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법이 통과되면 중앙정부가 행사하던 여러 권한이 김진태 강원도지사에게 이양된다. ⓒ연합뉴스
강원특별법이 통과되면 중앙정부가 행사하던 여러 권한이 김진태 강원도지사에게 이양된다. ⓒ연합뉴스

강원도가 달라진다. 오는 6월11일 특별자치도로 거듭난다.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에 이어 세 번째 특별자치시·도가 된다. 지역 언론과 강원도청에서는, 강원도라는 명칭이 처음 생긴 조선 1395년 이후 628년 만에 이름이 사라진다며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다. 제주도와 세종시가 그렇듯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에도 ‘강원도’라는 이름이 사라질 리도 없다.

강원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11일 현재 시점에서는 아직 ‘없다’. 제주도처럼 도지사가 제주시장이나 서귀포시장을 임명하는 것도 아니고, 세종시처럼 재정 특례를 적용받아 국가로부터 교부금을 더 많이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6월11일부터 시행되는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는 ‘강원도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다’ ‘행정·재정상 특별한 지원을 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에 별도 계정을 설치하여 지원할 수 있다’ 등 선언적인 내용만 열거돼 있다. 아직은 텅 빈 껍데기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종합계획 수립 연구용역 착수 보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강원특별자치도가 되면 뭐가 달라집니까? 하는 질문을 받으면 사실 좀 난감하다. 지금 백지상태라고 하는데, 하기에 따라서 백지수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거기에 어떤 액수를 적어 내느냐. 적어 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김진태 도지사가 언급한 백지수표에 ‘액수’를 적어준 곳은 국회다. 법률안을 통해 구체적인 뒷받침을 하고 나섰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올라 있는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강원특별법)’이 그것이다. 6월11일부터 시행되는 관련 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내용이다. 137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강원특별법은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가 적힌 백지수표다. 이제껏 어떤 특별법도 담지 못했던 파격적인 ‘특례’가 담겨 있다.

백지수표에 적힌 금액을 말로 풀면 이렇다. ‘규제완화’와 ‘권한이양’이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행사해왔던 각종 규제를 풀고, 그 권한을 강원도지사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왜 천문학적인 액수일까. 법률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그림 참조).

조항 하나하나가 파격적이지만, 우선 눈에 띄는 조항은 제41조부터 제47조 첨단과학기술 육성 및 기반 조성에 관한 조항이다. ‘도지사 또는 시장·군수는 환경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상수원보호구역의 상류지역에 폐수배출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함.’ 무슨 말인가. 산업시설 조성을 위해 상수원보호구역일지라도 자치단체장의 판단에 따라 폐수를 방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장관과 ‘협의’를 거친다는 전제가 있지만, 모호한 규정일 뿐 강제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강 상수원보호구역에 폐수시설을?

강원도에는 한강 발원지 검룡소와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이 있다. 수도권과 경상도 시민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한강과 낙동강 상류가 강원도를 지나 취수장으로 흘러간다. 결국 식수원 상류에 폐수배출시설을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에서는 “수도권 시민 80% 이상이 이용하는 팔당 수질관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냐”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곧 ‘수질오염으로 인한 국민건강 및 환경상의 위해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물환경보전법’을 무력화시키는 법이기도 하다.

당장 원주시의 경우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이 도내 최대 현안이다. 김진태 도지사가 ‘삼성 반도체’ 등 대기업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서는 용수 공급과 폐수처리가 선결과제인데, 상수원보호구역 규제를 완화하는 특별법이 통과되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강뿐만이 아니다. 산은 더욱 심각하다. 강원특별법에는 ‘강원자치도 산림의 효율적 이용과 보전을 위하여 도지사는 종합계획심의회를 거쳐 산림이용진흥지구를 지정하고 진흥지구의 지정·변경·해제 등에 필요한 사항은 도 조례로 정하도록 함’이라고 돼 있다. 현재 산림청장 등이 갖고 있는 산지 개발 권한을 도지사가 가져가고 관련 조항을 도 조례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원주택단지, 실버타운, 각종 관광단지 조성이 가능해진다.

강원연구원은 평창 가리왕산 스키장의 복원 문제에 대해 높아진 환경감수성이 환경 이슈를 소모적으로 확대했다고 주장했다.ⓒ시사IN 이명익

여기에는 ‘백두대간 보호지역’이나 생태적 가치가 높은 ‘생태·자연도 1·2등급 권역’까지 해당한다. 한반도 환경·생태의 마지노선이나 다름없는 백두대간과 생태·자연도 1·2등급 권역까지 포함했다는 점에서 환경단체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여기에 평지와 하천 유역에 있는 농업진흥지역 해제 권한도 도지사가 가져간다. 김경준 강원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강원도 산림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국유림, 강원도 면적의 2.6%를 차지하는 농업진흥지역을 도지사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강원특별법에서 규제완화와 권한이양의 ‘끝판왕’은 환경부 장관이 갖고 있는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도지사가 가져가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해 해당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짓는 권한이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제주 신공항, 원전 건설 및 재가동 등 뜨거운 이슈 때마다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작동했다. 오색케이블카의 경우 윤석열 정부 환경부가 조건부로 허가해 논란이 커졌는데, 앞으로는 강원도지사 권한만으로 이런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카지노 산업도 날개를 달게 된다. 특별법은 ‘도내 카지노 및 카지노 사업자에 대한 매출액 규모 및 총량은 2045년 12월31일까지 적용하지 아니하고, 폐광지역에 있는 카지노업 허가 등에 관한 문화체육부 장관의 권한은 도지사의 권한으로 한다’고 했다. 사행사업 규제를 위해 설정한 매출액 총량(강원랜드의 경우 연간 약 1조8000억원)을 2045년까지 무제한으로 풀어주고, 카지노 허가권도 도지사에게 넘어간다. 카지노 영업이 가능한 폐광지역은 삼척·태백·영월·정선이다. 몸집을 훨씬 불린 카지노가 곳곳에 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강원특별법은 여야 의원 86인이 발의했다. 춘천이 지역구인 민주당 허영 의원이 대표발의자다. 민주당 의원 50명, 국민의힘 의원 36명이 참여했다. 여야가 따로 없다. 환경단체에서는 민주당 우원식·남인순 의원처럼 그간 환경파괴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정치인까지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아해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강원도 민심을 얻기 위해 여야가 전격 합작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국회에서는 정의당이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5월8일 정의당 이은주 의원과 한국환경회의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밝혔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제주도와 같은 섬이 아닙니다. 강원도에는 DMZ, 백두대간 등 주요 생태축이 있으며, 한강·낙동강의 상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토, 생태계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 시대에 강원특별자치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사회적 논의와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성공이 ‘개발’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역사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출범하자 2008년 강원도의회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선거 때마다 강원특별자치도 공약이 발표됐지만 급물살을 탄 것은 2020년 이후다. 국회에서 법안이 마련됐고,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강원경제특별자치도를 공약으로 발표한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5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원특별자치도법이 통과됐다. 법률 공포 시점으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 6월11일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하게 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밑그림을 그린 곳은 강원연구원이다. 강원도 출연기관으로, 자유경제원장과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현진권씨가 수장을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강원특별자치도 연구용역을 수행한 곳도 강원연구원이다. 4월27일 강원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꽤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환경 관리, 중앙집권형에서 지방분권형으로’라는 보고서다.

강원연구원이 최근 펴낸 보고서.
강원연구원이 최근 펴낸 보고서.

보고서는 이렇게 머리말을 시작한다. ‘저널리즘에 의해 생산된 급진적 환경감수성이 사회적 손익 판단을 왜곡시키고 있다. 환경재 사용과 생산에 있어 도시는 무임승차, 지방은 기회손실, 그 사례가 강원도다.’ 그러면서 ‘강원특별법은 자연자원 관리의 자율성 구축을 위한 전국 최초의 도전이다’라고 말한다. 강원도가 지나친 환경주의의 피해자이며, 강원특별법으로 이를 만회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공공성을 띤 출연기관이 이처럼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한 예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평창 동계올림픽 가리왕산 스키장 복원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직격했다. 전국에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 충분히 존재하는데, 왜 가리왕산 복원에 매달리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높아진 환경감수성이 환경 이슈를 소모적으로 확대·재생산한다’고 주장했다. 생명 경시 논란이 일었던 ‘화천 산천어축제’도 소모적 논란이었다고 규정한다.

“강원도민 150만명을 집단 괴롭힘”

강원도의 청정 자연이 ‘족쇄’가 되었다는 표현도 나온다. 푸른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등 환경 공공재 생산기능만을 채근받으면서 강원도의 경제성장이 미뤄졌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준수도권에 위치했음에도 산업단지 보유는 전국 최하위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공공 싱크탱크라면 강원도의 환경·생태 가치를 지키면서도 경제성장을 꾀하는 해법을 논의해야 할 텐데, 개발 논리만 노골적으로 담긴 보고서를 내놓았다”라고 말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경남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위원은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는 “가리왕산 스키장은 강원도 전체 산지 가운데 약 2만 분의 1밖에 안 된다. 넓은 산지를 활용해서 중앙정부 의존도를 낮춰 자립해보겠다는데, 왜들 이렇게 못사는 막내 아우를 짓밟는 건지, 울고 싶은 심정으로 보고서를 썼다”라고 말했다. “학교로 치면 5000만명이 강원도민 150만명을 이지메하는 구조다”라고도 말했다.

4월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강원특별법을 비판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4월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강원특별법을 비판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강원연구원 보고서는 여러모로 심상치 않다. ‘강원도의 한’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환경규제로 인한 피해의식, 우리도 잘살고 싶다는 욕망, 수도권에 대한 소외감을 자극한다. 그동안 여러 환경 이슈의 대립구도는 주로 ‘개발 대 보전’이었다. 강원특별법 국면에서는 바뀌었다. ‘중앙 대 지역’이다. 지역의 희생으로 잘살게 된 중앙을 향해 특례, 즉 ‘분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진태 도지사가 최근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지지하면서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송전탑에 대해서는 환경단체가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한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지역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정치 언어다. 심지어 이것은 정확한 지적도 아니다. 과거 밀양 사례부터 송전탑 문제는 늘 환경단체의 중요한 이슈였다.

여야 정치권이 합작한 강원특별법은 중요한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이라는 명분 아래, 중앙정부가 개입해야 할 ‘의무’를 놓아버린 첫 번째 사례가 될 수 있다. 거꾸로 지역 입장에서는 최초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5월10일 국회 공청회 이후 특례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법안이 수정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국회 통과를 장담한다.

심각한 것은 이것이 강원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지난해 말 특별자치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로 출범할 예정이다. 당장 그에 걸맞은 특례가 필요하다며 지역에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충청북도에서도 중부내륙특별법을 들고나왔다. 이들의 요구 또한 규제완화와 권한이양이 핵심이다. 이들 지역은 강원특별법의 향방을 누구보다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기우뚱하게 방치해온 지역 불균형 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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