다를 것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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