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신천지, 마스크 5부제, 대구 한마음아파트, 서울백병원 폐쇄, 구로 콜센터…. 자고 나면 오늘의 코로나19 뉴스가 어제의 뉴스 위에 덮인다. 다 열어보자니 피로감이 쌓이고, 지나치자니 하나하나 다 중요한 함의들을 담은 사건이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서는 뉴스 소비 또한 긴 호흡이 필요하다. 휙휙 지나가는 뉴스와 정보 속에서 어떤 것들은 ‘기억 리스트’에 적어놓을 필요가 있다. 숨찬 시절을 무사히 보내고 나서는 그것들을 다시 꺼내보아야 한다. 조금 지긋지긋하더라도 언젠가는 머리를 맞대 코로나19의 경험을 교훈으로 바꿔야 한다.

그 긴 작업의 시작, 코로나19의 기억 리스트를 작성하는 차원에서 〈시사IN〉은 전문가들과 함께 매주 코로나19 리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른바 ‘주간 코로나19’ 회의이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고정 멤버를 자청했다. 〈시사IN〉에 ‘김명희의 건강정치노트’를 연재하고 있는 김 연구원은 보건의료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코로나19가 시민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읽어주기로 했다. 임 원장은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으로서 의료 현장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어나는 코로나19 위기와 대응을 전해줄 것이다. 매주 새로운 코로나19 이슈에 맞는 새로운 전문가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그렇게 매주 코로나19를 되짚고 또 다음 주를 각오하다 보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마음의 면역력이 조금씩이나마 키워질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가지고, 3월11일 저녁 서울 사당동 시민건강연구소 회의실에서 첫 ‘주간 코로나19’ 회의를 진행했다.

ⓒ시사IN 이명익3월12일 서울 중구 명동의 텅 빈 거리를 몇몇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한 주 일상은 어땠나?

임승관:‘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라는 보건학적 용어가 현실로 구현된 모습을 목격했다. 지난 주말 복합 쇼핑몰에 영화를 보러 갔다. 한 달 전쯤만 해도 인파로 북적이던 그곳이 텅텅 비었더라. 앉아서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 시간이 무슨 의미일까. 사회적 거리두기, 스탠드 스틸(Stand still) 전략을 통해 우리가 시간과 기회를 얻은 거라면, 이것은 혹시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방역 작전을 짜거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닐 텐데. 모든 일상 활동이 정지됐다면 피해는 분명 건물주나 현금 자산가들에게 돌아가진 않을 텐데. 어쩌면 가장 약자들일지 모를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기회와 시간을 관료, 전문가, 언론, 우리 사회가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일주일 동안 머릿속에 가득 채웠다.

김명희:주말에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팔순 되신 친구 아버님이 갑자기 목요일부터 말이 어눌해졌다는 거다. 누가 봐도 뇌졸중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평소 천식 기운이 있어서 지금 병원에 가면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큰일 난다면서 병원을 안 갔다는 거다. 빨리 가셔야 한다고 설득해 응급실로 갔는데 이미 혈관이 많이 막혀서 앞으로 두세 달 재활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사례가 내 주변에만 있진 않을 것이다. 평소라면 피할 수 있었던 다른 문제들로 인한 사망률도 높아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모든 아픈 사람과 그 가족들이 취할 수 있는 액션 플랜이 매우 모호한 상황이다. 만약 친구 아버님이 뇌졸중 증상이지만 검사해보니 코로나19도 양성이었다면? 응급실이 폐쇄되고 비난 댓글에도 시달렸을 것이다. 실제 이런 혼란 속에서 대구 거주 사실을 숨기고 입원한 환자로 인해 서울백병원이 폐쇄되는 사태 등도 벌어졌다.

임승관: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구·경북에서 환자가 늘어나고 의료체계가 마비된 후 자녀나 다른 가족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경기도 지역) 병상 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느 시점부터 분명히 대구 방문 이력 환자가 늘어났다. 이런 방어적 행위는 언론이 주목하기 전부터도 현실에서 감지가 되고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백병원 사례는 물론 대구 다녀왔냐는 질문에 거짓말을 한 점이 비난받지만, 여기에서도 개인의 행위에 너무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그런 조건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대구·경북, 신천지 같은 어떤 위험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의료적·사회적 서비스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개인들이 알고 있다. 누구나 아픈 사람들은 그에 맞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백병원처럼 환자의 거짓말이 없는 상황에서도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3월5일부터 확진자가 발생한) 분당제생병원에 갔는데 입구에 ‘국민안심병원’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걸 보고 생각했다. ‘내일 국민안심병원도 뚫렸다는 기사가 나가겠구나.’ 어떻게 디자인해도 다 못 막는다. 누가 보건복지부 장관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증상이 특이하지도 않고, 모든 폐렴 환자가 호흡기 증상이 있고 얼마나 많은 외상 환자가 열이 날 텐데 그걸 어떻게 완전히 구분하나. 우리나라가 가진 의료 자원으로 일말의 확률을 지닌 감염자를 공간적으로 완벽히 분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욕심이 아닐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낮춰야 한다.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불을 끄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기대를 낮출 필요도 있다.

ⓒ콜센터 제공3월11일 직원들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는 강원도 춘천시의 한 콜센터.

지난 한 주 서울 신도림동 콜센터에서 확인된 집단감염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임승관: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해 실제에 비해 고평가, 저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코로나19의 사망 위험이나 위중도는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고, 이것이 나나 내 가족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가능성은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 수도권 확진자 수가 늘면서 경기도에서 회의를 열었다. 콜센터 전수조사 등의 대책이 논의됐다. 나는 (경기도 코로나19긴급대책단 공동단장으로) 앉아 있다가 마지막에 의견을 말씀드렸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해봅시다…. 왠지 뒤쫓아 간다는 느낌 안 드세요?” 신천지에서 나오면 신천지 전수조사, 콜센터 터지면 콜센터 전수조사, 이게 과연 그만한 방역 효과가 있을까? 콜센터에서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났다면, 그 요인은 뭘까? 요인이 갖춰진 곳은 어딜까? 거기 있는 사람들은 감염 위험을 알고 있을까?
아마 세 가지 요인이 결합했을 때 발생하기 쉬울 것이다. 첫째로 공간적 요인. 실내이고 환기가 잘 안 되는 곳. 둘째는 밀도.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을 때. 셋째는 사람들이 비말이 발생하는 행위를 더 많이 하는 공간. 이런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그 커뮤니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도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내가 호흡기 증상이 있긴 하지만 이건 감기이고 코로나는 뉴스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역사회 감염은 〈시사IN〉 편집국 안에도 있을 수도 있고 내 주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전수조사도 좋지만, 거기에 쓸 인력과 자원과 에너지를 이러한 부분에서 사람들의 인식 개선과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 더 써도 좋지 않을까.

김명희: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아는 분이 다국적 금융회사에 다니는데, 그곳에선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자마자 한 일이 옆 건물 비어 있는 사무실을 임대한 거였다. 직원 반을 나눠서 거기로 보내고, 핵심 인력, 절대 감염되면 안 되는 사람들을 재택근무로 돌렸다. 위탁업체가 운영하는 콜센터는 예전에 가봤지만 진짜 공장이다. 정확하게 초 단위로, 화장실 가도 (기록을) 걸어놓고 가야 하고. 전화 응대를 그냥 해도 욕을 먹는 마당에 마스크 쓰고 할 수도 없고. 그런 곳에서 일이 터진 건데 그런 작업장이 사실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재택근무 얘기 나오는데, 그건 하다못해 커피믹스, 정수기 물, 컴퓨터, 모든 작업 인프라를 개인이 감당한다는 것이다. 비용을 외부화하는 방식이다. 허울 좋지만 결국 그 모든 인프라 생산과 관련된 생산수단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보호할 거냐? 유일한 방법은 하나씩 떨어져서 앉고 근무 조를 나누는 것이다. 우리 연구실은 차라리 창문을 열어놓는다. 현실적인 방법을 적용하려면 전문가가 사실 다 알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어떻게 하나하나 다 알겠나. 그렇다면 노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이 수용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

ⓒ시사IN 이명익3월10일 서울 신도림동 콜센터 집단감염으로 건물 입주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임승관:산업안전보건법상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전임 보건관리자를 두게 돼 있다.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 독감이든 코로나19든 감염병 유행 시기에는 자기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국지적인 감염병 양상을 체크해내야 한다. 누구든 자기 사업장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는 이견이 없지 않나. 300명 사업장에서 평소 3~4명 정도 감기 증상은 당연하다 치지만 어느 날 30명 이상씩 증상이 나타나면 이상하다고 여겨야 한다.

김명희:처음 감염된 분은 모르겠지만, 직장 내에서 동료 때문에 감염됐다면 엄밀하게 말해 산업재해다. 작업장 위험요인 때문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건의료 노동자를 포함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건의료 노동자도 메르스 때 산재 인정받은 사람이 얼마 없다. 40명 정도 사례 가운데 산재로 인정받은 것은 7명 정도다. 본인들 스스로도 산재라고 생각 안 했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의료 체계로 다시 돌아와서, 여전히 병상이 모자라고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 대구에서 목격한 서지(Surge, 의료 수요 급등)가 전국으로 확산될까 봐 우려스럽다.

임승관:병상을 무한정 확보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 병상 수를 최대한 확보한다 해도 의사, 간호사 수가 그만큼 없다. 자원을 최대한 늘리는 전략은 한계가 있다. 급조한 체계에 의해 또 다른 무너짐이 일어난다. 차라리 이미 갖고 있는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 고민해야 한다. 환자 수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적합한 솔루션이 하나 있다. 가정이다. 아픈 사람이 집에 있는 것이다. 산소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면 감기처럼 집에서 치료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지난 4주간 안성병원에 38명이 코로나19로 입원했다. 대략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가운데 폐렴이 발견된 환자는 2명이다. 이들은 큰 병원으로 옮겨갔고 3명은 퇴원했다. 나머지 33명에 대해, 과장님들에게 물어봤다. “33명 중에 현재 퇴원해도 될 만한 환자, 그러니까 퇴원시켜도 원망을 하거나 따지지 않을 것 같은 상태의 환자는 얼마나 될까요?” 대략 세어보니 24명이었다. 72.7%다. 우리 병원만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과반수의 사람이 꼭 병원에 없어도 되는 거다. 이들을 가정, 생활치료센터로 빼야 기다리는 중증 환자를 넣어줄 수 있다. 전문가들도 이를 알고 있어서 건의했고, 질병관리본부(질본)의 대응지침 7-1판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그 개념이 아직 유포되진 않는다. 생활치료센터는 알려지고 있지만 가정으로도 복귀 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정부도 언론도 잘 얘기를 안 한다.

김명희:집에 갔다가 만약 한 명이라도 악화되면 책임론이 불거질 테니….

임승관:실제 한 병원에서 7판 기준에 따라 임상 증상 호전 시 경증 환자를 퇴원시켰다. 해당 지역 보건소에서 난리가 난 거다. 대응지침 6판 기준으로는 PCR 검사 두 번 음성이 나와야 격리해제가 가능한데,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이 다시 공동주택에 들어가는 걸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거다. 기자들도 물을 거다. “100% 안전합니까?” 마스크랑 똑같은 거다. 사람들은 완벽한 안전을 원한다. 불로 예를 들어보자. 전깃불이 가장 안전하지만 만약 전기 자원이 제한돼 있다면? 가장 필요한 곳에서 먼저 전깃불을 사용하기 위해 어떤 집에서는 당분간 촛불을 켜놓고 지내야 될 수도 있다. 물론 위험이 있지만, 통제 가능한 위험이다. 완벽하게 안전하냐고 묻기 전에, 위험 수준의 개념을 다시 잡아보면 좋겠다.

김명희:그게 바로 억셉터블 리스크(acceptable risk, 수용 가능한 위험)라는 개념이다. 방사능 예를 들면, 위험도는 선형으로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안전한 방사능은 없다. 한 장 찍고 두 장 찍으면 찍은 만큼 리스크가 올라간다. 하지만 엑스레이나 CT 없이 살 건가? 관리 가능한 수준, 다른 것과 대비해 수용 가능한 수준을 정해야 한다. 사실 초기에 환자 수가 적었을 때 모든 전력을 다 갈아넣었다. 한 명 한 명 동선을 추적하고 다 음압병실에 입원시키고 마스크 다 쓰고 그렇게 가이드를 받았는데 이제 와서 ‘마스크 덜 써도 된다’ ‘집에 가서 쉬어도 된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과 언론이 중간에서 책임감을 갖고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영국에서 몇 년 전부터 겨울철 노인들의 폐렴 사망률이 높아졌다. 통상 지병이 있던 노인이 겨울에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그 사례가 과도하게 높아져서 분석을 해봤더니,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는 이유가 소셜 케어(복지 서비스)의 예산이 확 깎인 것이다. 퇴원하고 나서 갈 곳이 없으니 인플루엔자 유행 시기에 경증 환자들이 퇴원을 안 하거나 못했다. 병상이 100% 차 있으니 새로 환자가 발생해도 입원을 못하고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죽고 이런 문제가 몇 년째 반복되었다. 우리도 어느 순간 밀어내는 전략을 해야 하는데, 사실 과학의 문제라기보다는 위험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시사IN 신선영3월11일 구급대원들이 코로나19 확진자를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다수가 위험을 나누어 갖자는 이야기를 누구도 쉽게 나서서 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구에서도 지금 병원에 입원한 경증 환자들에게 생활치료센터로 옮길 것을 권하지만 협조가 잘 안 된다고 한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어서 의료진이 최대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임승관:생활치료센터도 두 가지 타입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병원 대체형이다. 병상이 모자라서 병원에 가야 할 환자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경우이다. 환자 분류 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숨이 찬 사람, 폐렴이 발생한 사람, 고열이 나는 사람 등 랜덤하게 배정된다. 그러면 이 안에 의료 서비스를 많이 넣어야 한다. 효율적이지 않다. 경기도 대책단에서 준비하고 있는 생활치료센터는 가정 대체형이다. 병원에서 일정 정도 치료하고 집에 가도 안전하다고 의사가 판단했을 때 가정보다 생활치료센터로 가는 개념이다. 옆집 사람들이 민원을 넣으니까. 그럼 결국 밥과 게임기, 각종 만화책만 충분하면 된다. 그리고 가족 감염인 경우에는 식사도 같이 할 수 있는 콘도 같은 시설이었으면 좋겠다. 의료 인력을 최소화하고 관리 직원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병원 대체형은 환자가 100명이 있다면 그 중 20명 정도가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가정 대체형은 1명 정도도 필요한 상황이 잘 안 일어날 거다. 중요한 것은, 미리 임계치에 도달하기 전에 설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두 타입을 분리해서 미리 준비한 체계가 잘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하게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김명희:지자체와 지자체를 연결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가 없는 상황이다.

임승관:메르스 때도 반복됐던 이야기인데, 한 지자체 내 병상이 다 차면 옆 동네 걸 빌려 써야 하는데 룰이 없었다. 거의 인맥을 동원하고 사정하고 빌고 그래야 했다. 이번에도 그런 문제가 발생하자 국립중앙의료원에 재난응급상황실을 두고 직권으로 어레인지(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경로로 대구·경북 중환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많이 빠졌다. 이게 순기능인데, 역기능도 있다. 미리 민간병원과 더불어 네트워킹을 만들어 환자 분류체계를 만들어놓은 지자체에서는 ‘내리꽂는’ 방식이 역효과가 났다. 경기도 같은 경우 민간 상급 종합병원장들이 모두 협조적이었다. 계약서도 협약도 없이 중환자 병실을 새로 돈 들여 만들고, 다른 비용을 감수하면서 병상을 비워 공공부문과 함께 코로나19 환자를 받을 준비를 자발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대구 상황이 악화되면서 위에서 공문이 딱 내려오는 거다. ‘병원당 병상 몇 개, 의사 몇 명, 간호사 몇 명씩 내세요.’ 그런 관료주의에서 사람들 마음이 닫힌다. 공문 받는 순간 그 사람들은 말한다. “그 (협조 요청) 얘기가 결국 이거였어?” 따뜻한 전화상 부탁이나 카카오톡의 웃음 이모티콘 이런 걸로 겨우 만들어가고, ‘저 사람(기관)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우리도 이 정도는 해야지’ 하다가 공문 한 장으로 싸늘해지는 거다. 여기에서 어떤 교훈이 남느냐는 거다. 한국 사회는 지자체 안에서 민과 관이 협력모델 만들고 자율 질서를 만들어낼 기록이 안 남을 수 있다. ‘국가가 꽂아주는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 이런 기록으로만 남는 게 안타깝다.

김명희:그런데 진짜 꽂아주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

임승관:보편적이지 않다는 건 안다. 몇 명의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일할 때 돌아가는 예외적이라는 걸 아는데 선례로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저와 제 동료들에게 있다.

김명희:병원들이 말을 너무 안 듣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부산대병원, 지역에서 제일 크고 산부인과가 있지만 분만은 안 한다. 분만을 하게 할 방법이 없다. 부산대병원 같은 국립대병원도 그런데, 어떤 민간병원이 호응을 하나. 특히나 이런 감염병 상황에서 자기네에게 손실을 끼칠 수도 있는 선택을 하라고 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공공이 최소한 레버리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않고서야 갖다 꽂는 방법뿐이지 않을까.

ⓒ시사IN 신선영‘마스크 5부제 대책’ 시행 첫날인 3월9일 서울시 한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선 시민들.

임승관:꽂아주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느냐면, 우리(경기도)도 병상이 다 차다 보니 한 병원의 어떤 환자를 오히려 다른 지역에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의사들이 다급하니까 중앙에 긴급지원상황실에 전화했다. 이건 좋다. 지자체 15군데 따로 다 전화 안 돌려도 되니. 그런데 답이 온 게 ‘경남에 있는 병원을 알아봐드리겠다’. 숨이 찬 사람을 경기도에서 경남으로? 꽂아준다는 말이 전달체계 내에서 그런 문제가 있다. 대구·경북에서 오는 환자를 받아달라고 하면 경기도 내 민간병원 동료 교수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오다가 죽지 않을까요?”이다. 이들도 다 휴머니즘 있고 환자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찬 의사들이다. 환자들이 구급차 안에서 많이 나빠진다. 근거리도 중요하다. 권역응급센터를 두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푸시하고 내리꽂는 게, 병상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사라지는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되게 어렵다.

이동 중 위험도가 올라간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대개 ‘병상이 있다면 거기로 가면 오케이’라고 생각한다.

김명희:인턴 시절 고속도로 생기기 전 대관령 길을 구급차로 달린 뒤 병원에 도착하고 환자를 응급실에 밀어넣자마자 다 토했던 기억이 난다. 일반 사람도 응급 이동이 힘든데 환자는 오죽하겠나. 그나저나 서울에 빅5 병원들은 요즘 정말 조용하지 않나? 평소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기둥처럼 인식돼오던 곳들이 이번에는 존재감이 없다. 아산병원, 삼성병원 등 한 번도 얘기가 나온 적이 없다. 상징적이다. 암 진료 등 다른 중병도 봐야 하는 것도 맞는데, 참 허망하다. 이런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임승관:만약 나설 기회가 없었다면, 기회는 만들 수 있다. 지금 지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지방 의료원들이 대개 300병상 미만으로 매우 영세하다. 그리고 감염병 전문가도 매우 부족하다. 공공 의료기관으로서 사명감으로 버티지만 도와주는 사람, 도와주는 기관이 없다. 지방 의료원 사람들이 서로 물어본다. “어디 알려줄 데가 없을까요?” 동선은 어떻게 짜야 하고 보호복 착탈의는 어떻게 하는지 환자 진료는 어떻게 보는지. 여기에서 많은 대학병원들이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대학병원이 의사를 보내주진 않아도 어느 하나 의료원을 맡아서 교육해주고 기술지원 해주고. 정부가 병상·시설·장비를 중심으로 보는데, 하드웨어에서 끝인 느낌이라 아쉽다. 이런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를 조직해주는 역할도 필요하다.

다음 주는 어떻게 흘러갈까? 혹은 어떻게 흘러가는 게 바람직할까? 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하나?

김명희:짐작하건대 콜센터 같은 종류의 소규모 유행은 당분간은 나올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산불이 꺼지는 데 6개월 걸렸다. 계속 지역사회 안에서 돌며 우연히 조건이 맞으면 한 집단 안에서 수십 명씩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에서 지금 현재와 같은 고강도 스탠드 스틸 전략으로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완화하지 않아도 사람들 스스로 무뎌질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근데 긴장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 다시 ‘서지’가 일어날 거고….

임승관:지자체 회의를 하면 도지사도 궁금하니까 물어본다. “얼마나 가는 겁니까? 방역 열심히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습니까?” 나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방역 열심히 할수록 점점 늦게 끝납니다. 대신 가늘고 길게 갈 수 있습니다.” “3월 안에 끝날 거다” “날씨 따뜻해지면 좋아지겠지” “사회적 거리두기 몇 주 했으니 나아지겠지” 이런 희망의 말들, 솔직히 약간 순진한 기대이다. 대신 “함께 낮춥시다”라고 말할 순 있다. 대구나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일들을 최대한 막고, 산발적인 발생은 계속 겪을 테지만 사회적 일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관리하는 거다. 바이러스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무섭거나 놀랄 일은 아니니까 침착하자. (수량 차원의) 공정 분배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 자원이 분배돼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수용해야 한다. 관리 가능하다는 믿음 아래에서 시스템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삶이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어느 한순간 갑자기 되진 않겠지만 계속 우리 사회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

김명희:아마르티아 센(빈곤·불평등 경제학자)이 헬스 케이퍼빌러티(capability, 건강 잠재력)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어 무상 의료를 한다 해도 어떤 사람은 지식이 없고 정보가 없어서, 장애인은 갈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못 누린다. 사람마다 가진 기회와 자원을 활용하는 헬스 케이퍼빌러티가 다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주 마스크 2개를 똑같이 나눠주는 것도 맞지 않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지키는 데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 한국이 잘살게 되면서부터 한 번도 제한된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줄 건지 함께 고민해본 적이 없다. 여름에 폭염이 심하니 저소득층에게 에어컨을 지원해야 할까? 드라이브 스루? 병원 오갈 때는 자동차를 이용하라? 차 없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질문들을 우리 사회가 처음 맞이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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