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검찰 보고서 2023’ 〈검사의 나라, 이제 1년〉을 발간한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사법감시센터의 김태일·최보민·오유진 간사(왼쪽부터).ⓒ시사IN 조남진
‘윤석열 정부 검찰 보고서 2023’ 〈검사의 나라, 이제 1년〉을 발간한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사법감시센터의 김태일·최보민·오유진 간사(왼쪽부터).ⓒ시사IN 조남진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틈만 나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쳐왔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상·제도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다. 다만 국가는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개인의 자유·권리 중 일부를 침해할 수 있는 권력(형벌권, 조세권 등)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국가권력 역시 이기심과 욕망을 지닌 다른 인간에 의해 행사될 수밖에 없으므로, 반드시 공정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개인이 ‘나’를 미워한다면, 그 권력을 악용해서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나’를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이 나올 때까지 주변을 캐며, 심지어 없는 죄를 덮어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권력은 오로지 미리 제정해놓은 법률에 의거해서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원칙을 ‘법의 지배(Rule of the law)’, 즉 법치(法治)라고 부른다. 법치는 인치(人治:인간의 지배)의 반대 개념으로,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2008년부터 매년 ‘검찰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한국의 법치 수준을 가늠하려면 ‘검찰 감시’만 한 수단이 없을 터이다. 보고서 제목은 매년 바뀐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인 지난 5월에 나온 보고서의 제목은 〈검사의 나라, 이제 1년〉이었다. 이 보고서를 만든 사법감시센터 김태일·오유진·최보민 간사와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보고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1년을 “검사의 나라가 만들어져가는 한 해”로 규정하고 있다.

한상희(이하 한):‘정치’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영역이다. 과거(권위주의 시대)엔 권력이 사회적 갈등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정치 이외의 수단’이 있었다. 정치 깡패와 정보기관이다. 이들이 민주화 이후 물러가자 그 공백을 검찰이 채웠다. 정치권력은 검찰의 형사사법 권력을 활용해 정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검찰은 자기 조직의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치권력에 기꺼이 종속되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 의제들이 철저하게 실패하면서, 검찰은 정치권력에 대한 종속을 탈피해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김태일(이하 김):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을 표방했으나 지지율의 상당 부분을, 검찰을 통해서만 추진 가능한 ‘적폐 청산’에서 얻었다. 검찰의 위세가 역대 정권 최고 수준으로 막강해졌다. 검찰이 역사상 최초로 대법원을 수사하고, 대통령(박근혜)을 구속했다. 그러나 ‘검찰은 검찰의 편’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뒤늦게 검찰개혁에 나서지만, 이에 검찰이 반발하면서 시민들도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공정하게 수사하는 집단’이라는 착시 현상이 발생했다. 윤석열 당선의 배경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제도적 적폐 청산’이 이뤄져야 했다. 대통령(청와대) 권력의 총량을 조정하고, 청와대와 각 행정부처의 관계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인적 적폐 청산’, 즉 특정한 사람을 찍어 정치 영역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갔다. 그래서 검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나오는 ‘떡고물’을 흡수해 덩치를 불렸다.

지난 4월27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지난 4월27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검찰이 요즘 야권 인사들에게 적용하는 ‘직권남용’이나 ‘제3자 뇌물 수수’ 등의 혐의는 ‘적폐 청산 시대’에 박근혜 정권 인사들을 겨냥해 개발된 검찰의 신무기였다. 공직자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혐의들을 완전히 피해 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김:예컨대 직권남용은, 공직자가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했다는 죄목이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정당한 권한 행사이고 어디부터는 부당한 직권남용인지 기준을 설정하기가 굉장히 모호하다. 죄목이 모호한 만큼 검사의 재량이 커진다. 검사는 특정 대상을 직권남용으로 기소하거나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

한: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직권남용죄 항소심(공수처가 기소)이 진행 중이다. 만약 조 교육감이 자신의 법적 권한에 속하는 일을 추진하는데, 다른 관료들이 반대했다고 치자. 이런 상황에서 교육감이 자신의 정책 의지를 관철시켰다면, 직권남용인가 아닌가? 결국 검찰의 마음에 달려 있다. (법률의 그런 모호함으로 인해) 검찰은 ‘정치 검찰’을 넘어 ‘검찰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번 ‘검찰 보고서’는 지난 1년 동안 검찰이 수사한 주요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다. 이런 수사들에서 검찰이 정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는가?

김:검찰의 주력 엘리트들이 뭘 하는지 봐야 한다. 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나 문재인 정부가 연관된 정치적 사건들에 집중하고 있다. ‘50억 클럽’ 수사 정도가 예외다. 지금처럼 검찰의 최고 엘리트들이 구 여권(현 야권)만 파는 경우는 못 봤다.

오유진(이하 오):대장동 사건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보고서에선 세 편으로 나눠 정리했다. 1편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수사’, 2편 ‘김만배와 50억 클럽 및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3편 ‘김만배의 검찰 수사 무마 및 재판 거래 의혹 수사’ 등이다. 뒤로 갈수록 검찰 수사 기록이 짧아진다. 1편의 수사 기록은 방대하지만, 2편은 민주당과 정의당의 ‘50억 클럽’ 특검 합의 이후 갑자기 늘어났다. 3편인 수사 무마 의혹의 경우, 기록이 거의 없다. 서울중앙지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더니 "확인 불가"란 답변이 돌아왔다.

한:대장동 사건은, 전 국민적 관심사로 우리 정치의 향배를 결정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검찰이 수사 진행 단계에 대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언론을 통한) 비공식적인 정보 누설은 너무나 많은데 공식적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행위는 너무 적다.

오:비공식적인 정보 누설은 검찰의 (실수가 아니라) 수사 기법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왼쪽,ⓒ시사IN 이명익)와 김건희 여사(ⓒ대통령실 제공)

이른바 윤석열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사건들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보나?

김:‘장모’ 최은순씨의 여러 혐의들은, 주로 경찰이 불송치로 처리한다. 고발 사주 사건의 손준성 검사는 공수처로 넘겼다. 검찰의 입장에서 골치 아픈 사건은 다른 기관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보내며 사건을 희석시킨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가담 여부에 대해, 검찰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1년 동안 거의 내내 수사를 질질 끌었다. 그러다가 민주당과 정의당이 특검 법안 패스트트랙 처리에 합의하자 비로소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에 들어갔다. 타이밍이 좀 뻔뻔하다.

보고서는, 검사(출신)가 국가 행정을 전면에서 지휘하고 통솔하는 시스템의 출현을 우려하고 있다. 법무부는 물론 금감원이나 국가정보원, 심지어 고용노동부·교육부 등의 수장이나 주요 직위에 검사가 파견되어 있다.

김:현재 130명 이상의 전현직 검사가 윤석열 정부의 요직에 배치되어 있다. 검사 출신들이 민간 부문인 대기업 사외이사 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대기업들은 검사를, 향후 닥칠 수사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한:인사 편중 문제인 동시에 정책 측면의 문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책 대상을 선악으로 재단하는 식의 행정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몰아친 행태가 대표적 사례다. 건설 현장엔 노사 갈등, 안전관리, 지역경제 등 정책 담당자가 고려해야 하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노사 갈등 과정에서 불거진 행위들을 합법/불법으로만 구분해서 행정을 펼치려 한다. 국가정책이 너무 편협하고 편향적으로 가는 측면이 있다.

오: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노동, 연금, 교육) 관련 부처들의 주요 직위에 검사 출신이 포진해 있다. 모두 갈등 조정이 절실한 분야다. ‘검사 무오류’ ‘검사 동일체’ 정신으로 뭉친 검사 출신들에게 조정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 수사를 잘한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임명되었다. 어떤 분야의 수사를 잘하면 해당 정책도 잘할 것이라는 기조로 인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보고서의 ‘재난 대응의 검찰사법화’란 꼭지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재난 조사에서 법적 책임 추궁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직접적 원인 제공자가 아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처벌할 수 없다"라는 이상한 논리가 성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정치의 사법화'가 가장 나쁜 형태로 드러난 경우다. 현행 형법에 의하면, 친족 간의 절도나 사기, 횡령 등은 처벌받지 않는다(친족상도례). 어떤 사람이 부모의 재산을 몰래 훔쳐 탕진했다고 치자. 그 아들이 친족상도례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꾸짖을 수도 없다고 하면 되겠는가. 검찰과 윤석열 정부는 ‘법률만 위반하지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 같다. 이태원 참사는 법적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정치 윤리 및 정책에 대한 책임의 문제다.

검찰 특유의 사고방식이 있는 것 같다. 법률적으로 유죄가 아니라면 윤리적으로도 떳떳하고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된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밝히지 않으면서도 너무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한:개인 한동훈으로서는 법률적 방어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공직자 입장에서는 국가 법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옳다.

김:라임 사태 당시 술접대를 받은 현직 검사들은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휴대전화를 바꾸거나 잃어버린다. 본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없애고, 수사기관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으며, 출석하더라도 일단 피의 사실을 부정하고 본다. 유리한 법적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모든 시민들이 따라 하면 앞으로 검찰의 수사는 매우 힘들게 될 것이다. 또한 '정치의 사법화'는 관료들을 위축시킨다. 장관이 적극적 정책을 펼치려 하면 관료들이 이렇게 말린다고 한다. "그랬다간 나중에 수사당합니다."

한:반면 검사 출신 장관은 두려울 것이 없다. 한동훈 장관은 취임 직후 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들로부터 정부가 받아내기로 되어 있었던 국가배상금 이자를 면제해줬다(편집자 주:이전까지 법무부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게 과도한 국가배상금을 지급했다며 이에 대한 이자를 청구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문재인 정부 때도 계속 제기되었던 사안이다. 박범계 의원(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장관 재임 중에 면제해주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관료들이 "나중에 배임 혐의(국가가 받을 돈을 못 받게 했으니 배임)를 뒤집어쓸 수 있다"라며 만류했다고 답변하더라.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보고서는 ‘검찰 정치’가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하는 행태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그런 사례 중 하나로,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의 범위를 축소한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한동훈 법무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무력화한 ‘검수원복’을 들었다.

한:법치주의의 가장 기본적 원칙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가 법률로 검찰 수사권의 틀을 정해놓았는데, 시행령을 통해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고 검찰 수사권을 복원한 것이 ‘검수원복’이다. 권력 분립과 법치주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다.

김:이른바 ‘검수완박’ 자체가 많이 부족한 법이다. 참여연대도 당시(2022년 4월) 반박 입장을 냈다. ‘검수완박’을 뒤엎기 위해 한동훈 장관과 검사 6명이 헌법재판소에 제출(2022년 6월)한 권한쟁의심판 청구서는 ‘참여연대와 민변도 반대한다’며 우리 보도자료를 언급한다. 그렇지만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거쳐 통과된 법이라면, 행정부는 그 취지를 따라야 한다. 시행령으로 뒤엎는 것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오:권한쟁의심판 청구서엔 더 놀라운 부분이 있다. 법치주의를 "법에 의한(Rule by law) 통치를 의미하는 개념"이라고 기술해놓았다. 왜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다.

한:‘법에 의한 통치’의 주어는 권력자다. 권력자가 법을 갖고 시민들 위에 군림하며 휘두르는 통치 방식이다. ‘법에 의한 통치’라는 의미의 법치주의는 권위주의 국가를 비판할 때 주로 사용하는 용어다. (자유민주주의적) 법치의 핵심은 ‘법의 통치(Rule of law)’다. 법률로 국가권력을 제어해서 시민들의 기본권, 즉 자유와 권리를 보호한다는 원리다. 윤석열 정부는 법을 권력 행사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자신들에 대한 부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한 바 있다. “선진국에서도 특히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그런 거버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정부 측 법률대리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 이 발언을 ‘법에 의한 통치’라는 개념과 연관지어 읽으면, 검찰들이 행정부를 장악해서 법률을 무기로 통치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이번 보고서와 관련된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최보민:‘검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나’에게 들이닥칠 수도 있는데 그 해결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며 공포와 무력감을 표시하는 분들이 많았다. ‘검찰개혁 모금함’을 운영하면서 댓글로 의견들을 받았는데 ‘무섭다’란 표현이 높은 빈도로 등장했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은 검찰이 자기 조직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가 개혁해야 한다’라는 결의를 밝혔다. 이번 검찰 보고서는 역대 가장 많은 모금액을 기록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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