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 국립공원의 날 기념식이 열린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하며 도로에 누워 있다.ⓒ연합뉴스
3월3일 국립공원의 날 기념식이 열린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하며 도로에 누워 있다.ⓒ연합뉴스

네이버 지도에 ‘설악산 케이블카’를 검색하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온다. 하나는 1970년에 만들어진 ‘설악 케이블카(권금성 케이블카)’다. 설악산 소공원에서부터 높이 700m 봉우리인 권금성까지 1.1㎞를 잇는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직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사위 일가가 사업 허가를 받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다. 이름 뒤에 ‘(2026년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 2월27일 강원도 양양군의 오색 케이블카 사업계획이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사실상 통과하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1982년부터 사업을 추진해온 강원도는 환경부의 결정을 반기며 당장 올해부터 공사에 들어가 2025년 말에는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구간은 오색 약수마을에서부터 해발 1600m 봉우리인 끝청 인근까지, 약 3.3㎞다. 8인승 케이블카 53대가 시간당 825명을 실어 나른다는 계획이다.

환경보호단체를 비롯해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환경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최후의 수문장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저버렸다고 본다. 오색 케이블카 설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선거공약이었다. 지난 2월10일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반드시 진행되도록 환경부에 확인하겠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적인 이유로 환경부의 결정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환경부가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스스로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만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시작은 2015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환경부 소속 원주지방환경청(이하 원주청)은 양양군이 접수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해오라고 요구했다. 보완할 대상은 5개 항목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이 서식하는 공간에 대한 조사가 관건이었다. 이후 양양군이 보완서를 제출하자 2019년 9월, 원주청은 아예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원주청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립생태원 등 전문 검토기관과 분야별 전문가는 사업 시행 시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 단편화, 보전 가치 높은 식생의 훼손, 백두대간 핵심구역의 과도한 지형 변화 등 환경영향을 우려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라고 밝혔다.

2015년부터 환경 단체는 백두대간이 훼손된다며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반대 활동을 해왔다. 사진은 2015년 케이블카 건립을 반대하며 대청봉까지 이어진 오체투지 시위. ⓒ시사IN 이명익

원주청의 결정에 반발한 양양군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부동의 처분 취소심판’을 청구했다. 결국 양양군은 다시 재보완서를 제출할 기회를 얻었다. 원주청은 보완해야 할 항목을 10개로 늘렸다. 이번에는 산양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 GPS 분석을 해오라는 자세한 요구사항도 따라붙었다. 살아 있는 산양에게 위치추적기를 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양양군은 환경부가 사업을 무산시키려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비난하며 2차 보완서를 제출했다.

불과 3년6개월 만인 지난 2월27일, 원주청은 양양군이 낸 2차 보완서에 ‘조건부 협의’를 하겠다고 돌연 방침을 바꿨다. 산양에 대한 조사는 위치추적기 대신 무인 센서 카메라로 대체하기로 했다. 부동의 결정을 내릴 당시 근거가 됐던 ‘전문 검토기관’의 의견이 이번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제공한 전문 검토기관 다섯 곳의 검토의견서를 살펴보면 이 중 한국환경연구원은 양양군의 2차 보완서에 대해서도 “사업자 측이 제시한 보전대책으로는 자연환경의 최우선 보전지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됨”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원주청은 “대부분의 전문기관은 ‘사업 시행으로 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영향을 저감하기 위해 좀 더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며 ‘부동의’ 대신 ‘조건부 협의’ 결정을 내렸다. 환경단체들이 환경부의 정치적인 고려를 의심하는 이유다.

일주일 뒤인 3월6일 환경부가 8년을 끌어온 제주 제2공항 건설 사업에 ‘조건부 협의’ 결정을 내리자 이런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본격적인 환경영향평가에 들어가기 앞서 입지 타당성 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이지만, 환경부가 이미 한 번 반려한 사업인 데다 전문기관 6곳 중 5곳이 우려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오색 케이블카 사업과 비슷했다.

‘설악산이 됐으니 우리도?’

오색 케이블카 사업 통과는 단지 환경부에 대한 의구심만 남긴 게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추진 중인 케이블카 사업이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3월3일 국립공원의 날을 맞아 광주광역시 무등산국립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은 이 모든 후폭풍이 한데 얽힌 자리였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국립공원을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환경부는 이러한 국립공원의 혜택을 온 국민과 미래세대가 온전히 향유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기념식장 밖에서는 환경보호단체와 시민들이 “국립공원 파괴하는 한화진 장관 사퇴하라”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하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 중에는 무등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에 반대하는 국립공원무등산지키기시민연대 활동가들도 있었다. 그동안 무등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주장은 번번이 무산돼 왔으나 이번 오색 케이블카 사업 통과를 기점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광주광역시 대변인실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무등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검토한 바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는 3월8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환경 공법을 이용하여 자연 훼손을 최소화한다면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 없는데도 ‘설악산이 됐으니 우리도?’라는 식의 막연한 기대감으로 찔러보는 풍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다.

실제 다음 케이블카 사업 추진이 유력한 곳 중 하나는 지리산이다.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경남 산청군·함양군까지 지리산에 걸쳐 있는 각 지자체가 각자 개발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25일 남원시의회는 시가 제출한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1㎞ 구간)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990년부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해온 전남 구례군은 환경부에서 네 차례 퇴짜를 맞았음에도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3월2일 도청 기자간담회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정부에 건의하고 산청군과 함양군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명산에 꽃샘추위보다 혹독한 개발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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